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4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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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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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의료체계 붕괴, 탈출구 없나] 아동병원 진료일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내일이 되길…”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3.03 15:22

■ 대한아동병원협회 제언 연재기획

② 강두철 대한아동병원협회 학술이사(거제아동병원 원장)

강두철 대한아동병원협회 학술이사(거제아동병원  원장)

▲강두철 대한아동병원협회 학술이사(거제아동병원 원장)

진료실 문이 열렸다. 119 구급대원과 힘없이 늘어진 아이를 안은 엄마가 다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열이 나면서 경련을 일으키는 아이였다. 다행히 아이의 심장은 잘 뛰었고 숨도 잘 쉬었다.


눈이 돌아가고 몸이 꼬이는 아이를 보면서 엄마는 얼마나 두려웠을까? 소아청소년과 의사로 20여 년 동안 119구급대원이 아이를 안고 진료실로 들어온 일은 처음이라 무척 당황스러웠다.


한동안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이 16%도 안 되는 것 때문에 시끄러웠다. 종합병원과 대학병원에서는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없어 야간에 소아환자를 보지 않거나 입원환자를 받지 않는다는 것도 논란이 되었다. 우려하던 일이 눈앞에서 일어났다. 지역 종합병원에서 돌려보낸 아이를 119에서 우리 병원으로 이송한 것이다.


'의사가 없다'. 이 말이 작은 소도시 아동병원에서 근무하는 나에게 오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부분의 열성경련 아이는 경련이 짧게 끝난다. 그 때문에 별다른 처치가 필요 없는 경우가 많지만, 신경 분야를 전공한 나로서는 경련하는 아이가 오면 긴장하게 된다.


발작이 30분 이상 지속되는 경우를 '뇌전증 중첩층'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발작이 5분 이상 지속되는 경우에도 '뇌전증 중첩층'에 준해서 치료해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이 경우 뇌부종이 오고,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어 빨리 항경련제를 투여하고 뇌부종도 가라앉혀야 한다. 최악의 경우 호흡과 심장에 문제가 생겨 인공호흡기를 달 수 있는 응급 상황이다.




뇌전증 지속상태의 많은 원인 중 하나가 열성경련이다. 그래서 경련이 5분 이상 지속되면 항경련제를 투여하고 기계 호흡기를 달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환자 상태가 나빠진다면 기도 삽관을 해야 하고 중심정맥이라고 하는 큰 혈관을 잡아서 진정제나 강심제를 투여해야 할 수 있다. 혼자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질 것이고 아이를 이송하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생길 지도 알 수 없다.


그런 아찔한 상황이 내 눈 앞에서 일어났다. 경련하는 아이를 안고 떨었을 아이 엄마. 종합병원에서 해결할 수 없어 아동병원에 내려놓고 돌아서야 했던 119구급대원. 경련이 멈추고 바이털 사인이 안정돼 한시름 놓은 나.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하루가 끝났다. 아니 끝났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늘어져 있는 아이를 안은 아빠가 진료실로 들어와서 벌건 얼굴로 거친 소리를 토해냈다. 자기 아이를 먼저 봐주지 않는다고 접수대에서 이미 항의를 한 뒤였다. 간호조무사에게 물었더니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X' 라며 비수 같은 말을 던졌다고 했다. 아픈 자식을 두고 마음 쓰이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아마 다른 부모들도 불안한 마음으로 순서를 기다렸을 것이다.


책상 위에 있는 작은 액자에 눈을 돌렸다. '평정심(平靜心)'. 외부의 어떤 자극에도 동요되지 않고 항상 평안한 감정을 유지하는 마음. 이런 순간을 위해 준비해 놓은 마법의 글귀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참고 견뎌내는 것에 집중했다. 아이 아빠에게 탈수 때문에 두어 시간 수액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뜩잖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 나갔다.


진료를 마치고 선선한 저녁 바람 맞으며 검도 도장으로 향했다. 도복을 갈아입고서 피난 온 구도자가 돼 1시간 남짓 무거운 하루를 털어냈다. 검도 수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소아청소년과 이슈에 대한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지금까지는 병원에 도착해 죽고 사는 것이 문제였지만, 앞으로는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다."


정말 그럴 것이다. 119에서 응급으로 판단한 환자를 우리 병원에 내려놓고 간 일이 지난 달에만 세 차례다. 한번은 급히 처치해서 인근 대학병원으로 보냈고 두 차례는 다행히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다음 그 다음에도 환자와 나에게 행운이 있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 갈 곳 없어 도로 위에서 방황하는 환자가 없기를…. 부디 내일도 아무 일 일어나지 않는 하루이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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