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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배임죄 폐지론 성급...CEO에 면죄부” 전문가들 일침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6.17 17:05

‘정부 야심작’ 밸류업 프로그램 지지부진

이사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 포함, 배임죄 폐지 부상
이복현 원장 사실상 尹정부 ‘스피커’ 역할 자처 관측

금융 횡령사고 빈번...‘배임죄 폐지, CEO만 이득’ 우려
“민사로는 횡령사고 구제받기 어렵고 시간 오래 걸려”

이복현 금감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배임죄를 폐지해야한다고 주장한 것을 두고 금융권 및 지배구조 관련 전문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최근 금융권에 횡령 사고가 끊이질 않는 상황에서 배임죄를 폐지할 경우 배임죄와 함께 적용되는 다른 법안들도 자칫하다 힘이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밸류업 정책이 좀처럼 효과를 보지 못하는 가운데 상법상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한편, 배임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맞교환'을 제시한 것은 주주 권익 보호, 이사회 내부통제 강화 등 여러 방면에서 바람직한 접근법이 아니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즉 우리나라에서 과도하게 남용되고 있는 배임죄는 폐지, 혹은 개선하는 방향으로 가되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이사 충실의무 대상, 주주로 확대...배임죄 폐지해야"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의 저평가)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고, 배임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상법 제382조의3에서는 이사가 회사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를 추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주주로 확대될 경우 주주로부터 배임죄로 고발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배임죄를 폐지해야 한다"며 일종의 당근책을 제시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 원장이 사실상 현 정부의 '스피커 역할'을 자처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가 배임죄 폐지론을 꺼내들 경우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당의 거센 공세에 직면할 수 있는 만큼 이 원장이 정부의 메시지를 대신 전달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다.





금융권 횡령사고 빈번...“배임죄 순기능 있어, 폐지 성급"

기업들 전경.

▲기업들 전경.

전문가들은 이사의 책임 확대와 배임죄 폐지를 두고 마치 '협상'의 대상으로 삼는 듯한 이 원장의 메시지가 자본시장에 또 다른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 과도하게 남용되고 있는 배임죄에 대해서는 개념을 명확하게 하는 식으로 제도를 손보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이사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방안은 배임죄와 별개로 접근해야 한다는 비판이다.


특히나 최근 금융권에서 횡령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가운데 배임죄를 폐지할 경우 자칫 금융권을 비롯한 대기업 재벌, 최고경영자(CEO)에게 면죄부를 주는 식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실제 우리은행 영업점에서는 최근 한 직원이 대출금을 빼돌리는 식으로 100억원 가량을 횡령한 사실이 적발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으로 구속됐다. 작년 8월 롯데카드에서는 직원들이 협력업체 대표와 공모해 부실한 제휴 계약을 맺고, 105억원을 협력업체에 지급하도록 한 뒤 이를 페이퍼컴퍼니 등을 통해 빼돌린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해당 사안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21대 국회 때부터 금융권 횡령 등 각종 금융사고에 대해 이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쪽으로 개정안들이 많이 발의됐는데,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은행장이나 금융지주 회장들은 배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며 “횡령은 배임죄와 엮여있고, 배임죄는 손해배상, 즉 민사와도 직결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일부에서는 민사소송을 통해 배임으로 인한 회사의 손해분을 회복하면 되기 때문에 배임죄까지 적용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주장이 있다"며 “그러나 배임죄로 인한 손해분에 대해 피해회복이 70% 이상 이뤄지지 않으면 양형에 반영이 안 되기 때문에 경중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당사자가) 서둘러 피해회복에 나서는 경향이 있다. 즉 민사 손해배상에 대한 담보를 확실하기 잡기 위해서라도 배임죄 처벌 조항은 살아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횡령사고에 대해 민사법 손해배상만 적용하면 피해분에 대해 구제받기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는 설명이다.



배임죄 폐지 찬성론도...“횡령은 별개의 법 적용해야"

반면 배임죄는 제도를 손질하되, 횡령 등 각종 금융사고는 별개의 법을 적용해 책임을 묻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배임, 횡령죄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독일, 일본도 있지만, 일본과 독일은 배임죄 대신에 절도죄나 사기죄를 적용하고 있다"며 “과도하게 남용되고 있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죄를 폐지하는 한편, 이사의 의무를 강화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협상의 대상이 아닌) 다른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나 배임죄 폐지 여부와 별개로 이사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를 명시하면, 이사회 차원에서 보수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지배구조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이사회 입장에서는 회사의 이익과 주주의 이익이 상충될 때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주주의 이익이 앞선다고 해도 대주주 이익과 소액주주 이익이 상충될 때 어떤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지에 대해 판례로 확립된 부분이 없다"며 “통상적으로 (법에는 명시돼있지 않지만) 이사가 업무를 수행할 때 회사의 이익뿐만 아니라 주주의 이익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인지하는 상황에서 이를 명문화할 지는 다른 문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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