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정보경제학적으로 ‘청정수소 인증’ 은 ‘신호 보내기(signaling)’ 수단의 일종이다. 사실 수소는 청정하게 만들든, 회색 빛 나게 만들든 물리·화학적 성질이 동일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구분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이 경우 상대적으로 생산비용이 높은 청정수소 생산자들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수소의 청정성을 알릴 수 있는 라벨이나 마크 등 신호 보내기 수단이 요구된다. 이러한 필요성을 일찍이 감지한 유럽연합(EU)의 수소 관련 이해당사자들이 ‘CertifHy’란 이름으로 2014년부터 준비해 처음 청정수소인증제가 마련됐다. 청정수소인증제는 이후 수소경제를 추진하는 국가들에 빠르게 확산됐다.
청정수소인증제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은 2019년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의 간략한 언급과 함께, 인증된 수소의 생산비용을 수소발전 정산을 통해 지원하자는 필자의 에너지경제연구원 보고서 정도였다. 당시만 해도 아직 청정수소인증제에 대한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던 터라 관가·업계 모두 미지근한 반응이었다. 왜 이런 제도가 필요한지 모르겠다는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그러다 2021년부터 청정수소인증제 도입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당시 신재생에너지법에 따라 발전용 연료전지가 태양광 발전 등과 함께 신재생공급의무화제도(RPS)를 통해 지원을 받는 것에 대해 부정적 의견들이 국회 일부에서 제기됐다. 이에 따라 수소발전을 따로 수소경제법으로 의율 하는 청정수소 발전의무화제도(CHPS)가 도입되고, ‘청정수소’가 무엇인지 법적으로 ‘획정(劃定)’하는 청정수소인증제도 함께 법제화됐다.
2022년에는 청정수소인증제에 또 하나의 변곡점이 형성됐다. 당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나 유럽의 H2Global 프로그램 등에 청정수소인증제의 청정수소 등급을 보조금과 연계시키는 방침이 발표됐다. 이에 국내 청정수소인증제도 발 빠르게 이를 검토하는 작업에 들어갔고, 그 자체만으로 국내 관련 업계의 기대감을 부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실 국내 청정수소 생산 비용은 상당히 비싸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연계 수전해 수소의 생산단가는 대략 kg당 1만원이 훌쩍 넘고, 블루수소의 경우에도 인증기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대규모 자본투자가 수반된다. 이로 인해 청정수소인증제 연계 정부 보조금을 수익모델로 하는 사업기획들이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졌고, 보조금을 얼마나 어떻게 줄 것인가가 한 때 업계의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하지만 재생에너지나 천연가스, 탄소포집 및 저장(CCS) 등을 자급자족이 가능한 미국·유럽에서는 보조금이 생산을 지원하는 수준이라면, 그렇지 못한 우리는 사실상의 수익모델이라 국민 세금인 재원도 걱정이지만, 이것이 사회정의에 부합하는지 자체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것이 이번에 확정된 청정수소인증제에서 결국 ‘보조금’이 제외된 이유가 아닌가 싶다.
이처럼 보조금이 제외되면서 인증에 대한 수요는 기대보다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현행 청정수소인증제가 청정수소 발전 입찰에 필요한 발전용 수소의 청정성을 확인하는 절차 정도가 되면서 한동안 규모는 큰데 건수는 적은 외국산 청정수소 기반 암모니아가 주된 인증 대상일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인증 수요가 기대에 미치지 못해 자칫 인증 수수료에 기반 한 인증기관의 운영비를 걱정해야 할 수 있다. 수수료를 인증 수소의 양에 비례해 책정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또한 인증 등급이 높을수록 생산비용이 높아 발전단가를 중심으로 한 청정수소 발전 입찰에서 보다 청정한 수소가 불리할 수 있다. 인증 등급별로 입찰 시장을 세분화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현행 ‘수소 1kg당 온실가스 4kg 배출’이라는 인증기준의 현실성도 고민거리다. 물론 이러한 인증기준이 미국·유럽·일본 등이 채택한 일종의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다만 이 기준이 국내 현실에 맞는지는 의문이다. 가령 현행 청정수소인증제는 친환경 추진선박이 없어 외국산 도입 시 선박 온실가스 배출량을 한시적으로 빼고 산정한다. 현실의 외국산 청정수소 배출량보다 인증기준이 낮아 인위적으로 실제 선박 온실가스 배출을 눈감아 주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눈 가리고 아웅한다’고 비판 받기보다 차라리 보다 국내 현실에 맞는 인증기준으로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추가적인 고민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