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
이 소설에선 돈이 없다는 것의 공포를 ‘비참한, 구원 없는 지옥’으로 표현했다. 요조는 돈이 없을 때 "남은 건 세 가지 방법 밖에 없어. 하나는 귀농, 또 하나는 자살, 마지막 하나는 기둥서방"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요조는 ‘여자들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하는 분위기’를 가졌어서 언제 어디서나 여성들로부터 아무런 타산도 없는 호의, 자연스러운 호감을 받아 아무리 절망스러운 상태가 되었어도 누군가의 기둥서방은 되었다.
오래 전에 읽어서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는 모든 동물은 불사신인 유전자의 생존을 위한 "생존기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유전자 스스로가 생존하기 위해 그의 조종에 따라 내 몸은 그 유전자를 위한 최선의 방향으로 사용되고, 복제되고, 그 임무가 끝나면 폐기된다는 것이다. 유전자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유전자가 만든 도구가 바로 인간이라는 것이다. 자기복제의 방법으로 무성생식이 아닌 남성과 여성이 존재하는 이유는 다른 성에 의한 수정이 돌연변이를 더욱 잘 이끌어 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유전자가 미리 심어 놓은 프로그램에 따라 행동하는데, 그 행동을 본능이라고 부른다. 이기적인 자기복제자의 프로그램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렵다. 본능에 반하기 때문이다.
결국 도킨스는 ‘생존’과 ‘번식’이 인간 존재의 목적이며, 그 목적은 불사신인 유전자가 계획하고 지시한다는 것이다. ‘생존’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영양분을 섭취하는 것이고, 인간은 온갖 방법으로 그 영양분을 얻기 위해 투쟁한다. ‘번식’은 생존보다 더 어려워 때로는 목숨을 걸고 이성을 쟁취해 유전자를 퍼뜨린다. 이것은 찰스 다윈이 1871년에 쓴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에서 이미 말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도킨스 이전, 1940년대에 벌써 다자이 오사무가 똑 같은 얘기를 했다는 사실이다. 다자이가 쓴 어떤 소설에는 이런 표현이 있다. "이 세상에 전쟁이니 평화니, 무역이니 조합이니 정치니 하는 것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요즘 들어 저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모르시겠지요. 그래서 영원히 불행한 겁니다. 그건, 가르쳐드리지요, 여자가 예쁜 아이를 낳기 위해서입니다." 이래서 소설가를 천재라고 한다.
나의 결론은, 사회구조를 여자가 예쁜 아이를 낳고 싶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에선 아이를 가질 수 없다. 1억 원을 준다 해도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는 여성의 거리 인터뷰가 TV에 나온다. 정부와 지자체, 여당과 야당 할 것 없이 출산율을 끌어올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출산 장려금 지원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사회 구조 자체가 문제다. 이 나라에서 자식을 낳으면 그 자식이 과연 인간 실격자가 아닌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이다.
통계청은 1월 중 ‘쉬었음’ 인구가 37만9천명(16.2%) 증가한 271만5천명으로 집계돼, 이 수치는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큰 수치며, 구직단념자 수도 77만5천명으로 전년보다 23만3천명 늘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실업자에 포함되지 않는 숫자다. 실업자 수도 사상 처음으로 150만명을 넘었다. 연령대로 보면 15~29세 고용률이 가장 크게 줄었다. 이러고도 아이를 낳으라고 할 수 있는가.
나는 다자이 오사무의 음울한 소설은 더 이상 읽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