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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사상 최대 실적에도 고개숙인 금융지주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1.07.26 08:41

에너지경제 송재석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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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금융지주사가 이견이 없는 사상 최대 상반기 실적을 발표했다. KB금융지주 순이익은 2조4743억원으로 작년 상반기보다 무려 44.6% 늘었고, 하나금융지주(1조7532억원), 우리금융지주(1조4197억원)도 1년 전보다 각각 30.2%, 114.9% 증가했다. NH농협금융지주 역시 상반기 순이익이 1년 전보다 40.8% 불어난 1조2819억원이었다. 이 기세라면 조만간 실적 발표를 앞둔 신한금융지주도 2조5000억원에 육박하는 역대급 순이익을 달성할 가능성이 크다.

금융지주사들은 올해 상반기 대출 성장에 힘입어 순이자이익이 증가했고, 증시 활황으로 비이자이익까지 늘면서 이익의 질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 자본적정성, 건전성 등 세부 지표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이같은 성적표를 바탕으로 하나금융지주는 물론 그간 중간배당을 단행하지 않던 KB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도 각각 주당 700원, 750원, 150원의 중간배당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는 배당성향을 20%로 제한하라는 금융당국의 권고에 따라 배당 수준을 불가피하게 축소했지만, 당국의 권고와 행정지도가 6월 말로 종료되면서 한층 더 폭넓은 주주환원책을 가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속 시원하게 상반기 최대 실적이라는 축포를 터뜨리지 못하고 있다. 어느 금융지주사 할 것 없이 표정 관리에 여념이 없다. 통상 기업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초유의 사태에도 호실적을 내고, 그간 단행하지 않던 중간배당까지 지급할 경우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는 자신감에 기세등등한 점에 비춰보면 현재의 금융지주사 분위기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은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지주사들은 사상 최대 실적을 냈지만 조금 더 많은 배당금을 지급할 수 있었음에도 델타 변이 바이러스라는 끝을 알 수 없는 변수로 인해 보다 적극적인 배당 정책을 펼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사실 겉으로 보여지는 것보다 현재 금융지주사들의 속내는 상당히 복잡하다. 그간 금융사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시중은행들은 좋은 실적을 내고도 비난을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국민들은 가계대출 증가로 인해 빚더미에 있는데, 금융사들은 이자이익으로 배를 불리고 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웠던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실적이 악화되면 또 악화된대로 은행들이 리스크관리를 하지 못해 건전성 확보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눈초리가 이어졌다.

정부는 뛰어난 실적을 낸 금융사들에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청구서’를 들이밀기 일수였다. 청구서의 이름은 매번 달랐다. 작년 이맘때쯤에는 한국판 뉴딜 지원이었고, 연초에는 이른바 금융판 이익공유제였다. 정부가 추진하는 한국판 뉴딜 정책에 동참하기 위해 금융사들이 몇십조원 규모의 지원책을 발표한 것이 불과 1년 전이었다. 그럼에도 연초 정치권에서는 금융사들이 코로나 상황에서도 이자장사로 가장 크게 이익을 내고 있다며 이익공유제에 동참하라고 압박했다. 결국 지난 5월 금융사들이 5년 동안 매년 2000억원을 서민금융에 출연해야 한다는 내용의 ‘서민의 금융생활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정치권의 압박은 제도로 현실화됐다.

코로나 사태와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서민들의 생활이 더없이 팍팍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난 3월 말 기준 금융권의 가계대출 잔액은 1666조원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말(1504조6000억원)보다 무려 161조4000억원 불어났다. 가계대출이 불어난 상황에서 은행들은 막대한 이자이익으로 배만 불리고 있다는 비난이 날아오는 것도 어찌보면 금융사들이 당연히 감내해야 할 부담인지 모른다. 그러나 가계빚이 증가한 것을 두고 무조건 은행에게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것이 맞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현 정부는 아파트 가격을 잡겠다며 수십번의 정책을 내놨지만, 오히려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폭등했다. 경제적 소외감·박탈감을 느낀 이들은 막차를 놓치지 않으려 더 열렬한 대출수요자가 됐다. 정부의 정책 실패와 넘치는 유동성, 자산가격 상승 등이 가계대출 증가의 1차 원인이다. 가계대출이 불었음에도 은행들은 앉아서 이자만 꼬박꼬박 받아간 덕에 서민들의 등골이 휜다는 주장은 그래서 어폐가 있다. 지금은 은행들이 이자놀이로 돈을 벌었다고 비난하기보다는 우리나라 가계대출 증가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먼저 돌아봐야할 때다. 은행의 사업특수성에 따른 태생적 한계는 단순히 비난만으로 고쳐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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