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03일(금)



[주원 칼럼] 전기차 시장 성장 둔화, 캐즘 뿐일까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4.08 08:42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이사대우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이사대우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이사대우


'캐즘(chasm)'이란 신제품이 시장에 크게 상용화 되기 직전에 발생하는 산업의 침체기를 의미한다. 지질학에서는 '아주 깊은 구멍'이라는 뜻을 가진다. 1991년 실리콘 밸리의 제프리 무어 박사가 기업의 성장 과정을 연구하면서 신기술·신산업이 소비자들에게 받아들여지는 데에는 다소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캐즘이라는 표현으로 사용한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아마 기술 개발에서 사업화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많은 벤처기업들이 실패한다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라는 용어와 같은 의미라고 판단된다.


최근 전기차와 그 핵심 부품인 2차전지 시장의 성장이 둔화되는 모습에서, 이를 캐즘으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러한 해석이 틀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멀리 보면 전기차 시장은 대세이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의 전기차 시장은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이 이제 막 기술을 선보이고 사업화 단계로 넘어가는 초기 시장이 아니다. 이미 글로벌 신차등록 기준으로 15% 내외 정도로 높아진 전기차 시장을 캐즘이나 죽음의 계곡으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전기차 시장의 성장은 크게 두 가지 요인에서 힘을 얻고 있다. 우선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유지비가 싸다. 연비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소모품 교체 주기나 비용에 있어서 내연기관차에 비해 장점을 가진다. 그러나 동급의 내연기관차에 비해 출고 가격 자체가 많이 높다. 이 부분에 대해 그동안은 구매보조금으로 일정 부분 커버되었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대부분 국가에서 적극적인 보조금 정책을 통해 가격경쟁력이 유지되었던 바가 크다. 또 하나는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환경주의(環境主義, Environmentalism)의 정치화가 상당수 국가에서 받아들여지고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내연기관차의 퇴출을 공언한 바의 영향도 크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 이 두 가지 추진력이 약화되는 움직임이 있다. 우선 전기차 구매 시 지원되던 주요국의 보조금이 폐지되거나 축소되고 있다. 재원 부족이 그 원인이다. 또한 전기차 시장 성장을 뒷받침하는 정치적 동력도 약화되고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 환경 이슈에 대한 피로감과 반작용이 나타나면서 전기차에 부정적인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6월에 있을 유럽의회 선거와 11월의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를 아직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전기차 시장에 부정적인 방향으로 정치권력이 이동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그러한 분위기 때문인지 최근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전기차에 대한 투자를 크게 축소하는 상황이다. 특히 애플은 전기차 시장으로의 진출을 포기했다. 반면 우리 전기자동차와 이차전지 기업들은 미국 시장에 대한 투자를 계속 진행하면서 오히려 전기차로의 전환에 집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든 기업들의 시장 전략은 우수한 내부 인력들이 집단지성을 통해 많은 검토가 이루어진 최선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우리 자동차 기업들과 이차전지 기업들의 공격적인 전략을 존중한다. 다른 경쟁국들이 주춤하는 상황에서 기술력과 생산력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기업들은 미시적이고 재무적인 분석에는 뛰어나지만, 거시 경제 여건과 정치·제도적 환경 여건에 대한 분석력은 떨어진다. 그래서 시대 변화에 둔감한 경우가 종종 있다. 만에 하나 유럽의회가 우경화되고 전기차 산업에 대해 지극히 적대적인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면 전기차 시장은 캠즈가 아니라 최소 5년 동안의 장기 불황 국면에 빠지게 된다. 어느 산업이든지 시장이 그러한 장기 불황에 빠지면 잘나가는 그 어느 기업도 버틸 재간이 없다. 기업의 성장과 도약도 중요하지만, 작은 가능성이라도 기업의 생존이 위협받을 여지는 없는지 우리 주력 산업의 전략을 세심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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