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 미국 금리인하 기대감 후퇴 등으로 원/달러 환율이 불안정한 흐름을 보이면서 은행권도 환율 추이를 주시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면 은행권의 실적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서는 구간에서는 정부의 구두개입이 나와 속도를 조절하겠지만 당분간 환율 안정세가 유지될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했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이달 1일 1355.50원에서 19일 기준 1382.20원으로 26.7원 올랐다. 이달 16일 장중에는 1400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환율이 1400원을 터치한 것은 2022년 11월 7일(1413.5원) 이후 약 17개월 만이다.
정부가 구두개입에 나섰음에도 원/달러 환율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다.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와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춘계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이 총재는 18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국내 외환시장에 대해 “이란·이스라엘 확전 이후 며칠간의 환율 움직임은 어떤 측정 방법으로 봐도 과도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란·이스라엘 사태, 유가 상승, 미국의 성장률이 좋아지면서 (금리 인하 시점이) 늦춰질 수 있는 기대가 커지는 등 여러 요인이 겹치다 보니 그 방향으로 가는 건 합리적"이라면서도 “여러 측정 방법으로 봤을 때 속도가 빠르다"고 말했다. 앞서 이 총재는 17일(현지시간) “우리 환율이 시장 기초에 의해 용인될 수 있는 수준에 비해 약간 떨어졌다"며 원/달러 환율을 안정시킬 재원과 수단을 보유 중이라고 재차 강조한 바 있다.
환율 시장의 변동성 확대는 은행들의 실적에도 변수로 작용한다.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고, 환율이 오르면 외환환산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실제 하나금융지주는 2022년 3분기 원화 약세에 따라 1368억원의 외환 환산손실이 발생한 바 있다. 이 회사는 올해 1분기에도 환율 상승에 따른 비화폐성 환차손 약 700억원이 발생할 것으로 증권가는 추정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통상 환율이 10원 오르면 은행권에 약 120억원 규모의 환차손이 발생한다"며 “다만 은행별로 외화 포지션에 따라 환차손 규모나 환율 상승에 따른 영향도는 다 다르다"고 말했다.
원/달러 환율 상승이 은행권에 악재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환율이 추가로 오를 것으로 예상될 경우 기업들을 중심으로 외환거래가 늘면서 은행권 비이자이익에도 일부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는 은행 거래 고객들에게도 민감한 내용인 만큼 은행권은 환율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환율이 추가로 상승할 것으로 판단될 경우 환전 수요가 늘면서 이에 수반되는 비이자이익은 증가할 수 있다"며 “환율은 고객들에게 민감한 내용이기 때문에 시장 모니터링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외환시장의 불안정한 흐름은 이번주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최광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존 환율 전망에서 미국의 정상적인 기준금리 인하나 리스크 요인이 없는 시나리오는 불가능한 수준에 들어섰다"며 “미국 기준금리 인하 지연, 상대적인 경제성장 부진, 외국인 순매수세 둔화 등으로 이전 수준 이상의 환율 하락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당분간 1400원을 넘어서는 구간에서 정부의 구두개입이 강하게 나와 속도를 조절하겠지만 상황별로 변동성 확대, 1400원 이상 레벨에 대한 추가 시험이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