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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가정용 전기요금 OECD 최저 수준인데 산업용만 인상?…“원가회수율 고려해야”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11.09 14:38

산업용 전기요금 kWh당 10.6원 인상해도 적자 해소 3조원 남짓 불과

OECD 국가 평균 100, 한국 주택용 전기요금은 54, 산업용은 66 수준

업계 "산업용은 대용량·고전압, 원가회수율 70%…가정용은 50% 못 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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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공사가 9일부터 산업용 전기요금만 킬로와트시(kWh)당 10.6원 인상하기로 했지만 업계에서는 적자해소에는 턱없이 부족하며 기업들의 부담만 가중시킨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에서 가정용 전기요금 수준이 산업용 전기요금보다 낮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정용산업용
국가명$/MWh수준$/MWh수준
대한민국106.85495.366
OECD 평균196.1100144.7100
자료=한국전력공사
한전이 이번에 산업용 요금만 인상한 것은 한전이 그동안 기업 등의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유지되는 값싼 전기요금 정책으로 인해 많은 손실을 감수했다는 논리로 풀이된다. 한전이 주력 제조업 중심 수출 대기업, 농사용 전기 등 다른 산업분야에 낮은 전기요금을 적용해 과도하게 지원한 탓에 적자를 불렀다는 것이다.

한전 등 전력업계에서는 전기요금이 워낙 저렴하다 보니 기업 등의 자체 경쟁력 강화 노력이 부족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에 한전이 적자구조를 벗어나게 하려면 국내 전력 소비의 55% 정도를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요금의 현실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력업계에서는 산업용 전기판매량에 이번 인상폭을 적용해도 한전의 구조적인 재무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운 만큼 가정용과 일반용 등 다른 요금들도 정상화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산업용 올려도 연간 재무개선 효과 3조 수준…누적적자 47조 해소에 역부족

9일 한전 전력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올해 8월까지 산업용 전력판매량은 31만6664기가와트시(GWh)를 기록했다. 여기에 kWh당 10.6원을 적용하면 연간 3조 3566억원 수준의 한전 재무개선이 가능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누적 적자 47조원의 8% 수준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전체 전력판매량은 59만 4281GWh로 모든 용도의 전기요금을 10.6원 인상했을 경우에도 6조 2993억원 수준의 재무개선이 예상된다.

산업용만 인상하든 전체 용도를 다 인상하든 누적적자를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인 셈이다.

국내 에너지 대용량 사용자는 대부분 철강과 자동차 분야 등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대기업들로 전기요금이 높아지면 이들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번 요금 인상으로 전력을 많이 쓰는 철강·자동차·전자 등 주력산업 대기업 등의 전기요금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번 산업용 인상은 국내 일각은 물론 미국 등 해외에서도 한국 정부가 산업계에 값싼 전기요금으로 보조금을 제공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에 대응하는 차원도 일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계에서는 이번 요금 인상과 관련해 정책 실패에 따른 비용을 기업에 떠넘긴다는 비판이 나온다.

강경성 차관은 8일 요금 인상 관련 브리핑에서 "이번 인상은 지난해 개정안 한전법을 준수하는 선에서 이뤄졌다. 연말에 한전채 발행 한도를 추가 상향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정부는 한전의 숨통을 틔우기 위해 사채 발행액을 ‘자본금 및 적립금을 합한 금액의 2배 이하’로 설정한 한전공사법을 ‘5배 이하’로 늘렸다. 그마저도 한도가 임박해가자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으로 고비를 넘기겠다는 방침인 셈이다.

산업계는 이 같은 정부의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추진을 두고 "경기 침체로 경영 환경이 암울한데 또 다른 부담"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기요금 인상으로 피해가 우려되는 업종은 철강, 반도체 및 가전, 배터리 업종 등이 대표적이다. 고철을 전기로에서 녹여 쇳물을 생산하는 국내 최대 전기로 제강사인 현대제철은 연간 전기료만 6000여억 원에 이른다. 삼성전자의 경우 연간 1조 원이 넘는 전기요금을 내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원가 회수율을 고려하면 산업용 전기는 가정용·농업용 전기에 비해 싸게 공급받는 게 아니다. 또한 고압의 전기를 송변전 과정 없이 대량으로 구매하는 우량 고객"이라며 "경기 침체로 철강, 반도체 등 수요가 줄어든 상황에서 전기요금이 인상되면 경영에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료=한국전력공사.
◇업계 "산업용이 원가 회수율 가장 높아…다른 사용자들에게도 가격 신호 줘야"

한전이 홈페이지에 공시한 ‘2022년 전기요금 원가 정보’에 따르면 작년 전기요금 총괄원가 회수율(총수입/총괄 원가)은 64.2%로 관련 통계가 집계되는 2005년 이후 가장 낮았다. 일정량의 전기를 1000원에 사서 642원에 팔았다는 의미로, 한전은 전기를 팔 때마다 358원의 손해를 본 셈이다.

특히 산업용 전기 원가 회수율은 70% 수준이지만 농사용과 가정용 전기의 원가회수율은 25% 수준으로 알려져 다른 용도의 전기요금 체계의 개선 필요성도 꾸준히 제기된다.

또한 한전에 따르면 OECD 국가 전체의 평균을 100이라고 할 때, 한국의 주택용 전기요금은 54, 산업용 전기요금은 66 정도로 주택용 전기요금이 더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산업용 외에 전반적으로 전기요금에 원가가 반영되지 않아 에너지가격의 변동에 대한 국내 전력소비자들의 노출 빈도를 상대적으로 매우 낮게 만들고 이는 결국 전력소비자들이 요금 변동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없도록 한다는 것이다.

정연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생산원가가 반영되지 않은 왜곡된 요금 정보는 국가적 측면으로 보면 비효율적 소비를 유도하게 된다. 전력소비를 줄여야 하는 시기에 전력소비를 그대로 유지하기도 하며, 전력보다 다른 에너지 가격이 저렴한 시기에는 대체 가능한 다른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 소비임에도 불구하고 왜곡된 가격정보로 인해 지속적으로 전력을 소비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력소비자의 문제는 아니다. 기업, 농가 등 전력 이용 주체들은 비용과 자신의 수입을 고려해 극대치의 편익을 발생시키는 합리적·효율적 소비를 하지만 왜곡된 가격체계로 인해 국가적, 비효율적 에너지소비로 귀결되며 결국 전기 판매(공급) 사업자인 한전의 적자로 나타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산업부는 향후 농사용 전기도 2025년까지 8.0원의 요금을 3년에 걸쳐 3분의 1씩 인상할 계획이다. 아울러 가정용 요금도 향후 국제유가 변동 등 에너지환경에 따라 추가적으로 인상할 여지를 남겨뒀다.

산업부 관계자는 "정부의 이같은 전기요금 제도 개편 추진은 고물가 상황에서 일괄적으로 적용받는 전기요금을 큰 폭으로 올릴 수 없고 이 경우 늘어나는 한전의 적자해소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고민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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