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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은 총재 “물가 확신 들 때까지 통화긴축 기조 충분히 유지”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6.12 11:11

창립 74주년 기념사...“천천히 서두름 원칙 되새겨야”

이창용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한국은행 창립 제74주년 기념사를 낭독하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물가가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현재의 통화긴축 기조를 충분히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창립 74주년 기념식에서 “섣부른 통화정책 완화 기조로 선회한 이후 인플레이션이 재차 불안해져 다시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그때 감수해야 할 정책비용은 훨씬 더 크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지금도 고물가, 고금리로 인해 여러 경제주체가 겪는 고통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하지만 물가가 제대로 안정되지 않으면 실질소득 감소, 높은 생활물가 등으로 취약계층의 어려움은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너무 늦게 정책기조를 전환할 경우 내수 회복세 약화와 함께 연체율 상승세 지속 등으로 시장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며 “반대로 너무 일찍 정책기조를 전환할 경우에는 물가상승률의 둔화 속도가 늦어지고 환율변동성과 가계부채 증가세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마지막 구간에 접어든 지금, 이러한 상충관계를 고려한 섬세하고 균형 있는 판단이 필요하다"며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정책 결정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내세운 '천천히 서두름(Festina Lente)'의 원칙을 되새겨볼 때"라고 밝혔다.




그는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기준금리를 빅스텝으로 인상하던 때의 거친 풍랑은 이제 어느 정도 잦아든 듯 하다"며 “하지만 지금은 수면 아래 곳곳의 보이지 않는 암초를 피해 항로를 더욱 미세하게 조정해 나가야 하는 또 다른 어려움을 마주한 시기"라고 진단했다.


이 총재는 “이런 때일수록 국가별로 정책운영 성과가 차별화돼서 나타나면서 각국 중앙은행의 실력이 더욱 뚜렷이 드러나기 마련"이라며 “겸손한 자세로 경제예측의 정확성을 높이고 다양한 시나리오별 리스크를 종합적으로 점검하면서 정교하게 정책을 운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총재는 구조개혁에 대한 한국은행의 선도적인 역할도 강조했다. 그는 “저출산, 고령화, 지역불균형과 수도권 집중, 연금고갈과 노인빈곤, 교육문제, 소득·자산불평등, 노동시장 이중구조 등 그간 누증되고 심화돼 온 여러 구조적 문제들 앞에서 우리의 연구영역을 통화정책의 테두리 안에만 묶어둘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고 해도, 높은 물가수준은 생계비 부담으로 남고, 이는 통화정책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게 이 총재의 분석이다.


그는 “주요국 대비 높은 의식주 비용을 낮추기 위해 공급채널을 다양화하고, 유통구조를 개선하는 등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며 “기후위기, 인공지능 혁신 등에 따른 사회 대전환을 앞두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러한 구조적 문제들에 대한 해결 노력 없이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기대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법적 권한이 없는 한국은행이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다루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거나 비판적인 시각이 있을 수 있다"며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권한이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한국은행이 더 중립적으로 분석하고 장기적 시각에서 해결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밝혔다. 한국은행 임직원들이 국가 경제의 발전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구조개혁 과제에 대해 제언하는 역할을 계속 해야 한다는 게 이 총재의 주문이다.


끝으로 이 총재는 “한국은행이 지식의 소비자나 중개인에 머무르지 않고 각 분야의 프론티어에서 지식 생산자로서의 역할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며 “이 과정에 수반되는 고통과 논란은 실력으로 이겨내자"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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