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썸. |
[에너지경제신문 김건우 기자] 가상화폐거래소 업계 2위인 빗썸이 ‘가상자산사업자’ 신고에 필요한 ‘실명계좌 확인서’를 발급받는 과정에서 거래은행인 NH농협은행과의 협의에 난항을 겪고 있다.
NH농협은행은 현재 제도하에서는 ‘자금세탁’의 우려가 크다며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나섰다. 일각에서는 빗썸 등이 기한 내 사업자 등록을 하지 못할 경우, 업계 1위 업비트의 독점체제가 굳어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빗썸-농협銀, 실명계좌 확인서 두고 갈등...쟁점은 ‘자금세탁방지’
26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기한인 다음 달 25일을 한 달 남짓 앞두고 빗썸ㆍ코인원 등 가상자산거래소들이 신고서 제출에 필요한 ‘실명계좌 확인서’를 받기 위해 거래은행과의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업계 1위인 ‘업비트’의 경우 거래은행인 케이뱅크와의 원만한 협의로 지난 20일 일찌감치 사업자 신고서를 제출했다.
빗썸, 코인원 등은 신고서 제출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완료한 상황으로, ‘실명계좌 확인서’가 갖춰지는 즉시 가상자산사업자 신고서를 제출할 방침이다. 다만 확인서 발급자인 NH농협은행과의 협의가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업계에서는 이번 이슈의 핵심을 ‘자금세탁 발생 가능성’으로 보고 있다. 금융당국이 자금세탁을 방지할 수 있는 가상자산거래소의 ‘트래블룰’ 적용 시기를 내년 3월 25일로 지정함에 따라 그 전까지 자금세탁을 방지할 대책이 없게 됐다는 지적이다. 트래블룰은 국제기구인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에서 자금세탁방지와 테러자금조달 차단을 위해 만든 규정으로, 가상자산 거래 시 발급자와 수신자 정보 제출을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NH농협은행 측은 빗썸과 코인원에 트래블룰 구축 전까지 ‘외부자금 입출금’이라도 막아달라고 제안했다. 현금을 매개로 한 가상자산 입출금은 유지하되 가상자산-가상자산 간의 입출금만이라도 제한해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자는 취지다. 빗썸 등 가상자산업계는 가상자산 간 이동을 제한할 경우, 이용자 편의가 훼손되고 시세가 왜곡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같은 입장차를 두고 양측은 협의를 지속하고 있는 양상이다.
다만 앞서 신고서를 제출한 업비트의 경우 케이뱅크로부터 별다른 조건 없이 실명계좌 확인서를 취득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트래블룰의 내년 3월 구축을 수용한 케이뱅크와 달리 트래블룰의 조기적용 또는 외부 입출금 제한을 제안하는 NH농협은행 모습이 대비되기 때문이다. NH농협은행은 케이뱅크와는 경우가 전혀 다르다는 입장을 전했다.
NH농협은행 관계자는 "자사는 케이뱅크와 달리 해외에 지점을 두고 있어 만에 하나 테러자금조달을 위한 자금세탁이 발생할 경우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며 "과거에 실제로 자금세탁이슈가 발생해 중국의 한 은행이 2조원대의 벌금을 물고 도산위기에 빠진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트래블룰 적용 전 자금세탁이 발생할 경우 현재로서는 면책에 대한 근거가 없어 책임이 온전히 은행에 귀속되기 때문에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각에서의 분석처럼 확인서를 내주지 않기 위한 일종의 ‘갑질’은 전혀 있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며 "은행차원에서 생존의 문제인 만큼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전제로, 최대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협의를 진행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NH농협은행. |
빗썸 또한 자체적으로 내부통제체제를 강화하며 협상력을 높이는 모양새다. 빗썸은 골드만삭스·노무라금융투자 등 글로벌 금융기업에서 준법감시 부문을 이끌었던 이유정 부문장을 준법감시인으로 신규 선임했다. 이 부문장은 자금세탁방지(AML) 부문에서 10년 이상의 경력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이번 선임을 통해 자금세탁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해소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빗썸 관계자는 "앞으로도 빗썸은 금융권에 버금가는 자금세탁방지 체계와 내부통제 시스템을 갖춰 가상자산 업계의 투명성과 신뢰도 향상을 선도하고, 투자자 보호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가상자산업계 "협상과 무관하게 ‘업비트’ 독점체제 가능성 높다"
가상자산업계에서는 빗썸과 NH농협은행 간의 실무적 협상이 다음주쯤 마무리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동종업계 1위인 업비트가 이미 신고절차를 마친 상황에서 이번 협상이 결렬돼 빗썸 등 후발주자들이 사업자 신고를 하지 못할 경우, 업비트의 독점체제가 굳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익명의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농협은행이 기존의 입장을 고수해 협상이 불발될 가능성도 존재한다"며 "이 경우 업비트의 독점체제를 막기 어려워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빗썸, 코인원 등 후발주자들이 신고서를 제출해 경쟁구도로 들어선다 해도, 현재 시장추세를 볼 때 (투자자들이) 여러 거래소 중 결국 업비트만 선택할 가능성도 높아 독점의 우려를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ohtdue@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