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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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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희망고문 아닌 비전을 주는 전기요금 정책이 필요하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6.22 08:45

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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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3분기 전기요금이 동결됐다. 당국은 상반기에 천연가스와 석유 가격이 떨어져 이를 반영한 조치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하반기에도 계속 이런 추세에 있을지는 의문이다. 유럽의 천연가스 TTF 가격은 이달 초부터 2주 사이에 MWh당 23유로에서 46유로로 두 배 올랐다. 천연가스 비축 시즌과 하절기 무더위에 따른 수요 증가가 한 몫 했다. 여기에 유럽 최대 규모의 그로닝겐 가스전이 오는 10월부터 영구 폐쇄되면 TTF의 상승 압력은 더해질 것이다. 미국의 헨리 허브 가격도 심상치 않다. 그동안 mmBtu당 2달러 초반의 저점대 지지 구간을 확인한 후 상승추세다. 천연가스 채굴장비 리그 수도 상반기에 꾸준히 줄어들었고 프리포트 기지도 정상 가동되면서 미국 천연가스 수급이 빡빡해 지고 있다. 그리고 엘니뇨 현상이 글로벌 천연가스 수요를 더 한층 끌어올릴 중요 변수로 등장했다.

이미 경험했듯이 유럽과 미국 천연가스 가격의 스프레드 확대는 아시아 천연시장에도 충격을 분다. 유가는 현재 배럴 당 70달러대로 지난해의 110달러 수준과 비교하면 하향 안정화돼 있지만 최근 진행되고 있는 중국의 금리와 경기부양 정책이 변수다. 촘촘하게 연결된 글로벌 시장에서는 하나의 이벤트로 인한 연쇄효과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 프리포트 화재가 발생하자 헨리허브 가격이 뛰었고, 비료값과 밀 가격 인상으로 이어졌다. 특히 가격이 저점이나 고점 구간대에 있을 때는 국지적으로 작은 이벤트에도 국제 시장에서는 큰 폭으로 급등락을 반복하는 게 에너지시장의 현실이다.

안타깝게도 글로벌 에너지 시장은 한국의 전력시장 상황을 따로 봐주지 않는다. 국제 상품시장에서 가격의 급등 이유가 다양할 수 있겠고 이들 중 상당수는 가격 변동 이후 사후약방문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천연가스 시장에서는 그동안 거래 규모가 확대된 소매투자 역시 가격 변동성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이처럼 다이나믹한 시장에서 하반기 에너지 가격이 하향 내지 안정화될 것이라 데 희망을 걸고 국내 전기요금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정책결정 과정에서 ‘플랜B’를 함께 고민해야 하고 불리한 여건에서도 버텨낼 수 있는 완충장치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희망하는 대로 에너지 가격이 하향 안정화 되지 않고 상승 국면으로 돌아서게 되면 그나마 남은 카드조차도 다 소진한 우리 전력시장 상황은 더욱 한계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 올 상반기에 국제 에너지 가격이 하락했을지라도 한전은 역마진 구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한전은 누적적자 45조 원에 하루 100억 원의 이자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하반기나 내년에 국제 에너지 시장이 들썩인다면 한전 부채만 해도 정부 예산의 10%를 넘어서게 될 것이고, 여기에 가스공사 등 여타 에너지 공기업 부채뿐만 아니라 이들 공기업 적자폭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단행하는 여러 조치로 인한 민간기업의 적자와 사회적 비용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천문학적 수준에 이르게 된다.

미국은 그동안 에너지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 인상을 꾸준히 단행했다. 아직 인플레 우려를 완전 불식시키기에는 부족하다는 견해도 있지만, 그럼에도 인플레이션 억제와 고용률 증가를 동시에 구현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상승한 전기요금으로 단기간에 고통은 있었지만 에너지 신산업의 장기전략 토대 구축의 계기가 되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전력시장 상황은 에너지 가격 하향 안정화에 베팅한 희망고문을 받고 있고 유사 시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도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자칫하면 금융위기로까지 번질 상황이다. 가계부채가 2000조원을 넘은 상황에서 한 가구당 앞주머니로 4000원 정도 전기요금을 덜 낼지라도 뒷주머니로 수십 만원의 금리상승 비용 부담을 더 질지도 모른다. 희망이 아니라 비전을 주는 에너지요금 정책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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