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시초는 영국에서 출발한다. 책 ‘자본주의’에 따르면 화폐라는 개념이 없던 17세기 영국에서는 금을 녹여 만든 금화를 화폐처럼 사용한다. 당시 무거운 금화를 들고 다니기 어려웠던 사람들은 금세공업자에게 금화를 맡겼고, 금세공업자는 이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며 이자를 받았다. 이런 과정이 발전되며 지금의 은행 시스템이 자리잡았다. 남의 돈으로 돈을 버는 것이 은행의 기본적인 속성인 셈이다.
은행산업이 이자로 돈을 버는 것이 기본 속성이라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은행을 곱게 보지 않는다. 공공성에 대한 요구가 추가되기 때문이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겪으면서 은행에 막대한 공적 자금이 투입됐고 은행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이같은 분위기는 현재 은행에 대한 상생금융 압박으로도 이어진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소상공인과 서민의 생활은 어려워진 반면 은행은 막대한 이자이익을 거둔 만큼 은행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상생금융 압박이 달갑지 않은 것은 강제적이고 일시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치권, 금융당국이 나서 사실상 은행이 벌어들인 이익을 환원하기를 압박하고 있다. 지난 20일 금융당국을 만난 금융지주사들은 연말까지 상생금융에 대한 세부 내용을 발표해야 한다. 자영업자·소상공인 등 취약층에 대한 대출 금리 인하 등의 방안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도덕적 해이와 역차별 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 앞으로도 은행은 계속 이자이익을 벌어들이는데 그 때마다 추가적인 상생 방안을 요구할 것인지 의문이다.
정치권에서 추진하고 있는 횡재세도 비슷하다. 횡재세는 초과이익의 최대 40%의 기여금을 징수한다는 내용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정교하게 대응해야 하는 은행산업에 대한 규제를 법으로 정하는 것은 우려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은행이 초과이익을 내지 못하고 수익이 줄어들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없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은행은 이자로 돈을 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자이익 자체를 꼬집기 보다는 은행이 책임감을 가지고 사회적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금융 지원은 물론 다양한 비금융 지원을 통해 은행이 사회 곳곳에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강제력은 일시적이다. 지금과 같은 강압적인 분위기로는 은행의 사회적 책임이 장기적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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