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는 이제 정치쟁점의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에너지를 두고 진영별로 갈려 절충과 합의가 없다. 논의는 무성한데 겉돌고 있다. 국회에선 생산적이고 균형 잡힌 논의보다는 각 진영을 결속하는 의제에 불과하다. 모든 사안이 마찬가지지만 그런 현상이 에너지에서 유독 심하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분석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둘러싼 정치권 대립과 갈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 주요 배경으로 제대로 된 에너지 전문가들이 국회에 없다는 점이 꼽힌다. 지금의 국회엔 환경 전문가만 있지 진정한 에너지 전문가는 없다는 것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뜻이다. 에너지가 국회만 가면 환경문제로 줄줄이 발목 잡혀 산업을 하고 싶어도 도무지 할 수 없다고 에너지업계는 하소연한다. 에너지업계는 에너지가 산업의 핵심이고 이를 보완하는 게 환경인데 지금은 주객이 전도됐다고 주장한다.
이에 본지는 내년 총선을 10개월 가량 앞두고 원내에 에너지 전문가들이 없어서 나타나는 문제점과 개선 대안을 기획 시리즈로 마련, 매주 1회 총 4회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주]
■ 글 싣는 순서
<1회> 국회만 가면 길 잃는 에너지 법안
<2회> 당략·이념에 멍드는 에너지 정책
<3회> 내년 총선 대비 전문가 적극 영입을
<4회> 에너지선진국 스웨덴·호주 사례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 지난 3월 23일 전체회의에서 윤관석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날 전체회의에서 산자위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안’(분산에너지 특별법)을 처리했다. 연합뉴스 |
[에너지경제신문 윤수현 기자] 에너지가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중요한 화두가 되면서 정부와 기업 간 에너지와 관련한 다양한 이슈와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친환경 에너지가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규범으로 떠오르면서 에너지 전문가들과 관련 법안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모습이다. 다만 에너지 전문가가 없는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입법 문턱을 통과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나라 비례대표 의원들은 대체로 전문성을 기반으로 하지만 아직까지 에너지 분야의 전문가는 없다. 에너지 문제를 소관하는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에도 경제 전문가, 노동 운동가, 환경 운동가, 반도체 전문가, 소상공정책 전문가 등 다양한 전문의원이 있지만 에너지 전문가는 없다. 비단 산자위 뿐 아니라 비례대표 의원을 포함한 전체 300명의 국회의원 중 에너지 전문가는 단 한 명도 없는 실정이다.
국회 내부 에너지 전문가가 없는 상황에서 에너지 정책은 입법 과정에서 여야를 다투는 진영 갈등으로 비화하고 있다. 에너지 문제와 관련해 우리 사회의 이해도도 충분하지 않아 국민의힘을 지지하면 친(親)원전, 더불어민주당은 반(反)원전이라는 식으로 정치적 지지가 에너지 발전원의 적합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 상황이다. 여야 갈등의 틀에 갇혀버린 에너지 정책의 ‘탈정치화’를 위해서는 국회 원내에 에너지 전문가 영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너지 전문가가 원내에 진입하기 위해선 각 정당이 그 전문성을 인정해 총선 때 비례대표 후보 상위 순번에 배치하거나 비교적 당선 안정권에 들 수 있는 이른바 ‘텃밭 공천’을 해야 한다고 관련 업계는 주장한다.
이런 주장에 정치권에선 각 분야별 전문성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워낙 분야별 경쟁이 심한 만큼 각 당의 우선 순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강조한다. 또 정당의 정책활동 등 선투자 없이 오랫동안 한 우물만 판 경력으로 전문성 만 내세워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인사들에게 무턱대고 당선 안정권 비례대표 또는 지역구 후보 공천을 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제기한다.
국회에 무작정 에너지 전문가를 영입하는 게 만능은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진영 대결이 극단으로 치닫는 현 정치 구조와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정당 의사결정 방식으로는 국회에 에너지 전문가가 있어도 ‘꿔다 놓은 보릿자루’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국회의 에너지 전문성 강화가 공염불에 그치지 않으려면 에너지 전문가의 원내 진입과 이들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는 의사결정의 분권화 등 정당 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에너지 전문가 "에너지 전문가 국회 입성 반드시 필요해…시스템 문제도"
에너지전문가들은 정파성에 포위된 에너지 문제을 해결하기 위해서 국회 내에 에너지전문가들이 꼭 필요한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에너지 문제가 정치적 의사결정에 깊은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에너지 전문가의 국회 입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에너지라는 분야는 잘 모르고 달려들면 굉장히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어서 상당한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례대표로 각 직능별로 분야별 대표를 할 사람들을 한두 명씩 꼭 넣는데 에너지 분야도 그렇게 할 필요성이 있다"고 부연했다.
해외 상황과 비교해서 우리나라의 에너지 분야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호정 고려대학교 자원경제학과 교수는 "EU나 미국에서는 에너지 분야에 능한 의원이나 보좌관들이 많이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그동안의 기후변화나 탄소 중립 정책만 봐도 전문성보다는 담론적인 수준에서 많이 그쳤다"면서 "탄소중립이나 녹색 성장 기본법 등에 관련된 것들이 법적으로 우리나라에 제약이 되어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에너지 시장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국회에 꼭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의 입법화가 과도한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은 입법화가 과도한 경향이 있다"며 "입법화한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입법화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들을 입법화하는 게 오히려 이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문적인 식견이 있는 의원들이 들어오는 것도 좋지만 EU나 미국의 동향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에 최적화된 입법 체계를 균형 있게 보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박 교수는 에너지 정책에 식견이 있는 의원이 들어오는 것은 필요조건 중 하나이고 충분조건이 되기 위해서는 분권화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에너지 문제에 대해 정부가 주도적인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이해 집단의 입장이 모여아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 국회에 들어와서 정책이 바뀔 수 있는 시스템이라면 다행이지만 없을 때는 문제가 되는 시스템"이라며 "현재 체계가 지나치게 집권화돼 있기 때문에 의사결정이나 정책 세팅 시스템 자체의 분권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국회에서 열린 제4차 본회의에서 한국전력의 회사채(한전채) 발행 한도를 기존 2배에서 최대 6배까지 올려주는 내용을 골자로 한 한국전력공사법(한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가결되고 있다. 연합뉴스 |
◇ "반도체 전문가 양향자 의원처럼 에너지 전문가도 원내 진입해야"
정치권에서는 에너지 분야와 관련해 양향자 의원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양 의원은 삼성전자 임원 출신으로 국내 반도체 산업의 역사를 함께한 전문가다. 현재 무소속인 그는 광주 서구을 지역구에서 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21대 국회에 입성했다. 그는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산업에 각종 혜택을 주고 경쟁력을 높이자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일명 K칩스법)을 지난해 8월 처음 발의한 후 재입법을 거쳐 지난 3월 조세소위 통과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양 의원은 "여야가 반도체 산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자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당초 민주당의 반대가 심했지만 과거와는 입장이 많이 달라졌고 반도체의 중요하성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져 이제 정치적인 반대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21대 국회가 1년도 남지 않았고 정치권도 이제 총선 체제에 돌입할 전망이라 후속 법안을 통과시키기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우려가 있지만 지금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상황이 그런 것을 고려할 때가 아니다"라며 "후속 법안도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면 빠르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회 산업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의원실 한 보좌관은 "상임위라고 해도 각 국회의원들에게 모든 것을 자세히 다 알라고 할 수는 없다. 법안심사나 소위에서 설명하느라 시간이 다 간다. 어떤 법을 통과시키는 것이 좋은지, 그냥 그대로 두는 것이 좋은지 상당히 애매모호한 분야가 많다"며 "기업들도 사업을 할 때 외부 전문기관에 용역과 자문을 구한다. 에너지 관련 법안도 마찬가지인데 다른 외부 전문가보다 국회의원 중에, 특히 여당에 전문가가 있으면 여당 쪽에서는 대부분 다 그분의 의견을 들을 것이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그분들한테 어떻게 보면 권한을 주는 동시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도 지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 보좌관은 또 "반도체 전문가인 양향자 의원 같은 분도 그분이 오랫동안 현업에 종사한 경험이 있고 또 중요성도 잘 알다 보니 논란이 있었지만 그분을 믿고 K칩스법이 조세소위를 통과했고 본회의 통과도 앞두고 있지 않나"라며 "에너지 분야도 여당이든 야당이든 비례대표로 전문가가 입성하면 당리당략을 떠나 여야 간에 충분하게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초당적으로 꼭 통과시킬 필요가 있는 법안들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충분하게 자기 전문성을 가지고 설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정치평론가 "전문가 들어와도 활용도 낮아…근본적인 정당 체제 개혁해야"
정치평론가들은 우리나라 국회의원에 에너지 전문가가 들어오더라도 전문성을 활용하기 어렵다는 것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박상병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전문성이 있는 사람들이 들어오더라도 여야가 나눠지기 때문에 결국 전문성보다 당에 충성하게 되는 정당 체제의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근본적인 문제는 제왕적 대통령 제도의 문제다. 그 어떤 전문가가 들어오더라도 진영 싸움에서 휘둘려질 수밖에 없다"라면서 "대통령 뜻에 반대하는 경우 지탄을 받고 여야 대립만 극단적으로 흘러가 협치가 어려운 상황만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되는 것을 해소하기 위해서 선거구제의 변화가 필요하다"며 "모범적인 사례가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정당 득표율에 따른 비례대표제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전문성을 강화하는데 이 제도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 내에 전문가가 들어오더라도 대부분은 비례대표로 들어오면서 초선 의원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원내에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입성을 하더라도 대부분 비례대표로 들어오고 그들이 초선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아무리 전문가더라도 (초선이면)자신이 낸 안을 관철시켜 가는 과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비례대표 전문가들의 말을 잘 들어주지 않는 현재 국회 내부의 분위기가 바뀌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정당 개혁이 돼야 한다"며 "기본적으로 미국처럼 중앙당과 원내 정당의 분리가 돼야 전문가들이 공천이 되기 쉽고 더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원내 정당이 모든 것을 장악하는 힘이 너무 큰 구조"라며 "당원들 눈치를 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전문가들의 활동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현재 중앙당과 원내 정당이 분리돼 있다. 중앙당의 대표는 현역 의원이 아닌 대부분 유권자들이 맡게 된다. 그야말로 그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가 정당의 주인인 것이다. 따라서 상시 활동이 많지 않고 선거철이 다가오면 출마할 사람들을 선출하고 지원하는 활동이 많다. 의원들은 원내 정당을 중심으로 담당한다.
이 평론가는 "미국의 전국위원회에서는 유권자들이 대통령 후보부터 시작해서 각 지역 국회의원 출마자까지 선출해서 내보내고 그 사람들을 당선 시키기 위해 애를 쓴다"며 "당선 후에 의정 활동을 제대로 하는지 감시한다. 의정활동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공천을 하지 않는 식으로 응징한다. 그렇기에 (의원들) 모두가 전문성을 가지고 의정활동에 임한다"고 설명했다.
이 평론가는 "우리나라 정당 체제도 중앙 전국위원회 형태로 바꾸고 의원들은 원내 정당 중심으로 움직이면 유권자들의 힘이 강해져 많은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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