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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효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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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성분 탄 물·죽으로 남편 살해 혐의, 직접 맛본 판·검사 반응은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1.11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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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고법 전경.연합뉴스

[에너지경제신문 안효건 기자] 이른바 니코틴 남편 살해로 1·2심 징역 30년을 선고받았다가 대법원 파기환송으로 다시 재판받게 된 아내가 무죄를 호소했다.

11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수원고법 형사1부(박선준 정현식 강영재 고법판사) 심리로 진행된 파기환송심 결심 공판에서 마지막 발언 기회를 얻은 A씨는 "진실을 밝혀달라"고 오열했다.

A씨는 "어쩌면 마지막 법정 진술 기회일지도 모른다. 최후진술을 하겠느냐"는 재판장 질문에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말을 잇지 못하고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한동안 흐느끼던 그는 이내 자리에 앉아 목 놓아 오열했다.

이에 변호인은 재판부에 "진술이 어려울 것 같으니 의견서를 제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재판장은 "장장 2년 6개월 가까이 진행된 조사와 재판 절차의 사실상 마무리 단계다. 시간이 필요하면 주겠다"고 재차 발언 기회를 제공했다.

피고인석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끼던 A씨는 "미련이 남지 않겠느냐"는 재판장 설득에 일어나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제 사건은 무죄다. 오늘 법정에 오는데 검찰 차 앞에 ‘행복한 국민, 정의로운 검찰’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걸 보고 원망스러웠다. 진실은 꼭 밝혀질 거라고 믿는다"고 울먹이며 진술했다.

A씨는 2021년 5월 26∼27일 남편에게 3차례에 걸쳐 치사량 이상 니코틴 원액이 든 미숫가루와 흰죽, 찬물을 먹게 해 남편이 니코틴 중독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남편은 26일 A씨가 건넨 미숫가루·흰죽을 먹고 속쓰림과 흉통 등을 호소하며 그날 밤 응급실을 다녀왔다. 귀가 후인 27일 오전 1시 30분∼2시께 A씨는 남편에게 재차 찬물과 흰죽을 건넸다. 이를 받아 마신 남편은 1시간∼1시간 30분 뒤인 오전 3시경 사망했다.

1심은 미숫가루와 흰죽, 찬물을 이용한 범행 모두를 인정했고 2심은 찬물을 이용한 범행만 유죄로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해 7월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며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 가운데 검찰은 이날 재판부에 원심 때와 같은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검찰 측은 "이 사건은 새벽에 피고인과 피해자 아들이 사는 주거지에서 발생해 목격자 있을 리 없고 피해자가 무얼 당했는지는 피고인 진술과 부검 결과, 휴대전화 포렌식을 통해 확인할 수밖에 없다"며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피고인이 니코틴을 음용하게 해 살해했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피고인이 가정생활 기반을 감내하고라도 강렬한 살해 동기가 존재해야 한다고 판시했는데, 이 사건 발생 당시 피고인 생활 기반은 피해자가 아니라 내연남이었다. 이미 (피해자와) 가족관계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변호인 측 ‘피해자의 자살 가능성’ 주장에는 "사건 당일 피고인은 피해자를 위해 119에 신고하고 함께 응급실에 갔다 귀가하면서 아들의 생일에 대해 대화하는 등 모습을 보였다"며 "피해자가 이런 피고인을 보고 (내연관계를 이유로) 자살을 결심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반면 변호인은 검경 부실 수사를 주장하며 피고인의 무죄를 강조했다.

A씨 측 변호사는 최후변론에서 "검찰은 파기환송 된 이후 공소장을 변경했는데 이는 장기간 진행된 재판에서 한 번도 주장하지 않았던 살인 방법"이라며 "범행 수법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인데 파기환송심에서 주장한다는 것은 그동안 검찰 수사가 얼마나 진행됐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밝혔다.

검찰이 사건 당일 새벽 1시 30분에서 2시 사이에 찬물에 니코틴을 타 살해했다는 공소장 내용을 ‘찬물과 흰죽에 타 살해했다’고 변경한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어 "처음부터 수사기관에서 범인을 잘못 지목해 수사가 진행된 사건이라고 확신한다"며 "대법원이 그동안 제출된 증거, 검찰 의견서 등을 종합해 조목조목 판단해줬기 때문에 변호인 의견서를 참작해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변호인은 니코틴 용액(희석액)을 법정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에 재판장과 수사 검사가 직접 향을 맡아보고 시음했다.

변호인 측은 그동안 니코틴 용액의 냄새와 맛 때문에 피해자 몰래 음식에 타는 방법으로 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재판장은 제출된 니코틴 용액 한 방울을 손등에 떨어뜨려 맛본 뒤 "박하 향이 굉장히 강하게 나면서 아리는 듯한 맛이 나네요"라고 말했다. 이에 변호인은 "통증처럼 느껴진다"고 답했다.

검사도 직접 향을 맡아보고, 종이컵에 담긴 물에 용액을 몇 방울 섞어 마셔보았으나 별다른 반응은 하지 않았다.

한편, 이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기일은 내달 2일 오전 10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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