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18일(토)



[이슈&인사이트] 에너지 산업의 레드테크 힘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4.25 10:36

손성호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

손성호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

▲손성호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

최근 한 신문사의 기획 기사를 통해 중국의 반도체 기술 성장 및 자립에 대한 내용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특히, 중국의 대표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화웨이가 지난 10년 동안 연구개발(R&D) 비용으로 216조원이나 투자했다는 기사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지난 해의 연구개발 투자 금액은 매출의 23%에 달하는 32조원에 가까웠다고 하는데, 이는 연구개발 투자 금액 1위인 국내 대기업의 해당 금액 대비 10% 이상 높은 수준이다.


또한, 2024년도 우리나라의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이 26조 5000억원인 것과 비교해 볼 때에 엄청난 투자 규모라고 할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의 경우 식각(etching·화학용액이나 가스를 이용해 실리콘 웨이퍼상의 필요한 부분만을 남겨놓고 나머지 물질을 제거하는 것) 등의 초미세공정이 수반되기 때문에 좋은 제조 장비의 확보로 불량률을 낮추는 것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 요건이다.


따라서, 중국의 반도체 관련 기술개발에 대해 미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전략적 봉쇄 중 하나가 해당 제조 장비의 수출을 통제하는 것이었고, 네덜란드와 일본 등이 동참해 왔다.




하지만, 봉쇄 후 3년이 되어가는 지금은 중국 반도체 산업의 기술 역량이 오히려 강화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첨단 반도체보다는 성능이 떨어지지만 여전히 다양한 곳에 사용되고 있는 범용 반도체에 집중하면서 시장 장악력을 확대하고 있다.


여기에는 반도체 관련 자회사를 12개나 거느리면서 기존에 강점이었던 소재나 패키징 관련 후공정 뿐만 아니라, 설계나 제조 등 전체 가치사슬을 아우를 수 있게 된 화웨이 중심의 기술 생태계 구조가 큰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난 5년 동안 50% 미만에서 55%까지 그 비율을 늘린 석·박사급 연구 인력의 확보가 그 생태계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어 왔다.


전자제품 및 통신장비 제조 기업으로 시작한 화웨이는 인공지능 반도체, 스마트모빌리티, 충전 사업 등 미래 신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가 기술 역량을 축적해 온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도 추격이 거세다고 하니, 그 기술 격차가 언제 좁혀져 따라잡힐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레드테크의 힘은 에너지 산업에서도 마찬가지로 강하게 느껴진다. 세계 재생에너지 시장은 중국을 중심으로 그 보급량이 증가해 온지 꽤 되었다. 작년에는 중국 내의 총 누적 설비용량 규모로 재생에너지가 화력을 넘어섰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얼마 전에 참석했던 송전기술 워크샵에서도 HVDC(초고압직류송전) 기술과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중국 관련 자료를 접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1998년에 해남-제주 연계선을 시작으로 HVDC 전력설비를 도입하여 현재까지 선로 100km 정도인 전류형 HVDC 3개만을 운영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중국은 이미 선로 길이 1000~2000km도 훌쩍 뛰어 넘는 장거리용 HVDC를 다수 설치하여 운영함으로써 에너지 공급에 활용 중이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재생에너지 자원과 연계되어 중국 대륙에서의 에너지 수급을 원활하게 하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 또한, 축적된 기술들과 참여 인력들에 내재화된 경험은 에너지 산업에서의 경쟁력을 키우고 유지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공계 상위권 대학원들 마저 정원 채우기가 쉽지 않은 우리나라의 현실을 고려해 보면, 에너지 분야에서의 기술 격차가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걱정된다.


연초에 보도자료를 통하여 초고압 직류송전 산업의 혁신을 위해 HVDC 기술 및 산업 관련 포럼이 발족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무쪼록 기술력을 차곡차곡 쌓아가 기술추격을 넘어 추월로 도약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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