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를 중심으로 발생한 지정학적 리스크가 장기화할 경우 유럽연합(EU)에서 우리 기업들이 중국에 밀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진단이 나왔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28일 '홍해 예멘 사태의 수출입 영향 및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보고서는 홍해 예멘 사태로 인해 △EU와 교역 중인 국내 화주들의 해상운임 상승 및 납기 지연 부담이 누적되고 있으며 △사태 장기화 시 EU의 대 아시아 수입이 둔화되거나 △후티 공습 피해가 제한적이고 내륙 운송로를 확보한 중국 화주와 비교해 국내 기업들의 수출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후티 공습 이후 글로벌 선복 공급 및 컨테이너선의 운항 변동성이 크게 확대됐다. 지난해 12월 전세계 가용 선복량은 과거 52주 평균 대비 57.3% 감소했다. 이는 2020년 2월 팬데믹 직후 선복량 감소 폭(-47.3%)을 상회하는 수준이다.
희망봉 우회, 파나마 가뭄 등 글로벌 양대 운하의 운항 차질로 주요 항로의 해상 운임이 지난해 말부터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항공 운임도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이달 기준 국내의 EU향 해상운임은 2023년 10월 대비 250.1% 상승했다. EU 항로의 운항 일수는 수에즈운하 통과 대비 12일~14일 추가돼 납기 지연이 지속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대 EU 수출의 80%가 해상운송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자동차(99.8%), 석유화학(99.7%), 철강(98.7%), 이차전지(96.4%) 등 해상운송 의존도가 높은 주요 품목이 해상운임 상승 및 납기 지연 위험에 더 크게 노출된다.
보고서는 운임 상승세는 하반기로 갈수록 점차 둔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글로벌 경기 둔화 속 물류 수요가 제한적이고,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의 신규 선복 투입(313만 TEU)이 예정돼 있는 점을 고려한 분석이다.
보고서는 또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이 후티 사태를 감안해 유로 지역 경제성장률을 하향했으며, EU의 월별 수입 물량도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이에 따라 후티 사태 장기화 시 EU의 대 아시아 수입 둔화 혹은 아시아 외 지역으로 수입선 다변화가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2분기부터 EU의 월별 수입 물량 증가율은 전 세계 평균치를 하회하고 있다. 홍해 사태가 가시화된 4분기부터 수입 물량 감소폭이 확대되고 있다.
중국의 경우 후티 공습 피해가 제한적이고, 내륙 철도(TCR) 등 대체 운송로가 확보돼 있다. 향후 한-EU 간 높은 운임이 EU 수출 가격에 전가될 경우 EU 시장에서 우리 기업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릴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기준 중국의 EU 수입시장 점유율(7.91%)은 한국(1.13%)의 7배에 달했다.
한국은 자동차(-0.6%p), 전기차(-6.9%p) 등 다수의 주력 수출 품목에서 EU 시장 내 중국 대비 낮은 점유율을 보였다. 해상운송 의존도가 높은 품목들의 경우 중국산과의 경쟁에서 밀려 한-중 점유율 격차가 더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옥웅기 한국무역협회 연구원은 “글로벌 선사들의 희망봉 우회 항로가 점차 정착되고 공급과잉 시황으로 인해 운임 상승세는 제한될 것으로 예상되나 중동 전면전 확산 등 추가적인 운임 및 공급망 교란 변수가 상존하고 있다"며 “기업은 수출 시 납기 차질을 방지하기 위해 리드타임(Lead Time)을 충분히 책정해 선적 최소 한 달 전부터 선복을 확정하고, 철도·항공·복합 운송 등 다양한 대안 경로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