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6월 23일(일)



[EE칼럼] ‘배달(delivery)’ 문제, 전력산업을 바꾸는 태풍의 눈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6.16 11:00

조성봉 전력산업연구회 회장

조성봉

▲조성봉 전력산업연구회 회장

에너지산업에 종사하거나 이를 연구하는 사람마다 나름대로 에너지를 보는 눈이 모두 다르다. 인프라, 위험성, 환경, 에너지 안보, 규제, 복지, 기술, 경제성 및 재원조달 등이 에너지산업과 관련된 여러 요소이지만 필자가 가장 주목하는 측면은 에너지 배달의 문제다. 그런 이유에서 필자는 '에너지 경제학' 수업 첫 시간에 에너지산업을 '배달사업(delivery business)'이라고 강조한다.


사실 모든 재화에 있어서 배달과 운송은 그 비용과 가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물과 식량과 같은 필수재의 경우 사람들은 처음부터 이를 얻을 수 있는 지역 인근에 모여 살기 시작했다. 사람이 물과 식량을 향해 미리 이동해 상대적으로 배달의 문제는 심각하지 않았다. 지금도 인류가 거주하는 지역은 대체로 물과 식량을 인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지역이다.


그런데 에너지는 어떤가? 에너지자원, 특히 현대적인 에너지 활용 기술과 관련된 에너지자원은 사람들이 사는 지역과 가깝지만은 않다. 석탄은 탄광에서 철도와 벌크선을 통하여 운송되고 석유와 가스는 사막, 동토, 해저 등에 풍부하여 유조선, 송유관, 유조차와 고속도로, 파이프라인, LNG선 등을 통해 먼 거리를 거쳐 배달된다. 전기도 먼 지역의 발전소에서 생산되어 도시와 산업시설로 배달된다. 에너지의 배달 인프라는 철도, 고속도로, 송배전 네트워크, 열배관망, 송유관, 가스 파이프라인, 유조선 등 엄청난 자본이 들어가는 인프라일 수밖에 없다. 특히 네트워크 형태를 갖는 운송 인프라가 많아서 에너지 공급은 자연독점 산업의 특성을 갖게 된다.


최근 우리나라의 송전 네트워크가 계획대로 건설되지 않아 큰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당초 2019년 준공되었어야 할 동해안과 경기도 가평을 잇는 8GW HVDC 송전선의 건설이 2026년 말까지 연기되었고 이마저도 불확실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동해안권의 발전설비는 원전 8기의 8.7GW와 석탄발전소 8기인 7.4GW인데 송전선로 건설이 예정대로 진행되었다면 발전설비 전량이 가동 가능했으나 현재는 원전과 신재생 우선 할당으로 동해안 석탄발전의 가동이 전면 정지되고 있다. 이뿐 아니라 그 길목에 있는 여주 복합화력도 동해안 원전 8기가 100% 출력을 내자 계통 안전성 유지 차원에서 최소 출력을 내고 있다.


정도 차이는 있으나 유사한 문제가 전세계 곳곳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 애팔래치아 산맥의 석탄발전소에서 동부의 필라델피아, 볼티모어, 워싱턴 DC, 뉴욕 등의 대도시로 흘러가는 전력이 송전선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애리조나, 오레곤, 네바다 등에서 캘리포니아로 운송되는 전력도 유사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제 송전선 부족의 문제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앞으로 AI, 데이터센터 및 반도체 클러스터 등에서 소비하는 전력수요가 엄청나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를 충족시킬 송전망 건설이 크게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그 문제는 심각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전국적으로 전기요금이 동일하여 발전설비나 송전선 건설을 유도하기 위한 지역적 시그널과 인센티브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달부터 발효되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은 이른바 지산지소(地産地消)의 원칙으로 전력의 배달문제를 최소화하려고 입법화되었지만 때늦은 감이 크다. MS의 빌 게이츠가 몇 년 전부터 테라파워란 회사를 설립하여 소형원자로(SMR)의 건설을 계획한 것은 AI 전력수요가 전력 수송 역량보다 더 커지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 아닌가?


돌이켜 생각하면 전력이 각광을 받게 된 계기도 송배전 인프라를 구축하게 되면 빛의 속도로 빠르고 편리하게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송배전 계통이란 전력의 운송 메커니즘은 지금과 같은 자연독점적이며 강한 수직적 연계를 갖는 전력산업 구조를 형성하게 된 근본 원인이다. 전력의 안정적인 운송이 위협받고 있다. 공급방식, 산업구조, 경쟁 및 규제 등 전력산업에 엄청난 변화의 태풍이 몰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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