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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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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항공기·선박·군 장비 탄소중립 해법은 ‘인공석유’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11.13 08:32

박성우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정책실장

박성우

▲박성우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정책실장

기후위기 시대에 탄소중립을 위해 전기화가 급속히 이루어지고 있다. 전기는 풍력, 태양광, 원자력과 같은 무탄소 전원을 이용해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종에너지 소비량 중에서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도 2000년 14%에서 2021년엔 21%로 늘었다.

전기는 모자라도 안 되고 남아도 안 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많아 전기 생산량이 소비량보다 많은 시간대에는 남는 전기를 저장할 곳이 필요하다. 배터리나 양수 발전소를 이용하면 좋지만 비용과 입지가 문제다. 전기화에 따라 전력망도 대폭 확대해야 하는데 수용성과 비용 문제 로 많은 국가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산업이나 건물부문에서는 전기를 이용해 공장을 가동하거나 냉난방을 하기가 쉽다. 반면 수송부문은 전기화가 어렵다. 2021년 수송부문의 전기 소비량 비중이 0.9%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이를 잘 보여준다. 수송부문은 우리나라 최종에너지 소비량의 17%를 차지하고 있어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수송부문의 저탄소화 역시 중요하다. 섹터 커플링(sector coupling)을 통해 수송부문의 저탄소화를 실현할 수 있다. 섹터 커플링은 발전, 난방, 수송 등의 여러 부문을 연결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전기가 저장이 어렵다는 특성과 수송부문의 저탄소화를 위해서 전기차와 더불어 수소를 섹터 커플링의 중간고리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현재 수소 저장 기술은 부피당 에너지가 높지 않아 효율적인 저장과 운송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에너지 저장 밀도를 높이기 위해 고압 압축 또는 극저온 액화 방식이 사용되고 있다. 수소를 이용해 암모니아나 각종 탄화수소계 연료를 합성할 수도 있는 데 이를 e-Fuel이라 부른다. e-Fuel은 재생에너지로 물을 전기분해해 생산한 그린수소(H2)와 공기 중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CO2)로 만든 인공석유다. e-Fuel은 연소할 때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만, 제조할 때 이산화탄소를 활용하기 때문에 전 과정 평가 관점으로 보면 탄소가 재순환된다. e-Fuel을 탄소중립연료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를 추진하던 EU는 e-Fuel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예외로 인정하기로 했다. 자동차산업 강국인 독일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e-Fuel의 제조 기술 가운데 이미 상용화된 ‘피셔-트롭쉬(Fischer-Tropsch) 합성법’은 1926년 독일의 화학자 피셔와 트롭쉬가 석탄가스화에 의한 합성가스를 이용해 휘발유, 경유 등과 유사한 인공석유를 제조하는 기술을 개발한데서 시작됐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후 석유 수입이 막혔다. 석탄이 풍부한 독일은 석탄석유화 공장 25곳에서 하루 12만 배럴이 넘는 인공석유를 만들면서 버텼다. 당시 독일 항공 휘발유의 92% 이상과 전체 석유의 절반을 인공석유 공장에서 생산했다. 1944년 말부터 1945년 초에 연합군이 독일의 인공석유 공장에 집중적인 폭격을 가하기 시작하자 독일의 전쟁 기계 전체가 멈춰 섰다. 휘발유 부족은 전쟁의 종식을 의미했다. 전쟁이 끝나면서 이 기술은 잊혀지는 듯했다.

그러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1950년대부터 악명 높은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를 실시하면서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자, 남아공 정부는 인공석유 생산을 위해 화학회사 사솔(Sasol)을 전폭 지원해 피셔-트롭쉬 공정을 개선했다. 사솔은 하루 16만5000 배럴의 생산용량을 갖춘 인공석유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석탄 매장량이 많지만 석유는 거의 없는 남아공에서 석탄을 사용해 남아공 석유 수요의 약 40%를 충당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 연료가 들어온 적이 있다. 2002년 남아공 사솔사의 제품을 수입한 것이다. 바로 ‘슈퍼세녹스’다. 석탄액화연료는 대체에너지법에 대체에너지로 규정돼 있어서, 수입사는 교통세가 면제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정부는 관련 법규를 개정해 휘발유와 같은 세금을 부과했다. 법 개정으로 인해 당시 휘발유보다 비싸져 가격 경쟁력을 상실했다.

사솔의 방식은 석탄으로 인공석유를 만드는 것인데, 이 공정을 개조한 제조법이 석탄의 탄소 대신 공기 중에서 포집한 탄소를, 물을 전기분해해 생산한 수소와 결합시킨 e-Fuel이다. 액체 상태의 e-Fuel은 기존 석유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어 수송부문의 전동화에 필요한 인프라 투자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대규모 수전해와 탄소 포집 설비가 충분하지 않고, 가격 경쟁력이 화석연료에 비해 떨어진다는 점은 극복해야 할 과제다.

삼면이 바다인 데다 북으로 막혀 있는 지정학적 여건 때문에 우리나라는 수출입을 해운과 항공물류에 의존하고 있으며, 북한과의 관계 때문에 충분한 국방력을 유지해야 한다. 2050년 이후에도 전기화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항공기, 선박, 군용차(트럭·장갑차 등)의 탄소중립을 위해 e-Fuel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탄소중립 시대의 에너지 시스템은 각국의 상황과 지리적 위치 등에 따라 다양한 체제가 공존할 것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e-Fuel과 같은 에너지원을 포함해 다각적이고 광범위한 에너지 포트폴리오를 짜고 여기에 필요한 기술개발과 실용화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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