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주인공 17살 청년 카를 로스만이 자유의 여신상이 서 있는 뉴욕 항구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카를은 하녀의 계략으로 하녀에게 거의 겁탈당하다시피 하고, 그녀가 임신하자 그의 부모는 그를 미국으로 쫓아버린다.
낯선 미국 땅에 홀로 떨어진 로스만은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선한 의지와 미래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 특히 이 소설의 첫 번째 장인 '화부'는 자신이 처한 상황과 새로 마주한 세계를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읽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려 노력하며 자기를 주장하고 정당화하고자 하는 주인공 로스만의 캐릭터를 잘 보여준다.
더군다나 로스만은 배에서 내리기도 전에 미국에서 사업에 대성하고 상원의원이 된 외삼촌까지 만난다. 여기까지는 마치 '성장 서사'의 전형적인 주인공처럼 보이는 로스만이 독일에서 강제로 중단됐던 자신의 '성장 이야기'를 '아메리칸드림'의 실현으로 다시 이어갈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카프카의 세계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행복한 우연은 여기까지다. 그의 외삼촌은 카프카도 밝히듯이 아무런 죄가 없는, 무해한 로스만을 곧 집에서 쫓아내고, 로스만은 다시 자신의 '이야기'가 중단됐던 지점으로 던져진다.
로스만이 엘리베이터 보이로 일하게 된 옥시덴털 호텔에서 겪은 이야기도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 않는다. 세계는 그에게 결코 삶의, '자기 이야기(history)'의 주인이, 주체가 될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가 아무리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자기 앞의 상황을, 세계를 파악하고 제어하려 해도 우연은 항상 그의 편이 아니다.
그의 삶은 그 자신이 아니라 불가항력의 우연이 지배한다. 로스만이 미국에서 경험한 삶은 하나의 연속적인 성장 서사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불연속적이고 단편적인 에피소드들로 흩어질 뿐이다. 옥시덴털 호텔에서 도망쳐 나와 그가 들어가게 되는 곳은 여가수 브루넬다의 집인데, 브루넬다 에피소드는 끝을 맺지 못하고 중단된다.
근대 사회는 '멈춰 있음'을 그리고 '반복'을 용납하지 않는다. 개인에게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은 쉼 없이 움직이고 새롭게 변하고 발전해야 한다. 이와 같은 역사가 200년 동안 달려온 지금이다. 인류가 서 있는 곳은, 우리보다 앞서 쉼 없이 달려간 카프카 소설 속 주인공들이 도착한 종착지는 어디인가.
제목 : 실종자
저자 : 프란츠 카프카
번역 : 송경은
발행처 : 문예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