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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자 직권 남용, 양승태는 무죄…이탄희 "귀신 지시 받았나"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1.27 03:11
1심서 무죄 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1심서 무죄 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공동취재/연합뉴스

[에너지경제신문 안효건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1심 재판이 26일 ‘전부 무죄’로 결론 났다.

전직 사법부 수장이 법정에 선 헌정사상 초유의 사건에서 법원은 설령 하급자 직권 남용이 일부 있더라도 양 전 대법원장이 이를 지시하거나 공모하진 않았다고 봤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은 임종헌 법원행정처 전 차장 등에게 재판 개입,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등 반헌법적 구상을 보고받고 승인하거나 직접 지시한 혐의로 2019년 2월 재판에 넘겨졌다.

공소장 안 구체적 범죄사실 47개 중 무려 41개에는 직권남용 혐의가 적용됐다.

형법 123조에 규정된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 행사를 방해한 경우에 성립한다.

이 사건 재판부는 각 범죄사실에 대해 △ 직권의 존재·행사 여부 △ 직권의 남용 여부 △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는지를 세부적으로 따졌다.

그 결과 직권남용죄가 적용된 범죄사실 중 대다수가 이들 요건을 갖추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일제 강제징용 사건 주심 대법관에게 행정처 입장을 전달해 재판에 개입했다는 혐의에는 "대법원장은 재판에 개입할 직권이 없고, 설령 직권을 행사했다고 보더라도 이를 남용했다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직권 없이는 남용도 없다’는 법리를 적용한 것이다.

임 전 차장을 통해 이 소송 상고심 재판 지연 방안 등을 행정처 심의관에게 검토하게 한 혐의에는 "임 전 처장에겐 행정처 심의관에게 협조 요청을 할 직무상 권한이 있었고 이를 행사했지만, 재판에 개입해 영향을 미치려는 목적으로 보기 어려워 직권을 남용한 것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위법한 목적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남용’은 아니라는 취지다. 직권을 행사했더라도 그것이 남용에 해당하려면 법령상 직권 목적에 맞게 이뤄졌는지, 또 당시 상황에서 타당성이 있는 행위인지를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는 법리에 따른 것이다.

당시 사법 행정에 비판적이던 국제인권법연구회·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을 와해하려고 ‘연구회 중복가입 해소 방침’을 공지해 실제 법관 100명을 탈퇴하게 한 혐의에는 "중복가입 금지 규정은 예규에 명시돼 있고, 법관들이 이에 따라 연구회를 탈퇴한 것은 ‘의무 없는 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직권을 남용했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으로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이 아니라면 직권남용죄가 아니라는 법리다. 이 법리는 양 전 대법원장 기소 이후인 2020년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블랙리스트’ 사건 상고심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확립된 것이다.

재판부는 하급자 직권남용이 인정되는 일부 범죄사실에는 ‘공모관계’를 잣대로 한 차례 더 판단했다. 다만 양 전 대법원장이 이를 지시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고 공모 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일례로 헌법재판소 파견 법관에게 비공개 정보 수집과 보고를 지시한 혐의에는 "이규진 대법원 양형위 전 상임위원의 일부 직권남용이 인정되나 양 전 대법원장이 이를 지시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이렇게 전부 무죄가 선고됨에 따라 ‘검찰권 남용’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는 양 전 대법원장이 기소 당시부터 지속해서 비판해온 대목이다.

그는 작년 9월 결심 공판에서 "억지 추측을 바탕으로 한 수사권 남용의 열매이자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 사례의 교육재료로 삼을 만한 300쪽에 달하는 공소장이 만들어졌다"고 꼬집었다.

대법원장 등의 정당한 사법행정권 행사에 검찰이 ‘법관 블랙리스트’나 ‘재판 개입’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무리하게 수사했다는 것이다.

반대로 재판부 판단에 대한 시비도 계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법원 내부에서 일어난 일을 법원이 판단하는 게 과연 맞느냐는 근원적 의구심이다.

판사 출신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정확한 건 판결문을 읽어보고 말해야겠다"면서도 "재판개입 사실은 인정된다면서 무죄라면, 재판거래 피해자들(강제징용 피해자, KTX 승무원, 세월호 가족들과 언론인 등)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느냐"고 따졌다.

그러면서 "양 전 대법원장의 수족들은 귀신의 지시를 받은 것이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의원은 양 전 대법원장 당시 ‘법관 블랙리스트’를 최초로 내부 고발하며 사법농단 의혹을 처음으로 제기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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