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박호정 교수님의 이름 앞에 고인이라는 말을 붙이기가 어렵습니다. 지금도 들어와 촌철살인 같은 비평을 해주실 것 같고 그러기를 기다리게 됩니다."
조성봉 전력산업연구회 회장은 10일 서울 크레센도 호텔에서 열린 '박호정 메모리얼 세미나(Memorial Seminar)'에서 “우리 장례문화가 고인을 추억하는 시간을 가지지 않는 게 아쉬웠다. 전력산업연구회차원에서 그동안 에너지분야에서의 박호정 교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작고한 박호정 전 고려대학교 교수는 20여년 간 우리나라의 대표적 에너지·환경·자원경제학자로 활동해왔다. 서울대학교에서 농업·자원경제학 학사와 석사과정을 거쳐 미국 메릴랜드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에너지경제연구원을 거쳐 고려대학교에서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박 교수는 △기획재정부 한국판 뉴딜 실무지원단 자문위원 △과기부 국가연구개발 사업평가 민간위원 △온실가스 할당위원회 민간부문 위원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신재생분과위원회 위원장 △기획재정부 그린뉴딜 자문위원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설비소위원회 위원장 △전력거래소 전력수급기본계획 자문 △환경부 배출권거래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국가 에너지정책 수립에 깊게 관여해왔다.
또한 △한국자원경제학회 학회장 △한국보건경제학회 정책이사 △한국원자력정책포럼 이사 △환경경제학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며 에너지, 자원, 환경분야 학술 활동도 활발하게 펼쳤다. 저서로는 '실물옵션과 투자분석', '탄소전쟁' 등이 있다.
조 회장은 이날 “박 교수는 경제학자로써 현실주의자였다. 근거없는 추정, 현실성 개연성 없는 희망적 사고, 정치적 고려에 따른 논의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성급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탄소중립, 비현실적 재생에너지 확대를 가차 없이 비판해왔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박 교수는 순수한 이상주의자였다. 조그만 성취에도 기뻐했고 자신의 분야에 천착하고 내공을 쌓는 분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에 뿌리박은 경제학자였다"며 “이상주의는 자칫 현실적이지 못한 무책임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최근 수년간 에너지정책이 그랬다. 박 교수는 개혁과 시장원리를 동시에 추구하는 현실적 이상주의자였다. 한국의 에너지정책 방향을 보면 그가 더욱 그러워진다"고 덧붙였다. 또 “박 교수는 인간적으로 매우 친근하지만 학문에는 엄격해 후배이지만 존경했다. 저에게도 바른말과 옳은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박호정 교수의 제자인 장희선 전북대학교 교수는 “박호정 교수님은 우리나라의 자원·에너지정책이 이념적으로 흘러가는 걸 우려하셨다"며 “특히 탄소중립 정책이 경제성장과 대립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데에 깊은 우려를 가지고 여러 발표와 논문으로도 지적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학자는 이론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일부 경제학자들이 에너지정책에 이론적 근거 없이 논거를 펼치는 데에도 경계를 하셨다"며 “박 교수님의 뜻을 마음에 새기고 후속 세대의 경제학자로써 우리나라 자원에너지정책이 경제성장과 조화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작게나마 기여하겠다"고 덧붙였다.
조홍종 단국대학교 교수는 “박 교수님은 인간적으로, 경제학자로 존경했던 분이다. 에너지정책에 대해 늘상 토론하고 이야기해왔다"며 “박 교수님은 에너지는 거시경제학적으로 접근해야 하며, 환경문제가 경제성장을 저해시켜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해오셨다. 탄소중립 과정은 자본축적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이어져야 한다. 현재의 정책은 그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생전 NDC 목표수치는 근거가 희박하며 탄소중립과 경제성장에 대한 어떠한 고려도 없다고 지적해왔다.
조 교수는 “거시경제학적 관점에서 에너지와 환경을 동시에 고민하고 연구한 큰 별의 깊은 뜻과 정신을 온전히 간직하겠다"고 덧붙였다.
손양훈 교수는 “우리 에너지분야에는 환경만을 강조하던가 발주자의 바람에 맞추는 결과를 내는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박호정 교수는 그런 것을 경계해왔다"며 “10년 차이가 나기도 하고 많은 교류를 하지 못했다. 시간이 나서 만나면 항상 올바른 에너지정책에 대해 고민했던 분이다. 너무 일찍 가서 섭섭하고 안타깝다. 이런 자리에서 생각들을 공유하게 된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상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박호정 교수님은 실물옵션 방법론을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소개한 선구자였다"며 “특히, 이를 활용해 에너지 부문 투자를 분석한 다수의 논문을 남겼다. 이 분야 개척자의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진다. 관련분야 후학으로 더욱 정진하겠다"고 다짐했다.
김동구 한국해양대학교 교수는 “동네형 같은 느낌, 진솔함, 격의가 별로 없으셨지만 항상 예리함이 있었다. 에너지정책이 감성적이고 비이성적으로 가는 것을 비판하신 영향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 생각한다"며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삶의 길고 짧음보다 어떤 삶을 살았느냐가 중요함을 여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박진표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여러 공식석상에서 용기를 내 에너지정책을 비판할 수 잇었던 것은 박호정 교수님 같은 분이 계셨기 때문이었다. 교수님의 지적대로 여러 정책들이 번복되고 잇지만 아직도 길이 멀었다"며 “중요한 시기에 너무 빨리 떠나셔서 남은 사람들이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인간적이셨고 애정이 넘치는 분이셨다"고 고인을 기억했다.
임재규 숭실대학교 교수는 “박 교수는 무엇보다 연구를 열심히 한다. 시류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 학자가 필요했다. 본인의 뜻에 맞지 않으면 하지 않았다"며 “그런 모습에 후배지만 존경하는 학자였고 박 교수가 에너지업계에서 중요한 리더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더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이 정말 인간다운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라가지 일을 기억하고 기린다는 것. 학자적 삶 이상으로 인간다운 삶이었다. 사람들과의 소통 대화, 주고받는 마음이 이런 자리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며 “나도 그와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 사람들과의 소통을 많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박 교수가 선배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 갔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여러 동료 교수들의 추억대로 박호정 교수는 현실적이고 경제성장을 담보하는 에너지, 환경 정책을 주장해온 대표적인 학자다. 정치적이거나 비현실적 정책에 대한 반감이 컸다. 박호정 교수는 본지에도 △전력·배출권 거래, 규제 풀고 시장기능에 맡겨라 △기후악당이라는 '자해 프레임'에서 벗어나자 △탄소중립, 에너지 전환 기술 국산화에 달렸다 △해외자원개발, 우리만 손놓고 있을건가 △희망고문 아닌 비전을 주는 전기요금 정책이 필요하다 등 정치논리를 배제한 확고한 에너지안보 원칙을 강조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