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의장이 취임하고 난 뒤에 주가가 박살이 났다. 그렇다면 최소한 거기에 대한 사과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날 DB하이텍 주주총회에 참석한 한 소액 주주의 말이다. 28일 오전 9시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에 위치한 DB하이텍 부천공장에서 열린 DB하이텍 주주총회는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이뤄졌다. 이날 이사 수 조정 의안이 소액주주연대와 국민연금 측의 반대로 무력화 되면서 이번 주총은 사실상 주주연대의 승리로 마무리 됐다. 다만 회사측은 자사주 소각에 대해서는 사실상 거부 의견을 나타내 논란은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이날 주총 주요 포인트는 소액주주연대가 반대했던 이사회 정원을 기존 '4인 이상'에서 '4인 이상 8인 이하'로 조정하는 정관 변경 안건의 통과 여부였다. 이날 참여 주주 중 60.69%가 찬성해 해당 안건은 부결됐다. 정관변경과 같은 특별결의 안건은 출석한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와 발행주식의 3분의 1 이상이 찬성해야 가결된다.
주주연대 측이 해당 안건을 반대한 이유는 정원에 상한선이 만들어질 경우 주주연대 측 인물의 이사회 진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DB하이텍 이사회는 사내이사 2명, 사외이사 4명 총 6인으로 구성돼 있다. 황철성 사외이사의 재선임과 이상기 DB하이텍 기술개발실장을 신규 이사로 선임하면서 이사 인원은 7명이 되는데 KCGI가 주주제안 한 윤영목 아스텔라비앤씨 대표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면 8명 정원이 채워지는 만큼 주주연대와 행동주의펀드 간 마찰이 발생할 수 있다.
회사측은 “이사 수의 적정 규모를 조정해 이사회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는 내용"이라고 설명했으나 DB하이텍 소액주주연대 대표인 이상목 컨두잇 대표는 “주주 제안자 2명 추천 직전에 이사 인원을 7명으로 만들어서 주주 제안자 2명 간의 내홍을 유도하는 작전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이사 수 8인 제한은 과도한 경영권 방어 수단"이라고 일갈했다.
이날 주총에서 소액주주연대가 제안한 이사회 결의 없이 주총 결의만으로 자사주를 소각할 수 있는 2-4 정관변경은 찬성 16.01%로 부결됐다. 해당 안건의 부결로 회사가 보유중인 보통주식 272만6653주를 주총 결의 공시 후 1개월 내에 소각하는 3호 의안도 자동 폐기됐다.
반면 이사회 의장을 이사회에서 선임할 수 있도록 하는 '대표이사-이사회 의장 분리' 안건은 99.5%가 찬성해 가결됐고, 배당기준일을 주주총회 의결권행사 기준일과 다른 날로 정할 수 있도록 하는 안건도 99.5%가 찬성해 가결됐다.
이날 주총에서 회사측은 자사주 소각에 대해 다소 미온적인 반응을 나타내 주주들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이상목 대표는 “주주 환원이 목적이라고 명확하게 공시한 만큼,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보유하는 것은 공시 위반"이라고 지적했고, “자사주를 매입했을 때 주가 부양책으로 소각할 의향은 없느냐"는 질문에 조기석 DB하이텍 대표이사는 “자사주는 사실 여러 가지 활용성이 있다"며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조 대표는 “내부적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있고 외부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면서 “소각도 물론 고려하고 있지만 만일 재원이 필요할 때 그런 거(자사주)를 활용하지 못하면 보유중인 현금이 나가야 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자사주를 소각하기 보다 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에 한 주주는 “요새 트렌드를 보면 자사주를 소각하는 회사들이 많다. 정부 정책도 그 하나의 일환"이라며 “하지만 DB하이텍은 자사주 소각을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명확하게 입장을 내달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또 주주연대에 대한 회사측의 노골적인 폄하도 논란꺼리였다. 주주총회안건 설명자료 내에 자사주 소각과 관련한 정관변경 안건을 보면 사측은 '소액주주연대의 주주제안이 계속 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 주주제안의 남용도 우려된다'고 적어 주주들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는 주주연대의 주주제안을 악성민원 정도로 치부하는 모습으로 비쳐질 수 있다.
이상목 대표는 “도대체 무엇을 남용했다는 건지 설명해달라. (설명자료를) 회사 홈페이지에 공시하고, 이 자료를 갖고 기관과 국민연금 등을 만나서도 얘기했을 텐데 뭐가 남용인지 답해달라"며 강한 어조로 따져묻기도 했다.
이에 회사측은 “실무자가 교과서적인 얘기를 적은 게 문제가 된 것 같다"며 “큰 의미가 없으며 앞으로 주의하겠다. 이해해 달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