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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리의 눈] 디지털 용어부터 시작되는 금융 소외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0.11.23 16:55

금융증권부 송두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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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업무를 보기 위해 은행 영업점을 찾았을 때 한 직원이 할머니 한 분의 요청에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할머니가 은행 계좌 잔고를 휴대폰으로 볼 수 있게 도와달라고 했던 것이 발단이었다.

직원은 앱을 다운받아야 한다고 할머니에게 설명하고 있었는데, 할머니는 앱이 무엇인지 알 지 못하셨다. 결국 직원이 휴대폰을 건네 받았는데, 구글 로그인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구글 로그인을 해야 앱을 내려 받는 플레이 스토어 앱을 이용할 수 있기에 난감한 상황이었다. 직원은 할머니에게 구글 로그인을 하기 위해서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아야 한다고 얘기했는데 할머니는 로그인이 무엇인지 다시 직원에게 되물었다. 직원은 설명하기 난감하다는 표정이었다.

대화는 도돌이표였다. 직원은 앱, 구글, 로그인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며 할머니에게 계속 설명했지만 할머니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할머니는 은행 앱을 다운받는 것과는 관계 없는 메시지 등을 보여주시며 "이게 앱은 아니냐"고 여러 차례 묻기도 했다. 반복되는 설명에 지친 직원은 구글 로그인부터 해야 하니 통신사에 먼저 가보셔야 한다고 얘기했다. 씨름 끝에 할머니는 "이것 때문에 일부러 은행에 왔는데…"란 말을 반복하시며 마지못해 은행 밖으로 나가셨다. 할머니도 직원도, 그리고 은행 업무를 보기 위해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이용자들도 지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은행의 디지털 전환 속도가 빨라지면서 커지는 고령층 금융소외에 대한 우려를 직접 실감할 수 있었던 순간이다. 할머니가 설령 구글 로그인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끝이 아닐 테다. 은행 앱을 다운받고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사용해 로그인을 하는 과정에 이어,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서비스에 익숙해져야 하는 난관을 또 거쳐야 한다.

여기다 디지털 금융 서비스가 고도화할 수록 많아지는 각종 디지털 용어는 고령층 사용자들을 더욱 금융 사각지대로 내몰게 된다. 당장 앱을 다운받고 로그인을 해야 한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사용자들에게 오픈뱅킹, 마이데이터, 빅데이터 등 각종 용어는 생소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나마 설명을 들을 수 있었던 영업점마저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디지털 금융에 대한 이해력이 높아야만 금융 서비스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금융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는 환경이 되고 있다.

금융사들은 고령층이나 장애인 등 금융 소외계층을 위해 내놓고 있는 서비스들이 실질적으로 이용자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되돌아 봐야 할 것이다. 디지털 사용이 낯선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디지털 용어조차 어렵게 다가온다. 디지털 내용을 쉽게 전달할 수 있도록 용어부터 풀어쓰고,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들은 없는 지 기본적인 고민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금융권에 거센 디지털 금융 바람에 매몰돼 놓치는 부분은 없었는지 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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