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충남 서천군 서천읍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
[에너지경제신문 오세영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갈등이 이틀만에 봉합 국면에 급속 접어들었다.
윤 대통령과 한동훈 위원장이 23일 충남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함께 전격 방문,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악수하며 현장 점검했다.
이날 서천은 영하 6.3도로 눈바람이 매우 거세 서 있기도 어려울 정도의 날씨였다.
녹색 민방위복 차림의 한 위원장은 현장에 먼저 도착해 약 15분 동안 시장 어귀에 서서 윤 대통령을 기다렸다.
남색 패딩 점퍼 차림의 윤 대통령은 도착 직후 당 관계자들과 차례로 인사를 나눴다.
한 위원장을 알아본 윤 대통령은 악수한 뒤 어깨를 툭 치며 친근감을 표했다.
이에 한 위원장은 허리를 90도에 가깝게 깊이 숙여 인사한 뒤 웃으며 윤 대통령을 맞이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3일 충남 서천군 서천읍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 허리숙여 인사하고 있다. |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충남 서천군 서천읍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만나 인사하고 있다. |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이어 지역 소방본부장으로부터 화재 진압 상황을 보고받았다.
윤 대통령은 보고 중 직접 몇 가지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한 발자국 뒤에 떨어져 보고를 들었다.
이후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서천 시장 입구 앞에 나란히 서서 불에 탄 내부를 둘러보고 각자 다른 차량을 타고 떠났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익산역에서 다시 만나 함께 열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한 위원장은 서울역에 도착한 뒤 기자들과 만나 이른바 ‘윤·한 갈등이 봉합되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통령님에 대해 깊은 존중과 신뢰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대통령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민생을 챙기고 국민과 이 나라를 잘되게 하겠다는 생각 하나로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보다 더 최선을 다해서 4월 10일에 국민의 선택을 받고, 이 나라와 우리 국민을 더 잘 살게 하는 길을 가고 싶다"고 다짐했다.
한 위원장은 열차에서 윤 대통령과 "여러 가지 민생 지원에 관한 얘기를 길게 나눴다"고 전했다.
이어 "결국 정치는 민생 아니겠나. 그런 점에서 (윤 대통령이) 민생에 관한 여러 가지 지원책이라든가 이런 부분에 대해 건설적인 말씀을 많이 하셨고, 제가 잘 들었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과 한동훈 위원장의 갈등 기류가 심상 찮게 돌아가던 전날 분위기와는 전혀 딴판으로 정치권에선 읽혀졌다.
이날 양측의 봉합 국면은 당정 갈등이 시작되자 여권 내에서 이번 사태를 그대로 둘 경우 총선에서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악화 여론에 부담을 느낀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한동훈 위원장이 전날 이른 아침 ‘마이웨이’를 선언하며 일전불사의 결기까지 보였고 윤 대통령은 당일 한동훈 위원장의 언급이 나오자마자 곧바로 생방송이 예정된 오전 ‘민생토론회’에 갑자기 불참했다. 비록 대통령실이 ‘감기 기운’을 이유로 내세워 행사시작 30분 전 윤 대통령의 민생토론회 불참을 공지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오후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했다.
윤 대통령은 당초 이날 외부 공식 일정을 잡지 않았지만 피해 상황을 보고받고 직접 현장을 돌아보기로 했다고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새벽에도 행정안전부 장관과 소방청장에게 "가용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해 화재 진압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한 위원장 역시 원래 예정된 일정을 조정해 윤 대통령과 비슷한 시간대에 현장에 도착했다.
정치권 안팎으로는 국민의힘 친윤석열(친윤)계 주류가 갈등을 봉합하고 수습할 것이라며 확전을 자제했고 대통령실 역시 당과 물밑 대화를 이어 가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 친윤계 인사들은 지난 주말 한 비대위원장의 사퇴 요구로 절정에 달했던 갈등이 수습 국면에 들어간 것으로 평가하며 일단 봉합에 나선 모습이다.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의 최근 갈등 양상과 관련해 "아주 긍정적으로 잘 수습이 되고 봉합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친윤 핵심’으로 꼽히는 이 의원은 이날 KBS 라디오에서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이 한 위원장에게 사퇴 요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데 대해 "소통하는 과정에 조금씩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의원은 "아마 세 분(이관섭 실장, 한동훈 위원장, 윤재옥 원내대표)이 만나 대화하는 과정에서 우려를 전달하고 우려를 전달받는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이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이어 ‘한 위원장 사퇴는 여권 공멸 아닌가’라는 사회자의 발언에 "너무 나간 이야기"라며 "마치 사퇴가 전제된 것처럼 말하는데 그 단계까지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특히 김경율 비상대책위원이 김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라고 비유한 것을 두고는 "프랑스 혁명 시대 왕비에 비유하며 마녀사냥하듯 하는 모습은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분들이 자제해야 한다"며 "표현하는 방식이 조금 거칠고 우리 당 지지자와 당원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통령 당선인 수행 실장을 지낸 이용 의원은 이날 예정된 기자회견도 취소했다. 친윤계인 이 의원이 비대위 운영의 문제를 제기할 계획이었지만 확전 자제와 사태 수습이 먼저라는 여권 주류의 의견에 회견을 취소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 의원은 지난 주말 당 소속 의원 텔레그램 단체 대화방에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에게 실망해 신뢰와 지지를 철회했다’는 기사를 링크하며 대통령실에 힘을 실어준 바 있다.
당내 친윤계의 행보는 대통령실이 최근 당의 전략공천과 관련해 특혜 시비를 주의해야 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내고 한 위원장 사퇴를 요구한 것과 비교하면 한발 물러선 것으로 해석된다.
이를 두고 당심이 과거와 달리 ‘윤심’으로 모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3·8 전당대회에서 친윤 주도 ‘연판장 사태’로 나경원 전 의원을 겨냥했을 때와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대통령실과 집권 국민의당은 총선을 70여일 앞두고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논란 의혹과 김경율 국민의힘 비대위원의 서울 마포을지역 출마 가능성에 따른 ‘사천’(私薦) 논란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부터 최측근으로 꼽혔던 한 위원장을 겨냥해 공천 ‘부정 입찰’을 언급하며 직접 문제의식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한동훈 위원장에 대한 윤 대통령의 ‘기대와 신뢰 철회’, 대통령실의 ‘한동훈 위원장 사퇴요구’ 등 보도가 잇따랐고 한 위원장은 곧바로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 하겠다", "제가 사퇴요구 거절했다", "제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안다" 등 정면 대응하며 사실상 홀로서기에 나선 보습을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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