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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 |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올해 국제유가는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해 크게 좌우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 말 배럴당 40달러선까지 추락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미중 무역합의에 대한 기대감으로 인해 올해 상반기동안 60달러 수준까지 뛰어오르면서 연중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초 기대치와는 달리 양국이 협상에서 별다른 타협점을 찾지 못한데다 서로에게 ‘관세폭탄’ 카드를 꺼내들면서 국제유가는 폭락했다.
석유수출기구(OPEC) 회원국과 러시아 등 10개 주요 산유국의 연합체인 OPEC+가 올해부터 하루 120만 배럴 감산을 통해 ‘유가 끌어올리기’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연일 최고 수준의 산유량을 기록하고 있는 미국의 ‘셰일 붐’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이에 올해 하반기부터 국제유가는 좁은 박스권에서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였다. 중동지역을 둘러싼 미·이란의 갈등과 올해 9월 사우디 원유시설 피습사건으로 유가가 깜짝 폭등했지만 금방 제자리를 찾았다. 그러나 연말부터 미중 1단계 무역합의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국제유가도 덩달아 탄력을 받고 있는 모양새다.
이달 27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내년 2월 인도분 WTI는 전날보다 배럴당 0.1%(0.04달러) 오른 61.7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내년 2월물 브렌트유도 배럴당 0.35%(0.24달러) 상승한 68.16달러를 기록했다. 이로써 WTI와 브렌트유는 연초대비 각각 32.6%, 24.13% 올랐다.
이 가운데 전문가들이 작년 말 혹은 올해 발표한 ‘2019 국제유가 전망’이 눈길을 끈다. 각종 지정학적 리스크에도 연초 대비 국제유가가 20% 이상 오른 상황에서 어떤 기관이 가장 실제와 가깝게 전망했는지 주요 전문가들의 예측을 나열해봤다. 순서는 따로 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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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네이버금융) |
◇ 세계은행
2019년 원유시장을 처음으로 전망한 기관은 세계은행이다. 세계은행이 작년 12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OPEC은 올해 원유 생산을 늘리는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원유시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됐다.
세계은행은 원유시장이 과잉공급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OPEC 산유국의 생산부족으로 인해 유가가 폭등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내다봤다. 보고서는 "비(非)OPEC 국가들의 원유생산량이 글로벌 수요를 웃돌 것으로 예상되나, OPEC 산유국의 공급량에 따라 국제유가가 크게 좌우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은행은 보고서를 발표하고 한달 뒤인 올해 1월에 브렌트유가 올해 배럴당 평균 67달러에 머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세계은행의 전망과 달리 올해 국제유가는 수요둔화와 과잉공급에 짓눌리면서 OPEC+가 이달 초 감산규모를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결국 OPEC 회원국들이 생산능력 부족에 시달릴 것이란 걱정은 기우에 그친 셈이다. 다만 세계은행의 브렌트유 가격 전망은 지난 27일 종가와 거의 근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 시티그룹
시티그룹이 작년 12월 공개한 투자노트에 따르면 올해 국제유가는 원유시장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에 따라 크게 움직일 것으로 전망됐다. 미국의 원유생산량이 연일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 OPEC+ 감산이행률에 따라 유가가 오르거나 내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시티그룹은 또한 미국, 사우디와 러시아가 각각 선호하는 유가 범위가 다르다는 점이 원유시장의 변동성을 키울 것으로 내다봤다. 저유가를 강조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WTI 가격이 배럴당 50달러선 밑으로 떨어지길 원했지만, 사우디는 브렌트유가 배럴당 70∼80달러선까지 올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러시아는 배럴당 60달러가 유지되어도 만족한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시티그룹은 올해 브렌트유가 배럴당 55달러에서 65달러 사이에 머무르면서 평균적으로 60달러를 기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결과적으로 올해 원유 시장은 전반적으로 시티그룹의 예상치와 부합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초 미중 무역합의에 대한 기대감으로 인해 브렌트유가 올해 4월 최고점인 배럴당 74.57달러를 기록했지만 그 이후론 대체적으로 55달러∼65달러 박스권에 머물렀다. 다만 이달 들어 1단계 무역합의에 대한 기대감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미 증시로 유가도 덩달아 강세를 보이면서 65달러 선을 돌파했다.
◇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BAML)
BAML의 후탄 야즈하리 글로벌 자산리서치 부문장은 작년 12월 미 경제매체 CNBC와의 인터뷰를 통해 "2019년 브렌트유가 배럴당 70달러에 머무르며 2분기에는 가격이 더 뛸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OPEC+의 감산 결정은 적절하고 이로 인해 원유시장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룰 것"이라며 "물론 가격 변동성이 따르겠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국제유가는 상승기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올해 브렌트유가 지난 4월 최고점을 제외하곤 배럴당 70달러 선 밑에서 꾸준히 맴돌았던 점을 고려하면 BAML의 예상은 빗나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CNBC도 BAML가 전망을 발표할 당시 "글로벌 경제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는 와중에 BAML의 이러한 전망은 전문가들의 컨센서스와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오일프라이스닷컴은 "BAML은 작년 12월 이후 올해에도 몇 차례 유가전망을 추가로 밝혔는데 결과를 보면 신뢰도가 다소 떨어진다"고 꼬집었다. BAML은 지난 4월에도 유가전망을 내놓은 바 있는데 당초 내용에 따르면 OPEC+의 감산, 미 셰일 둔화와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규제로 인해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뛸 수 있다고 예상했다.
BAML의 프랜시스코 블랜치 글로벌 원자재·파생상품 부문 책임자는 올해 상반기 미국과 이란의 군사충돌을 우려하면서 "최악의 경우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아울러 BAML은 지난 8월 중국이 미국의 관세폭탄에 대한 보복 차원으로 이란산 원유를 구매할 경우 유가가 배럴당 30달러까지 폭락할 수 있다고 예상하기도 했다.
◇ 미 에너지정보청(EIA)
EIA는 매월별 ‘단기 에너지전망 보고서(STEO)’를 발표하는데 올해 1월에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올해 WTI와 브렌트유의 평균가격은 배럴당 각각 53달러, 61달러에 머무를 것으로 전망했다. EIA는 "지난 1분기의 경우 WTI와 브렌트유의 가격차이가 배럴당 8달러에 그치지만 4분기 들어서 격차가 배럴당 4달러로 좁혀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전망은 대체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실제 올해 3분기 브렌트유의 평균 거래가격은 배럴당 61.90인 것으로 나타났고, 지난 11월 평균가도 배럴당 62.70달러를 기록했다. 다만 국제유가가 이번 달부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어 지난 27일 종가기준으로 보면 EIA의 전망과는 어긋나는 모양새다. 또 이날 기준 WTI가격과 브렌트유의 가격 격차는 배럴당 6.44달러로 EIA의 예상치보다 높게 나타났다.
◇ 중동지역 정세불안에 대한 국제에너지기구(IEA)·RBC 캐피탈 마켓·유라시아 그룹 전망
아울러 올해는 중동지역을 둘러싼 미국과 이란의 갈등으로 인해 공급차질을 우려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종종 제기됐다. 미이란 긴장감이 격화되면서 세계 최대의 원유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에서 유조선 피습과 미 군사용 드론(무인기)이 격추되는 사건들이 터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원유 시장은 전문가들 시각과 정반대로 움직였다.
파티 비롤 IEA 사무총장은 지난 7월 인도에서 열린 에너지 컨퍼런스에 참석해 부진한 원유수요와 지속되는 공급과잉이 지정학적 리스크를 상쇄시킬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가격은 시장논리에 따라 결정된다"며 "현재 원유시장을 점검해보면 원유에 대한 수요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물론 이라크, 브라질, 리비아에서도 산유량이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IEA가 비슷한 시기에 발표한 원유시장 보고서 또한 "글로벌 원유 공급량이 수요를 약 90만 배럴 앞질렀다. 현 시점에서 원유시장의 축소는 큰 의미가 없다"면서 공급과잉에 대해 경고했다.
반면 RBC 캐피탈 마켓의 수석 상품 전략가인 헬리마 크로프트는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긴장감이 브렌트유 가격을 80달러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정치리스크 컨설팅 업체 유라시아 그룹도 유가 급등 가능성에 주목했다. 유라시아 그룹 선임 애널리스트 헨리 롬은 분석노트에서 전면전이건 제한적인 충돌이건 석유를 포함한 "상품가격에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고, 걸프만 너머로 불안정이 확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롬 애널리스트는 "제한적인 전쟁은 유가를 배럴당 100달러 이상으로 높일 수 있고, 대규모 충돌이라면 150달러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이 전망은 얼마나 맞았을까. 중동지역을 둘러싼 미이란 갈등이 고조되고 이로 인해 국제유가가 영향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전문가들이 전망했던 수준까지는 뛰어오르지 못했다. 심지어 세계 최대 산유국 중 하나인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의 석유시설이 드론 공격을 받으면서 가동이 중단되어도 브렌트유는 배럴당 80달러 선에 근접하지 못했다.
이러한 사태들이 과거 1∼2년 전에 벌어졌으면 국제유가가 전문가들 전망 수준으로 폭등했겠지만, 미중 무역전쟁과 글로벌 경기둔화에 대한 우려 등이 맞물리면서 올해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실제 사우디의 핵심 석유시설이 지난 9월 14일(현지시간) 드론 공격을 받아 가동이 중단되면서 9월 16일(현지시간) 브렌트유는 배럴당 69.02 달러로 ‘반짝’ 반등한 이후 금세 약세로 전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