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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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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초고령 사회, 은퇴의 재구성 필요하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8.07 08:35

방준석숙명여자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대한약국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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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준석숙명여자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대한약국학회 회장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성찰을 통해서 내적 음성(inner voice)을 따르는 것을 중시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이를 ‘소명(召命)의식’이라고도 하는데 어떤 일을 하든 ‘평범한 일상과 일터에서 자신이 지속적으로 추구해나가는 것’으로 해석되며 심리학과 경영학에서도 주목하는 영역이다. 일에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차이가 크다. 소명의식을 가진 학생은 학업에 대한 몰입도와 진로선택에 대한 효능감과 성숙도가 높고, 직장인은 담당업무에 대한 몰입도가 높으며 직무스트레스는 상대적으로 낮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국내외 기업직장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도 같은 조직, 같은 업무 안에서 구성원간 소명의식의 차이는 뚜렷하고 업무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공통적인 결과가 많다.

통계학적으로 한 국가의 평균수명이 연장됐다는 사실은 개인에게 어떤 의미일까? 개인적 노화와 더불어 초고령사회를 향유할 이상적 조건으로 건강과 재정, 일과 대인관계와 사회참여 등을 손꼽는다.민수기 8장 23~25절 부분을 제외하면, 성경 속에 은퇴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전통적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나이가 들어도 계속 일하는 것이 당연시된다. 이는 비기독교 문화권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은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공식적으로는 1889년 독일에서 비롯됐다고 거론한다. 하지만 인류사의 획기적 사회변화가 안정적인 문화로 정착되기도 전에 인류는 초장수시대로 진입하면서 지난 100여년 간 지속돼 ‘은퇴’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고령자의 은퇴는 이제 전체 사회구성원에게 피할 수 없는 강렬한 충격이 됐다. 긍정적 측면으로는 공식적 은퇴를 겪은 노인에게 또 다른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인간의 재능과 기질, 삶의 경험에 비추어 더 적합한 일을 할 수 있는 제2, 제3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개인적 소명의식을 재평가할 기회이기에 유익한 변화임은 틀림없다. 은퇴 후에도 할 일(노동)이 있다. 여기서 ‘노동’이란 ‘분명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에너지를 확장하는 일’이라고 학자들은 정의한다. 하지만 저출산·고령화의 현실에서 은퇴 고령자의 급격한 증가는 국가와 젊은층에게는 잊고싶은 악몽이다. 역설적이지만 서구식 은퇴와 연금제도모델을 이제 막 수용한 우리나라는 이를 정착시키기도 못한 상황에서 다시 서구발 ‘재구성된 은퇴’ 모델 도입을 고려해야 할 처지다. 산업화의 중추적 역군으로 활약한 액티브 시니어 세대가 ‘은퇴·연금·100세 장수시대’라는 삼박자를 무탈하게 향유하려면 새로운 은퇴 패러다임에 적응할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소명의식이나 노동, 은퇴, 여가에 대해 세계 선도적 연구활동이 미약하고 문화적,제도적 기반도 부족한 가운데 산업화를 마치자마자 급격한 저출산·초고령 시대로 진입했다. 고령의 은퇴자들이 고백하기를 "이제 나에게 남은 단 하나의 계획이 있다면 부디 ‘잘 죽는 법’을 배우고 싶다"라고 한다. 노년기에 이르러 개인적 소명을 찾는 일도 쉽지 않다. 그래서 매 순간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소명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소명을 지키기 위한 훈련도 필요하다. 선진사회의 노년학 학자들은 노인이 갖춰야 할 미덕으로절제, 겸손, 인내, 단순함, 믿음(절대자를 향한 뜨거운 반응), 소망(마지막 때를 향하는 사실을 인정·다음세대를 위한 투자· 평안한 죽음을 대비), 그리고 사랑(사람·장소·공동체를 향한 진심어린 돌봄) 등을 꼽는다.

10년 뒤인 2035년 우리나라에서 노인이 1600만명으로 비율이 30%를 넘는다. 은퇴고령층을 위한 부양비,연금,의료비 폭증에 대한 대안은 과연 적절한지 우려된다. 국가생산력 감소,소득세 인상에 따른 가처분 소득 감소,부동산 잠재가치 폭락,기업의 해외이전,젊은 인재의 해외이민을 우려하는 경고등이 켜졌다. 엄청난 변화와 충격과 세대간 갈등을 극복하려면 속히 은퇴의 개념을 재구성하고 냉정하고 차분하게 대비해야 한다. ‘놀고 즐기는 100세 시대’는 어쩌면 신기루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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