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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련 아주대학교 에너지공학과 명예교수 |
양측 사상자는 이미 2000명을 넘어서며 계속 늘어나고 있다. 국제유가는 당연히 지정학적 위험을 반영하여 미국(서부 텍사스유)이나 유럽(브렌트유) 선물 시장에서 배럴당 80달러 후반으로 4% 가량 올랐다. 이는 금리 인상과 경기 부진으로 원유 수요 증가의 한계가 반영된 9월 마지막 주의 90달러 중반 수준에서 약 7∼8% 하락한 수준이다. 따라서 지금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산유국이 아니라서 원유 수급에 미치는 영향이 작고, 사우디아라비아나 미국이 원유 생산량 유지 정책을 견지할 것이어서 급변 상황은 진정되고 있다. 러시아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곤궁으로 원유·가스 감산을 시행할 처지가 못 된다. 1973년 석유 파동 때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등 주요 아랍 국가들이 일제히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지지하면서 강력한 석유 감산에 나섰지만, 이번에는 그런 움직임은 아직 없다. 결국 산유국들의 동시다발적 감산과 수출통제 가능성은 거의 없어 50년 전 상황과는 다를 것 같다.
따라서 우리는 종래와 전혀 다른 다음의 에너지-석유 위기 대응 전략을 심각하게 그리고 시급하게 추진해야 한다. 사실 1970년대 아랍 석유 금수조치의 충격은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 에너지 및 외교 정책의 주요 기반을 형성했다. 석유의 지정학적 무기로 사용 가능성은 모두에게 ‘에너지 독립’에 대한 강박적인 탐구로 이어지게 했다. 미국은 셰일 붐으로 인해 1952년 이후 처음으로 에너지 순수출국이 됐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독립’의 필요성이 다시 커지고 있다. 더욱이 청정에너지로의 전환 필요성으로 인해 에너지정책 수립 기반은 더욱 복잡해지고, 불확실한 기술적-경제적 여건에 직면해 효율적 정책 구도 정립 방안이 혼돈 속에 있다.
이런 불확실성에 대응해 많은 나라에서 이미 국민적 지지가 어느 정도 입증된 1970년대 식의 에너지정책을 주저 없이 채택하고 있다. 가격을 통제하고 에너지 독립을 중시하며 수입 감축을 추구한다. 이는 지금과 1970년대와 에너지 위험의 성상과 구조가 매우 달라졌다는 사실을 일정 부문 간과한 것이다. 지금 세계 에너지정책 기조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경쟁 심화, 분열과 보호주의 강화, 화석 연료에서 청정에너지로의 다소 ‘무질서한’ 전환 시도, 기후 변화의 영속적 폐해 가능성과 같은 종래와 다른 정책 수요가 있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 결국 석유파동 50주년을 맞이하는 지금 우리는 1973년의 교훈을 냉철하게 되새겨야 한다.
필자는 ‘에너지 독립’이라는 개념은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 (Chimera)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어느 국가이든 오래 에너지 독립을 추구하지만, 깊이 통합되고 상호 연결된 세계 시장에서 그 독립 가능성은 매우 제약된다. 어떤 특정 산유국에서든 석유 공급 장애가 발생한다면 시장이 연료 가격을 결정하는 모든 국가의 유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순 석유 수출국의 지위를 가진 미국도 마찬가지라는 것이 각종 연구에서 입증됐다. 따라서 진정한 에너지 안보는 단지 수입을 줄이거나 국산 생산증대보다 덜 사용하고 효율화하는 것에서 달성할 수 있다. 세계는 연비 기준을 부과하고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는 등 석유 사용감축 조치를 통해 1970년대 오일 쇼크를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와 같은 에너지수입국의 경우 석유 위기에 따라 국가 차원의 원유 확보 장애 뿐 아니라 소비자 차원 적정가격의 휘발유 부족 사태에서 더 많은 고통을 받는다. 이는 유가 통제와 인플레이션에 대처하기 위해 채택된 복잡한 위험 할당 정책 때문이다. 석유 회사들은 정부 지침 등에 따라 원유 수입을 줄인 이후에 주유소 등 소매점에 대한 판매를 제한하는 시장 실패를 자초했다. 소비자 희생을 바탕으로 한 관-민 정책 야합으로 매도해도 할 말이 없다. 되돌아보면 1973년 당시 대부분의 석유는 장기 계약 형태였기 때문에 계약된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대체공급원 확보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규모 현물 시장과 함께 다양한 대체에너지 시장, 그리고 청정 전환 시장이 잘 준비되고 갈수록 그 작동 효율이 높아지고 있다. 심지어 우크라이나 사태 당시 유럽의 러시아 가스 및 원유 가격 상한제 실시는 정책 실패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가격 신호 기능 약화는 항상 나쁜 선택이다. 더 많은 공급을 촉진하고 수요 억제를 통해서만 시장 및 정책 실패를 방지할 수 있다. 그 대신 정책 당국은 시장 주도자 위치를 고수하기보다 저소득층과 취약 가구 지원과 보호에 더 큰 관심을 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