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7월 05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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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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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편집된 인용, 오도된 진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11.06 08:31

노동석 에너지정보문화재단 원전소통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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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석 에너지정보문화재단 원전소통지원센터장

1986년 영국 가디언지는 30초짜리 짧은 ‘관점’ 광고를 TV와 영화에 내 보냈다. 첫 번째 관점은 한 남자가 차를 피해 도망치는 듯한 장면이고, 두 번째 관점은 차를 피해 도망치는 줄 알았던 남자가 양복차림 남자의 서류가방을 탈취하려는 듯한 장면이며, 세 번째 관점은 차로부터 도망치며 가방을 탈취하려고 하는 듯한 남자가 양복차림 남자를 잡아채서 떨어지는 건축자재를 피하게 하는 장면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장면만 봤다면 남자를 누군가에 쫓기는 강도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세 번째 장면까지 전부 봤다면 남자가 떨어지는 건축자재를 발견하고 양복 입은 남자를 구한 착한 사람임을 비로소 알게 된다. 어떤 일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관점에 따라 달라지므로 사실을 제대로 알려면 전체를 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다. 이 광고는 대성공을 거둬 가디언지가 다른 언론 매체에 비해 진실을 보도한다는 인식을 크게 높였다. 오늘날에도 언론의 진실 보도를 촉구하는 소재로 자주 인용된다.

요즘 ‘악마의 편집’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지난 20대 대선 선거일 직전 윤석열 대통령은 상대 후보로부터 ‘대장동 몸통’이라는 거센 공격을 받았다. 아마도 유권자의 막판 표심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대선 일년 반이 지나 ‘윤석열 커피’ 보도는 의도적으로 편집된 것이었다는 정황과 증언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관련 보도를 했던 유력 보도매체는 "보도에 누락, 왜곡이 있었다"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만들어진 진실」의 저자 헥터 더글라스는 오도자를 "잘못된 현실 인식을 만들어낼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그런 내용의 경합하는 진실을 적시하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관련 인터뷰 내용을 선택적으로 편집, 보도한 기자는 오도자이다.

이런 종류의 사건은 에너지분야에도 종종 발견된다. 팩트 체크를 가장해 잘못된 정보가 보도되기도 한다. 얼마 전 한 경제지는 슈뢰더 전 독일총리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기사의 제목은 ‘獨, 섣부른 탈원전으로 경쟁력 추락’이었다. 유사한 내용이 국내외 언론에서 자주 다뤄지긴 했지만 유독 이 매체가 대상이 됐다. ‘뉴스의 이면, 팩트 너머의 진실’을 표방하는 언론비평지(신문도 발행한다)는 선택된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일부 발언만 가지고 탈원전 때문에 독일에 에너지 위기가 온 것처럼 잘못 묘사", "탈원전 관련 보수 신문의 악의적 프레임" 등의 표현으로 비판했다. 특히 "독일의 도매 전기요금이 프랑스보다 오히려 더 싸다"는 대목에는 어리둥절할 뿐이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알려진 독일의 전기요금이 프랑스 보다 싸다니 말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독자는 도매 전기요금을 전기요금으로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은 팩트다.

전력시스템에서 재생에너지의 공급비중이 늘어날수록 도매가격은 낮아진다. 독일의 경우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 변동비가 ‘0’인 재생에너지가 한계설비가 되는 시간대가 많다. 이때 도매 전력가격은 ‘0’이 된다. 나아가 공급전력이 수요를 초과할 때는 ‘마이너스’ 도매가격이 발생하기도 한다. 독일에서는 1년 8760시간 중 2021년 139회, 2022년 69회의 마이너스 도매가격이 발생했다. 따라서 독일의 도매 전기가격이 프랑스 보다 싸다는 말은 팩트다.

그렇지만 소비자가 지불하는 독일의 전기요금이 프랑스 보다 싸다는 말은 오보다. 2010년 이후 독일의 비가정용 전기요금이 프랑스에 비해 싼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https://tradingeconomics.com/germany/electricity-prices- non- household-medium-size-consumers-eurostat-data.html) OECD/IEA에서 발행하는 「Energy Prices and Taxes」의 2022년 산업용 전기요금 비교에서 137.1달러 대 203.5달러로 독일이 훨씬 비싸다. 세금을 제외해도 130.6달러 대 166.7달러다. 해당 기자가 이 사실을 알고 기사를 썼다면 그 기자는 ‘선택적 인용’으로 사실을 왜곡한 것이고, 모르고 썼다면 취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팩트를 넘어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은 ‘탈원전 관련 진보 신문의 악의적 프레임’을 설정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렇게 본다면 ‘재생에너지는 원자력보다 싸다, 또는 재생에너지는 원자력 보다 비싸다’라는 완전히 대립되는 명제도 둘 다 사실로 보도될 수 있다. 전자는 유럽 등의 나라에서, 후자는 한국에서를 생략한다면 말이다. ‘만들어진 진실’의 한 구절. "사건을 한 가지 관점에서 보면 한 가지 인상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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