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에 보를 막아 강물을 가두어 녹조가 창궐한다니까 소양강댐에는 녹조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다가 지난해부터 소양강댐에도 안동댐에도 대청댐에도 4대강 보에도 전국적으로 녹조가 재앙적인 대발생을 앞두고 있다. 한 치 앞을 모르고 부영양화가 안 되면 소양강처럼 녹조가 없으므로 4대강 보를 탓하지 말라고 비아냥거린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대단한 명언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착각이면서 대단한 실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구밀도가 높은 한반도에 5천만 명이 농축산업화로 먹고사는데 어떻게 강물을 자연 그대로 유지할 수가 있겠는가? 거기다가 경제발전을 위한 공업단지 가동도 불가피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용한 강물은 흘러내려야 다시 자연정화가 된다고 한 것인데, 퇴비나 오염원을 없애면 녹조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실언을 한 것이다. 만약에 그 넓은 4대강 유역에 부영양화를 완전하게 막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녹조가 없는 4대강 보가 가능하겠지만, 낙동강 유역에 1,300만 명이 사는 한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다가 정치가 개입하여 물 문제를 진영논리로 변질시켰다. 4대강 보를 만든 당파는 녹조가 보 때문이 아니라 농축산폐수가 오염(부영양화)되어 발생한다고 강변하면서 퇴비나 축산폐수 오염원을 제거해야 한다. 다른 당파와 환경단체는 보를 개방하여 강물이 흘러야 4km 구간마다 자정작용을 일으켜 녹조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느 것이 맞는 주장일까? 앞서 언급한 대로 둘 다 맞는 말이다. 둘 다 이루어져야 녹조가 없이 강물이 맑아진다. 그런데 왜 한쪽 주장만 맞다고 싸우는가? 패거리 할거주의 정치문화 때문이다. 진짜로 몰상식해서 모르는 것이 아니라 뻔히 알면서도 이분법적으로 한쪽 주장만 하는 것이다. 상대방 말은 듣고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녹조뿐만 아니다. 4대강에 홍수가 나도 보가 피해를 줄였다. 아니다 보가 오히려 피해를 늘렸다. 뻔한 싸움을 해대지만, 이것도 녹조 문제와 같이 상대방 주장을 듣기 싫은 것뿐이다. 강을 준설 해서 일시적인 저류 효과는 몰라도, 근본적으로 강물을 막고 있는 보가 어떻게 빠져나갈 홍수를 줄일 수 있는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더 이상 정치가 개입하여 물이 썩고, 정치가 개입하여 상식이 전도되며, 정치가 개입하여 사람 목숨까지 권력의 도구로 삼지 말아야 한다. 물에 대한 몰상식은 지록위마나 곡학아세 같은 기회주의자들 편견 때문이다. 재난과 사고로 국민이 떼죽음을 당해도, 녹조와 중금속이 대재앙을 일으켜도, 오로지 그들만의 해괴한 논쟁만 일삼는다.
정치이념과 사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몸서리쳐지는 지옥의 묵시록이었다. 4색 당파, 독립운동, 6.25전쟁, 쿠데타, 민주화운동 등을 겪으면서 때로는 침묵하고 때로는 절규하고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국민이 주인이고 상식이 법도인 시대다. 그런데 아직도 종파주의로 녹조는 외면하고 강물 농도가 맑아졌다는 언론도 있다.
지금 당장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종파가 아니라 모두 다 죽는다. 녹조가 대발생을 넘어 재앙이 되면 물을 마실 수 없으므로 뭇 생명들이 죽을 수밖에 없다. 마이크로시스틴을 마시면 독성으로 즉사하고 말 것이다. 2020.5 오카방고 우물에서 집채만 한 코끼리 350마리가 '시아노박테리아'라는 독성녹조(남조류)에 떼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맑았던 소양댐이나 안동댐까지 녹조가 위험단계를 넘어서고 있다. 동물까지 떼죽음을 당하기 전에 긴급조치로 방류하고 4대강 보도 개방하여 숨통을 터줘야 한다. 중금속은 준설하고 기후변화와 녹조대책으로 강물을 흘려보내야 한다. 앞으로는 댐이나 보가 아닌 산에 저수지 7만 개를 분산ㆍ설치하여 농ㆍ공ㆍ생수 확보와 가뭄ㆍ홍수를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