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이번 개정안은 기존 탄소세 법안과는 달리, 탄소세를 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 개편과 연계시켰는데, 교통·에너지·환경세를 개편하지 않고서는 탄소세 도입이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를 인정한 결과이다.
그렇다고 이번 개정안이 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의 ‘개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명칭은 탄소세이고, 석탄ㆍLNGㆍ중유 등에 대해서는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라 톤당 5만5000원을 부과하지만, 정작 휘발유와 경유 세율은 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 기본세율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기본세율이 온실가스 배출량과 무관하기에 반쪽짜리 탄소세에 불과하다.
물론 교통시설 확충·대중교통 육성 재원마련이라는 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의 본연 기능을 인정해 휘발유·경유 탄소세 세입의 73%를 교통시설특별회계로 전입하도록 한 부분은 그나마 진일보했다고 평가된다. 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 세입은 연간 15조 원으로 단일 세목으로는 소득세·부가세·법인세 다음 자리에 올라 있는 막대한 규모의 세원이다.
또한 간접세로서 정유사가 선납하는 구조로 징수되기 때문에 휘발유·경유를 주유하면서도 정확하게 얼마씩 부담하는지 소비자가 쉽게 알기 어려워 과세당국 입장에서 조세저항 없이 쉽게 걷어 들일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이런 알토란 같은 세원이다 보니 정부 부처별로 그동안 자기가 원하는 사업에 전용하자는 주장들이 있었다. 가령 활용처가 정해진 목적세를 보통세로 전환, 일반회계로 전입하자거나, 그린뉴딜 투자재원으로 세입 100%를 전용하자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염불보다 재원이라는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탓에 이런 주장은 크게 진전될 수 없었다.
궁극적으로 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 개편은 교통시설 확충·대중교통 육성 재원 마련 문제를 풀어야 한다. 얼핏 생각하면 수익자 부담원칙에 따라 교통시설인 도로를 이용하는 자동차 운전자가 관련 재원을 부담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부담 방법이 굳이 휘발유, 경유 등 연료 과세이어야 할까. 엄밀하게 말하면 연료 자체는 도로를 마모시키거나 교통체증을 유발하지 않는다. 이를 유발하는 것은 휘발유·경유 등 연료를 연소하면서 차량 이동 서비스를 소비하는 주행행위이며, 그래서 보다 합리적인 과세표준은 주행행위의 강도, 다시 말해 주행거리가 되어야 한다. 다만 과세당국 입장에서 차량별 주행거리 정보 파악에 드는 번거로움 때문에, 정유공장 출하량만 파악하면 되는 연료 과세 방식이 그동안 선호됐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전기·수소차 보급이 확대되면서 이 같은 연료 과세 방식은 새롭고도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전기·수소차가 기존 휘발유, 경유차 등을 대체하면서 교통·에너지·환경세 세수에 구멍이 생기고 이는 교통시설 확충·대중교통 육성 재원 부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 EU나 미국 일부 주 등에서는 정보통신기술(ICT) 기술과 접목하여 차량별 주행거리를 파악해 세금을 부과하는 주행거리세(VMT tax) 도입에 대한 검토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주행거리세는 ‘연료’ 대신 도로를 이용하는 ‘차량’이 대상임으로, 전기·수소차도 동등하게 과세 대상이 되어, 전기·수소차 확산에도 세수 중립을 달성할 수 있다. 또한 연료에 대한 세금이 차량으로 이전됨에 따라, 휘발유, 경유에 대해서도 석탄ㆍLNGㆍ중유 등 다른 화석연료와 일관성·형평성을 유지하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과세표준으로 한 탄소세를 부담 없이 도입할 수 있게 해준다. 결국 교통·에너지·환경세 개편은 주행거리세와 탄소세로 분리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