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가 전력시장 운영을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회사채를 넘어, 단기사채, 기업어음까지 끌어다 쓰고 있다. 에너지업계에서는 현재의 전력시장 정산방식과 거버넌스 등 근본적인 체계의 수정 없이는 한전발(發) 금융위기가 계속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전의 역대급 적자는 지난해 회사채의 대량 발행으로 인한 채권시장 자금 고갈이란 금융 불안으로 이어졌다. 올해는 이런 '한전채 블랙홀' 증상이 재발할 위험뿐 아니라 단기사채, 기업어음의 대거 발행까지 더해 '3중의 위험'이 불거질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기후솔루션은 2024년 한전발 금융위기 가능성을 짚은 '기후위기에서 경제위기로: 한국전력 적자 및 채권 발행 영향과 대응 과제' 보고서를 6일 냈다.
이번 보고서에 따르면 회사가 자금이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대표적 수단은 회사채, 단기사채, 기업어음이다. 회사채는 빌린 돈을 갚는 만기 일자가 통상 2~3년 이상으로 긴채권이고, 단기사채나 기업어음 등은 그 기간이 1년 미만인 단기자금 조달수단이다. 이 가운데 한전의 자금 조달 방식으로는 지금까지 채권이 주목 받아왔다.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에서 비롯한 화석연료 가격 상승으로 적자의 늪에 빠진 한전은 회사채를 대거 발행, 채권 시장의 자금을 고갈시키고 금융 불안을 가중한다는 비판을 산 바 있다. 그런데 이런 우려가 채권 시장뿐 아니라 단기사채, 기업어음 시장까지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우선 채권시장의 경우 지난해 '한전채 블랙홀' 현상이 올해 재발할 기미가 보인다. 지난 2년 간 누적적자 50조 원에 달하며 채권 발행을 지속해 온 한전은 지난 12월 자회사 중간배당, 지분매각 등을 통해 사채발행한도를 확대했다.
사채발행한도를 높인 가운데, 올해 만기 도래가 예정된 채권의 액수가 20조 원 가량에 달한다. 단기에 이 큰 액수를 갚을 흑자를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이는 다시 채권 발행 등으로 다시 막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런 이유로 '한전채 블랙홀'이 재발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고동현 기후솔루션 기후금융팀장은 “한국전력은 2024년에 19조 원의 채권이 만기가 도래하고, 채권 발행한도가 늘어나면서 올해 최대 30조 원가량의 채권 발행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또 다시 경제 전반의 불안정성을 야기할 수 있다"며“정책 당국의 감독 강화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보고서의 분석에 따르면 2022년 31조, 2023년 12조 원이 발행된 한국전력 채권은 관련 채권 발행 시장(한전채와 유사한 공기업 특수채, 일반회사채 등)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21년 9%에서 2022년 29%로 급증했다.
이에 일반회사채 발행량은 30% 감소했으며, 2023년 채권시장 비중도 12%로 줄었다. 그러나 이 비중이 다시 상승할 위험은 여전하다.
한전이 회사채 발행을 줄인 대신 단기사채와 기업어음을 늘려 다른 위험을 낳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하반기부터 발행량이 급증한 한전 단기사채는 2022년 전체 단기사채의 15%, 2023년 12%를 차지했으며, 기업어음의 경우 2023년 발행량이 증가해 전체 기업어음 중 비중이 2021년과 2022년 8% 수준에서 2023년 11%로 증가했다. 즉 각각 금융 시장에서 한전 발행 비중이 눈에 띌 정도로 크게 늘고 있는 것이다.
이진선 기후솔루션 전력시장계통팀장은 “한국전력의 적자 해소를 위해 전기요금 인상도 필요하지만 화석연료 중심의 전력 산업 구조 개편이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강조하면서 “화석연료 중심 발전을 우대해주는 현재 전력시장 구조하에서 한국전력의 발전자회사들은 화석연료 의존에서 빠르게 전환할 유인이 없는 상황이며, 신규 재생에너지 사업의 빠른 확산을 위해 화석연료 중심으로 설계된 전력시장의 거버넌스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