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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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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35주년] 합계 출산율 0.65명…대한민국 인구감소 가속화, ‘사람다운 삶’에 초점 맞춰야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5.24 08:20

최대 긍정적 계산 시 다음 세대선 0.46명으로 급전직하

“젊은 세대, 미래 설계 가능한 사회서 결혼·출산 꿈꿀 것”

“사회 담론화 거친 합의 따라 합리적 정책 조합 형성해야”

텅텅 빈 요람

텅텅 빈 요람

▲서울의 한 공공 산후 조리원 신생아실 내 일부 요람이 비어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해를 거듭할수록 합계 출산율이 뚝뚝 떨어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 가운데 정부의 인구 정책이 국가 등 거시적이고 규모의 관점에서만 이뤄지고 있어 개인의 '사람다운 삶'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3일 통계청 '2023년 인구 동향 조사 출생·사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합계 출산율은 0.72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0.78명 대비 0.06명 줄어든 수치다. 합계 출산율은 가임 여성 1인당 평생 출산할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로, 현 수치대로라면 1명도 낳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그나마 1~3분기의 기록이 버텨준 덕에 이 같은 합계 출산율이 나왔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해 4분기에는 0.65명으로 급전직하했기 때문이다. 통계청은 올해 합계 출산율은 0.68명으로 재차 내려갈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한민국의 저출산 속도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세계 통계학 박사들은 일본이 2020년 최초로 합계 출산율 0.9명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견했지만 2022년 오히려 1.26명을 유지했고 한국은 이들의 예상치를 깨고 바닥을 향해 OECD 회원국 최초의 사례로 이목을 끌고 있다. 당초 인구 자연 감소는 2020년부터, 2028년부터는 총 인구 감소가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주민 등록 인구 통계에 따른 내국인 인구는 2019년 11월을 정점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지난해 출생아 수는 23만명으로 헌정 사상 가장 많이 태어났던 1960년 108만명의 25%에도 못 미친다. 저출산 사태가 심각한 이유는 한 번 시작된 이상 돌이키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남녀 2명이 2명을 낳아야 인구가 유지되는데, 올해 예상 합계 출산율 0.68명이 앞으로도 그대로 유지된다는 최대한 긍정적인 가정 하에 계산하면 다음 세대의 합계 출산율은 이를 제곱한 0.4624명이 된다. 문자 그대로 '급전직하' 하는 셈이다.




합계 출산율 1.0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은 소비에트 연방 해체 또는 통일 후 구 동독 사회 등 체제 붕괴와 같은 수치다.


앞서 보건복지부 등 관계 부처들은 지난 18년 간 △임신·출산 관련 의료비 부담 대폭 경감 △영·유아 무상 보육 △신혼 부부 주거 지원 확대 △아동 수당 지급 등 각종 저출산 대책을 추진해왔지만 280조원이 넘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도 이 같은 인구 대참사를 막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결혼·출산·양육을 멀리하는 가치관이 확산하고 있어서다.


2023년 혼인 건수는 32만2800건이었고, 작년에는 19만4000건으로 10년 새 39.90%나 줄었다. 정부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나라'를 천명했지만 전 국민적 움직임은 정반대로 가고 있어 정책 방향의 선회가 필요하다는 신호로 인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부랴부랴 남성 양육 참여 확대 시 인센티브 지급 등 출산 후 돌봄의 책임을 사회화했다. 그러나 미혼 상태인 개개인의 구체적 상황과 욕구 살피기는 등한시하고 제도 도입에만 급급해 경우에 따라서는 다자녀나 저소득 가정에만 제한적으로 지원했다. 이로써 애매모호한 중산층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판국이다.


이러한 문제는 그간의 저출산 정책이 생산력·경제 성장·국가의 지속 가능성 등을 강조하는 인구 규모의 관점을 우선시한 데서 비롯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동욱 전 보건복지부 인구정책실장은 “출산 장려를 우선 말하기보다는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인 '사람다운 삶'을 어떻게 보장할지 고민하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며 “미래 설계가 가능한 안정된 사회'를 만들어야 젊은 세대가 결혼과 출산을 꿈꿀 수 있을 것"이고 꼬집었다.


또 “고용·주거·교육·문화·인식과 가치관의 영역을 포함한 삶의 모든 영역에서의 근본적인 지형 변화가 필요하다"며 “이를 통해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행복이 되는 사회'가 될 때 비로소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정부는 출산율과 출생아 수 자체를 목표로 하는 정책에서 탈피해 삶의 방식에 대한 개인 선택을 존중하고, 출산과 자녀 양육을 인권으로 인정하는 '사람 중심 정책'으로의 전환을 강조하기도 했다. 또한'저출산'을 출산율 제고 등을 통해 제거해야 하는 극복의 대상으로 보는 전략에서 탈피해 인구 구조 변화와 4차 산업 혁명 등 거시적 흐름에 선제 대응하는 '사회 시스템 혁신'으로 설정하자고 논의한 바 있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저출산 정책 관점과 우선 순위에 대해 더욱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인구 정책에서 출산율 제고 중심의 전략을 폐지하되, 대안으로 이를 어떤 방식으로 재편할 것인가 결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가족·사회 정책적 관점 등 접근론 간 우선 순위와 관계 설정에 대한 논의가 뒤따라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단순 출산율에만 목맬 것이 아니라 국민의 최저 생활을 국가가 보장하고, 국민이 일자리·주거·의료·돌봄 등의 필수적인 서비스를 걱정 없이 누려 미래를 안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접근법을 제시하고 있다.


또 비혼 가정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가정과 그로부터 출발하는 출산을 존중하는 문화가 갖춰져야 한다는 관점과 가족과 아이가 주는 행복과 소중함을 존중하고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인식 재전환 요구 등 저출산의 원인을 바라보는 시각 등도 존재해 다각적인 검토를 통한 정책 입안이 이뤄져야 한다는 평이다.


이 전 실장은 “모든 관점이 가치있는 만큼 어느 한 방식만으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이를 어떻게 조합하고 무엇을 좀 더 우선해 추진할지에 대해서는 사회 각층이 함께 논의하는 담론화 과정을 통한 합의와 정밀한 현실 분석에 바탕을 둔 합리적 정책 조합을 형성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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