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용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
새해 벽두부터 에너지 문제가 심상치 않다. 점점 격화되는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경쟁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세계 경제의 흐름을 원활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문제로 고조되고 있는 러시아와 서방세계와의 긴장은 천연가스의 공급문제로 유럽의 겨울을 더욱 춥게 만들고, 세계시장에서 천연가스의 가격을 계속 올리고 있다. 세계 각 지역에서 우리와 관계없이 일어나는 일들이 한국의 에너지 안보 여건을 악화시키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는 생산에 필요한 자원과 에너지를 수입하여 물건을 잘 만들어 해외에 수출하는 무역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러한 경제발전 모델로 세계 10위의 경제 규모를 달성하고 이 순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생산과 소비, 수출에 필요한 1차에너지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였지만 현재는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80% 이상은 화석연료인 석탄, 석유, 천연가스에 의존하는 것이 현실이다. 우크라이나에서 긴장이 고조되거나, 중동에서 변고가 생기거나, 호주나 브라질에서 석탄 공급에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나라의 에너지 공급을 위협하는 상황이 되고 만다. 작년에 에너지 문제는 아니었지만 요소수 부족사태로 물류를 포함하여 경제활동에 큰 위협이 될 수도 있었던 상황도 경험하였다. 새해에는 더욱 불확실해지는 국제 정치와 경제 상황에 따라 한국의 취약한 에너지 및 자원 안보문제가 심각할 수 있다.
국내 상황도 에너지 문제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당장 오는 3월초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올 하반기부터는 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에 따라 세부적인 에너지 각 부문의 정책 기조, 정책의 우선순위, 정책의 완급 등이 달라질 수 있다. 현 정부는 지난달 해외 요인으로 연료비 상승 압박이 있음에도 물가상승을 이유로 공공요금인 전기요금, 가스요금의 인상을 유보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얼마 가서 못해서 올해 2분기, 3분기에 나누어서 인상한다고 발표하였다. 분기별로 에너지 요금을 올리는 것은 경제적 여파를 줄인다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누가 보아도 에너지 가격 인상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다음 정부로 넘기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
그동안 국내 또는 국외의 요인으로 전기요금이나 가스요금이 인상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정부는 늘 물가안정과 서민 보호를 앞세워 에너지 가격 상승을 억제하면서 그 부담을 에너지 공기업에 전가하는 정책을 시행하여 왔다.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로 요금인상 압박을 뒤로 계속 미루는 것으로 밖에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을 만들어 왔다. 반대로 에너지 가격의 인하가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탄력적인 에너지 가격 인하 정책을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에너지 가격정책에서 정부의 비탄력적 대응, 정치적 고려 등의 이유로 에너지 사용의 고비용, 비효율의 구조를 만들어 사회적 비용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하곤 하였다.
더 큰 도전은 온실가스 감축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세계 10위 이내의 온실가스 배출국, 국제사회와의 신뢰와 기여 등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국제적인 흐름에 동참하고 더 나아가서 이문제 해결에 국제적 리더십도 발휘해야 하는 상황에서 2050년 탄소중립과 2030년까지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국제사회에 천명한 상태이다. 이러한 장기적인 목표의 설정과 방향성에 반대할 사람과 집단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새해인 2022년은 이러한 원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구체적으로 이행해야 하는 첫해가 되는데 5월 초에는 새 정부가 출범한다.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차기 대통령을 포함하여 연속하는 여섯 명의 대통령들이 일관되게 에너지전환과 탄소중립 정책을 시행해야만 목표달성이 가능하다. 정책의 일관성과 단계적인 이행수단과 방법, 모든 이해 당사자들의 참여, 예상되는 사회적 갈등의 해결 등 모든 면에서 한국사회의 역량을 총동원해야 하고 에너지 문제뿐만 아니라 국제관계, 경제사회시스템의 전환 등 매우 복잡하고 장기적인 도전이다. 한국 사회가 경험하지 않았지만, 꼭 극복해내야 하는 새로운 도전이다. 차기 대통령과 정부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전환을 위한 30년 여정의 출발점에 서게 된다.
새해 에너지 부문에서 꼭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첫 번째는 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탈정치화’이다. 앞으로 정부가 여섯 번 바뀌어도 지속적으로 장기적인 정책을 이행하려면 정치적인 고려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특히 사회간접자본에 해당하는 에너지 부문은 국가의 경쟁력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고, 장기적으로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탈정치화는 다음 정부와 민간기업이 장기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초기조건을 만드는 것과 같다. 에너지 부문에서 이슈를 정치화하면 사회적 갈등의 원인이 되고 이에 따라 사회가 지불하는 직간접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정부를 포함하여 각 분야에서 의사결정을 할 때 사회적 비용의 최소화 원칙, 오염자부담원칙과 같이 참여자가 모두 수긍할 수 있는 기본원칙을 정하고 원칙에 맞는 합리적인 결정을 투명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기요금이나 가스요금에 연료비 연동제를 결정하였다면 어떤 원칙과 이유로 어떤 결정을 하였는지 그 과정과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를 시행하면 된다. 현재 국제 천연가스 시장에서 가격이 상승하는 이유로 가스요금의 인상요인이 발생하였다면 이를 반영하면 된다. 가스가격이 떨어지면 정해진 절차와 방법에 따라 가스요금을 인하하면 된다.
그러나 정치적인 고려나 다른 이유로 결정이 지연되거나 연기되면 모두 동의한 원칙을 스스로 안 지키는 것이 된다. 이로 인해 모든 이해당사자들로부터 신뢰를 잃게 되고, 그들의 의사결정에 있어 미래 불확실성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세 번째는 시장 기능을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발전시장은 형식적으로는 시장이 형성되어 발전사들이 전기를 생산하고 전력거래소에서 거래하는 형태이다. 우리나라 탄소배출권 거래시장의 규모는 단일 국가의 시장으로 현재까지는 제일 크다. 우리나라 탄소배출의 70% 정도를 차지하는 산업과 발전부문이 이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발전시장이나 탄소배출권시장이나 시장기능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 아마도 지나친 정부규제와 간섭이 민간참여를 주저하게 하는 원인일 수 있다. 제도를 처음 설계하고 시행하는 과정에서 정부나 정책당국은 제도의 성공을 위해 많은 점을 고려하게 된다. 이런 사항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불필요한 규제가 되고 시장진입의 제약조건이 되고 만다.
기술이 발전하고 국제 여건이 달라지고 하는 상황에서 기존의 제도가 당시에 아무리 좋게 설계되었어도 상황이 변하면 이에 맞게 손질을 해야 한다. 에너지 부문에서 시장을 통한 여러 제도를 과감하게 개선하여 시장기능을 회복하고 민간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할 시점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에너지 부문에 정책을 결정하는 기구나 위원회의 통폐합과 신설 등 새로운 여건을 반영한 개편이 절실하다. 2 년마다 계획을 세우는 전력수급기본계획, 5년·10년 단위의 에너지계획, 기후대응 계획 등 각각의 목적과 이유로 정부의 각 단위에서 생겨난 전문가 회의나 위원회가 너무 많다. 많은 위원회가 중복, 비효율, 갈등 등 부정적인 요소가 더 많아진다면 이번 기회에 과감히 조정해야 한다. 반면 한 부처가 다룰 수 없는 에너지전환, 에너지 안보, 기후대응 등을 종합적으로 다룰 수 있는 융합형 정부 기구가 꼭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