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업 참여로 지어진 강릉안인화력발전소의 전경. |
[에너지경제신문 이원희 기자] 공공의 영역 중 하나인 전기도매시장에도 자유시장경제의 바람이 불고 있다. 탄소중립 시대를 맞아 전기도매시장 참여자를 공기업 중심에서 민간기업으로 확대하고 경쟁을 유도해 에너지효율을 높이면서 전기도매가격은 낮추겠다는 설계다.
전문가들은 전기도매시장에 시장경제를 일부 도입하는 게 필요하지만 전기는 공공재 성격도 일부 있는 만큼 전기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 "전력도매가격, 지역별 수요공급 상황에 따라 차별화돼야"
1일 전력당국에 따르면 전력도매가격(SMP)에 지역별 한계가격(LMP)을 도입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LMP란 지역별 전력수급 상황에 따라 전력도매가격을 다르게 측정하는 방식이다.
전력 공급이 수요보다 넘치는 곳에서는 LMP를 저렴하게 적용한다는 일종의 시장경제 논리다. 반대로 전력 수요가 공급보다 많으면 LMP는 오를 수 있다.
정부가 LMP를 전력도매시장에 적용하려는 이유는 전력 생산량이 지역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이에 LMP로 전력 생산량이 소비지역보다 부족한 지역에 발전설비를 유치하겠다는 계획이다.
□ 지역별 전력발전량과 소비량. (단위: TWh)
구분 | 수도권 | 강원권 | 충청권 | 영남권 | 호남권 |
발전량 | 144.4 | 33.9 | 114.1 | 220.0 | 80.0 |
소비량 | 214.8 | 17.3 | 92.9 | 151.2 | 71.7 |
자급률(발전량/소비량 | 0.67 | 1.96 | 1.23 | 1.47 | 1.12 |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지역별 전력발전량과 소비량은 각각 △수도권 144.4테라와트시(TWh), 214.8TWh △강원권 33.9TWh, 17.3TWh △충청권 114.1TWh, 92.9TWh △영남권 220.0TWh, 151.2TWh △호남권 80.0TWh, 71.7TWh이다.
지역별 전력발전량에서 소비량을 나눈 값인 전력자급률은 △수도권 0.67 △강원권 1.96 △충청권 1.23 △영남권 1.47 △호남권 1.12다.
즉 수도권만 전력발전량보다 소비량이 많다. 강원권은 전력발전량이 소비량보다 거의 두 배 더 많다.
지역별로 전력수급량의 편차가 크면 그만큼 전력을 옮길 송전망 건설 부담은 커진다.
강원도에서 남은 전력을 수도권으로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송전망 건설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모든 지역에서 전력자급률을 1에 가깝게 맞추는 게 최선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수도권의 LMP를 높이고 강원권이나 영남권에서는 LMP를 낮춰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발전사업자들이 강원권이나 영남권이 아닌 전력발전량이 부족한 수도권 등에 발전소를 건설하도록 유도할 수 있어서다.
발전사업자들은 수도권에 발전설비를 건설하면 LMP로 강원권과 영남권에 건설한 것보다 더 비싸게 전력을 팔 수 있다.
송전망 건설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다 보니 산업부는 지난달 서해안 해저 초고압직류송전(HVDC)에 민간투자를 유치하겠다고 알렸다.
서해안 HVDC는 신해남∼태안∼서인천을 거치는 구간이 430㎞, 새만금∼태안∼영흥 구간이 190㎞에 이르며 총비용은 7조9000억원, 수송 능력은 8기가와트(GW)에 이를 것으로 정부는 전망하고 있다.
설비용량 1GW의 원전에서 생산한 전력을 나를 수 있는 규모다.
에너지경제신문이 지난해 5월 개최한 ‘에너지 수요 분산 정책 필요성과 과제 세미나’에서도 LMP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는 송전거리에 따라 발생되는 전력손실 비용을 모든 지역이 동일 부담하고 있다"면서 "장기적으로는 LMP적용을 통해 발전기와 수요 분산을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 5월 분산에너지특별법에 지역별 전기요금차등제가 담기면서 이에 앞서 LMP의 도입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지역별 전기요금차등제란 전력생산량이 많은 지역에 전기소매요금을 더 낮춰주는 제도다. 전기소매요금을 지역별로 조정하기에 앞서 LMP로 도매가격을 손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 전력도매가격 결정 주요 역할 액화천연가스 시장서 민간개방 바람
SMP를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액화천연가스(LNG)의 거래시장도 민간에 개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LNG시장에서 민간사업자들도 LNG를 수입해와서 거래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만 한국가스공사가 독점으로 관리하는 LNG 시장에 민간기업이 들어오면 LNG 가격이 오히려 뛸 수 있다는 반박도 나온다.
민간기업이 LNG 가격에 따라 유불리를 따지고 유리할 때만 LNG를 수입해 발전하는 일종의 ‘체리피킹’을 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민간기업이 LNG를 비싸게 사와서 발전하면 SMP도 뛸 수밖에 없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동안 LNG 가격이 SMP를 결정한 비율이 가장 높은 달이 10월 98.8%로 가장 낮은 날은 57.9%이다. 지난해 동안 LNG 가격이 SMP를 정하는 데 절반 이상은 항상 영향을 미친 것이다.
국회에서는 민간사업자들이 LNG를 수입하고 팔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이 발의돼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권명호 국민의힘 의원(울산 동구)은 지난해 12월 도시가스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LNG 직수입자가 수입한 물량을 가스공사 또는 다른 직수입자에게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 하는 게 주요 골자다.
LNG 직수입자는 산업용 및 발전용의 자가 사용분에 한해서만 수입을 할 수 있다. LNG 직수입자끼리의 거래는 금지돼있다.
권 의원은 법안 발의 이유에 대해 "우리나라 가스시장은 가스공사 독점구조가 근 40년 이상 유지돼 가스산업의 효율화 및 가스시장의 발전을 꾀하는데 구조적 한계가 있다"며 "국제 에너지시장의 환경 변화에 따라 민간사업자들이 탄력적으로 대응하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고, 에너지 안보 및 국가수급안정을 위해서도 해외 국가들과 달리 도매시장 독점구조로 국가 수급을 1개 기업에서 책임지고 담당하는 상황은 불안하고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직수입자를 활성화해 복수의 사업자가 해외 투자 및 공급선 다변화를 통해 국가 수급 안정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직수입 활성화를 위해서는 직수입자간 재판매 허용을 통해서 안정적으로 물량을 확보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국감에서는 가스 직수입자에 대한 체리피킹 문제가 꾸준히 지적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야당에서는 민간사업자들이 직수입으로 과한 이익을 얻고 있다고 지적한다. 민간사업자들이 비싸게 LNG를 사오면 그만큼 전력도매가격도 상승할 수밖에 없다.
국회 산자위 소속 김정호 민주당 의원(경남 김해시을)은 지난해 10월 열린 산자위 국감서 "지난해 국제 가스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을 때 가스 직수입 발전사는 체리피킹으로 지난 2022년 영업이익이 1조8000억원에 달했다"며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국내 천연가스 수급의무가 없는 직수입 민간발전사는 LNG 현물 시황에 따른 선택적 도입으로 국가 발전량 수급 불안을 야기하고 고비용 발전부담을 공기업 발전사와 가스공사에게 전가했다"며 "저가 직도입 시 이득만 취하고 고가 도입 시 직도입을 줄이며 가스공사에 의존하는 형국"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국민부담을 가중시켜 이득을 취하는 민간발전사의 체리피킹을 근절하기 위해 민간발전사의 비축 의무화 및 불이행 패널티 부과를 즉시 도입하고, 에너지위기상황에서 에너지기업의 초과이익을 회수하는 횡재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LNG 시장을 민간에 개방하는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재생에너지 전력판매시장도 내년 2월부터 시장경제 시대 맞아
재생에너지 전력판매시장도 내년 2월 제주도를 시작으로 시장경쟁 체계가 도입된다.
재생에너지 입찰제도를 통해 입찰물량 안에서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끼리 입찰경쟁을 시킨다.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들은 다른 사업자들보다 저렴한 가격을 입찰시장에 제시하지 못하면 전력을 생산해도 팔지 못할 수도 있다.
□ 제주도 전력시장 제도 개편 주요 내용
사업내용 | 주요 내용 |
재생에너지 입찰제도 | 설비용량 1MW 초과 재생에너지 발전예측량 및 가격입찰 |
실시간 시장 | 실시간 전력수급을 고려한 발전계획 수립 및 가격 결정 |
예비력 시장 | 재생에너지 변동성 대응을 위한 예비전력 가격 결정 |
재생에너지 전력은 한국전력공사와 전력거래소 등에서 별다른 조건 없이 생산만 하면 SMP를 반영해 무조건 구매해줬다. 재생에너지 전력은 연료비가 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전력이 점점 늘어나면서 전력계통에 불안을 주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전력은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에 산업부는 재생에너지 전력을 더는 SMP에 따라 무조건 구매해주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그동안 재생에너지 전력을 생산만 했어도 무조건 팔 수 있던 기존 시장하고는 달라지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입찰제도와 실시간·보조서비스 시장은 올해 10월 제주도에서 모의운영을 거치고 내년 2월에 본격 도입된다.
재생에너지 입찰제도 참여대상은 설비용량 1메가와트(MW) 이상 발전량을 제어가능한 재생에너지 발전소로 3MW 이상이면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발전소 단독 혹은 가상발전소(VPP)로 여러 개의 소규모 발전소를 하나로 모아서 재생에너지 입찰제도에 참여할 수도 있다.
재생에너지 입찰제도에서 재생에너지는 전력수급 상황에 따라 전력을 생산하거나 멈춰야 하는 급전지시에 따르게 된다. 대신 재생에너지도 다른 에너지원처럼 발전소 설치비용 등 투자비 회수를 위해 제공하는 ‘용량정산금’을 받게 된다.
재생에너지 입찰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실시간시장과 보조서비스 시장도 열린다.
재생에너지 입찰제도는 하루 전에 다음 날 예상 발전량을 거래한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날씨에 따라 달라져 전날 예측량과 실제 발전량이 다를 수 있다.
이에 당일에 15분 단위로 전력을 거래하는 실시간시장과 보조서비스 시장을 만들어 재생에너지 입찰제도에서 거래한 전력보다 더 필요한 전력을 구매하겠다는 계획이다.
보조서비스 시장에는 재생에너지가 아닌 에너지저장장치(ESS)도 참여 대상이다.
유종민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에너지시장은 부문별로 한전과 가스공사의 독점 체제가 유지돼왔다. 독점은 정체를 불러왔고 효율성을 크게 저해했다"며 "에너지시장에서도 시장경제의 훈풍이 불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이러한 에너지시장의 자유경쟁 도입도 안정적 에너지수급을 지키는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탄소중립이나 시장을 통한 효용증대라는 목표도 에너지안보라는 상위개념을 거스르지 않는 하에서 추구할 수 있는 추진 과제임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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