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의 근원적 동기는 타인에게 지지 않으려는 경쟁심이다. 그 이상의 정확한 설명은 없다."
왜 사람들은 소득 수준 이상의 사치품을 구매할까? 특권적 소수만이 몰두하는 비생산적인 학문, 예술 등은 왜 사라지지 않을까? 우리는 왜 적당히 만족하는 법을 모르고 계속 더 많이 소유하고자 할까? 왜 서로 다른 계급적 이해를 가진 부유층과 빈곤층은 모두 보수적일까? 사회 기여 활동은 정말 순수한 목적에 기반할까? 교육은 왜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할까?
'유한계급론'에서 천착하고 해명한 질문이다. 우리는 아직 베블런의 시대를 살고 있다. 과시적 소비와 유한계급의 기원을 그 근본까지 추적해 시대를 뛰어넘어 자본주의와 소비문화에 경종을 울리는 고전 '유한계급론'이 완역본으로 나왔다.
유한계급의 사전적 정의는 '생산 활동에 종사하지 아니하면서 소유한 재산으로 소비만 하는 계층'이다. 즉 노동하지 않는 계급을 말한다. 베블런은 사유재산의 등장과 이에 따른 약탈적 기질의 결과로 유한계급이 출현했다고 본다. 유한계급에게 재산은 필요의 영역이 아니다. 경쟁심의 영역, 즉 남들과 자신의 차이를 확인하는 영역이다. 여러 역사적, 경제적, 문화적 사례와 이론을 검토한 베블런은 남들과 차이를 만드는 것보다 재산 획득에 더 주요한 동기는 역사상 없었다고 단언한다.
재산은 존경, 명예를 획득하기 위한 수단이다. 더불어 축적된 재산이 늘어 유한계급이 늘어감에 따라 '차이'를 만드는 기준은 더욱 세분화된다. 유한계급은 생산적 노동에 종사하면 안 된다. 누군가 생산적 노동에 종사한다는 것은 그가 쌓아놓은 재산이 없다는 의미기에 유한계급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다.
과시적 소비의 동기도 여기서 나온다. 일상생활에서, 노동하면서 입을 수 없는 화려한 옷과 장신구는 타인에게 그 소유자가 노동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전달한다. 고대어, 수사학 등 수학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학문에 조예가 깊고, 고전 독해와 연구를 즐기며, 고급 스포츠 취향을 가졌다는 점 역시 같은 효과를 낸다. 필요 이상으로 복잡한 예법, 섬세한 예술 취향과 심미안도 마찬가지다.
사회 기여 활동과 사업 역시 후원자가 그런 일을 벌일 만큼 충분한 재력을 갖추었다는 점을 선전한다. 요컨대 이 모든 것들은 그가 시간을 비생산적으로 소비한다는 점, 즉 유한계급이라는 사실을 과시적으로 드러낸다.
베블런은 '유한계급론'에서 자본주의 소비문화에 깃든 본질적 허영을 간파하고 폭로했다. 유한계급을 추동하는 욕망의 작동 원리뿐 아니라 그 욕망이 초래한 구체적 현상까지도 세세하게 분석해 과시적 욕망에 찌든 사회상을 총체적으로 그려냈다. 베블런의 도발적인 경제학은 인간이 합리적 필요에 따라 소비한다는 가정을 절대화한 주류 경제학에 파문을 일으켰다.
베블런은 '유한계급론'이 품은 급진적이고 비판적인 문제의식 때문에 끊임없이 주류 학계에서 외면받는 지적 방랑이라는 희생을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출간 후 100년이 훌쩍 지난 이 책을 여전히 많은 사람이 다시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목 : 유한계급론 - 제도 진화의 경제적 연구
저자 : 소스타인 베블런
번역 : 박홍규
발행처 : 문예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