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의 카드론(신용카드 장기대출) 잔액이 역대 최다치를 기록했다. 타 금융권 대출이 막힌 서민들이 밀려온 영향으로 분석되는 가운데 신용점수 900점 안팎의 고신용차주 비중이 늘어난 모습도 보이고 있어 카드사마다 다른 대응책을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21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9개 카드사(롯데·BC·삼성·신한·우리·하나·현대·KB국민·NH농협카드)의 지난달 말 카드론 잔액은 39조4743억원이었다. 종전 역대 최다를 기록했던 지난 1월 39조2120억원보다 2000억원 넘게 증가한 규모다. 카드론 잔액은 지난해 연말 감소했다가 연초부터 증가세를 이어오고 있다.
카드론 금리는 최근 소폭내려온 상태다. 지난달 8개 카드사(NH농협카드 제외)의 카드론 평균 금리는 14.47%로 지난 1월 14.62%보다 내렸다. 평균금리가 가장 높은 곳은 롯데카드(15.58%), 우리카드(14.87%), BC카드(14.79%) 순이었다.
고금리·고물가로 서민 경제가 어려워진 가운데 1금융권과 저축은행 등 타업권이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카드론에 수요가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카드론 이용자 비중을 살펴보면 최근 중·저신용자 비중은 줄고 상대적으로 저금리를 적용 받는 고신용자의 유입이 증가한 추이를 보이고 있다. 협회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삼성카드에서 금리 10% 미만을 적용받는 카드론 이용자는 전체의 14.1%로 지난해 말 6.07% 비중에서 2.3배 증가했다. 롯데카드와 KB국민카드도 같은 기간 6.05%, 6.43%를 기록해 각각 늘었다.
이 기간 전체 8개 카드사 중 절반 이상인 5개 카드사(삼성·BC·신한·현대·KB국민카드)에서 고금리 카드론 이용자 비중은 전월 대비 줄어들었다. 다만, 업계 평균보다 낮은 수준의 고금리 대출자 비중을 유지했던 카드사인 롯데카드와 하나카드 등은 고금리 대출자 비중이 소폭 늘었다.
고신용 차주가 카드론에 눈을 돌리는 것은 타금융권의 대출 문턱 상향이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1금융권은 건전성 관리에 나선 상태다. 5대 시중은행(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의 지난 1월 신규취급 기준 신용대출 평균 신용점수는 926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점 올랐다. 은행들이 지난해 말 연체율이 뛰어오르자 이를 잡기 위해 신용대출을 보수적으로 취급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 다른 업권인 저축은행은 고금리와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 여파로 지난해 3분기 연체율이 6%로 뛰었다. 건전성관리 압박에 일부 저축은행은 아예 대출 창구를 막기도 했다.
카드론은 일반적으로 중·저신용자 대출창구 중 하나로 여겨진다. 현재 이용자 4명 중 1명이 20%에 육박하는 고금리를 적용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신용자의 경우 카드론을 통해 연 10.57%~13.15% 가량의 금리를 적용(지난 1월 기준)받고 있다. 같은 기간 신용대출을 새로 취급한 저축은행들이 고신용차주에게 적용한 금리 상단은 법정 최고금리인 20%에 가깝다.
카드사들도 건전성 관리에 총력을 다하고 있지만 '고신용자'의 발길이 늘고 있는 영향에 당분간 우려가 크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신용사면이나 충당금 이슈 등 건전성 관리에 힘을 써야 하는 시기인 것은 맞지만 고신용자들이 카드론을 사용할 경우 평균 연체율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저축은행 등 중·저신용자들의 대출문이 막혀 불법 사금융으로 몰리게될 수 있는 점은 새로운 우려로 떠오르고 있다. 관계자는 “최근 저축은행 등의 대출 문턱이 높아져 카드사에서 고금리 대출자를 늘릴 가능성이 있지만 여기서도 막히면 중·저신용자 차주가 제도권 밖 금융권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며 “고금리 적용을 받는 고객들의 경우 리스크가 높지만 카드사가 무조건 비중을 줄일 수 있는 환경이 아닐 경우 해당 고객의 한도를 줄이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