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월)
에너지경제 포토

성철환

cwsung@ekn.kr

성철환기자 기사모음




[EE칼럼] 포퓰리즘식 정유사 때리기로 고유가 낮출 수 있나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2.07.13 10:41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2022071301000504600020151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요즈음 기름값이 고공행진을 지속하면서 "기름값이 묘하다"는 유명한 발언이 재소환되는 분위기다. 2011년 1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제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국내 휘발유·경유 가격은 동반 하락하지 않는다"며 "기름값이 묘하다"라고 언급했다. 이에 최중경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은 직접 정유사 회계장부를 뜯어 휘발유·경유 원가를 밝히겠다고 호언장담하며 장단을 맞추고 나서기도 했다.

그런데 현재 정치권에서 10년 전 이 해프닝이 재연되는 것 같다. 며칠전인 지난 6일 이른바 ‘정유사 원가 공개법’ 즉, ‘교통·에너지·환경세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되었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정부가 유류세를 조정하면, 해당 세율을 적용받은 정유사의 민감한 영업비밀인 원가정보를 정부가 확인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더욱이 이런 시도에 앞서 정제마진 상승 등으로 상당한 영업실적을 올린 정유사의 초과이익을 환수, 고통 분담의 재원으로 활용하자는, 소위 ‘횡재세(Windfall tax)’, 즉 초과이윤세 도입 주장이 정치권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이 같은 정치권의 움직임 이면에는 휘발유·경유 가격이 국제유가 상승 시 로켓처럼 빠르게 오르지만, 국제유가 하락 시에는 깃털처럼 더디게 내린다는 소위 ‘로켓과 깃털(Rocket and Feathers)’ 현상과 이를 활용한 정유사의 폭리에 대한 의심이 존재한다.

우선 ‘로켓과 깃털’ 현상부터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비록 이 현상의 국내 존재 여부 자체는 학술적 근거가 부족하지만, 미국·유럽 등 해외에서는 심심치 않게 확인되고 있다. 다만 이는 휘발유·경유에 국한된 현상만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가령 미국 시카코대 펠츠만 교수는 242종의 품목 중 2/3 이상에서 같은 현상을 확인, 지난 2000년에 저명한 경제학 국제저널을 통해 발표한 바 있다.

쉽게 말해 ‘로켓과 깃털’ 현상은 우리 주위 대부분 제품에서 발생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다만 휘발유·경유는 다른 제품들과는 달리 거의 실시간으로 원자재인 국제원유 가격정보가 공개되는 터라 소비자들이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런 현상이 문제라면, 동일 현상을 보이는 다른 제품들에 대한 논의가 함께 이루어져야 공평하다.

정유사 폭리에 대한 의심은 국제유가 등 원가를 기준으로 가격이 책정되어야 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상품의 가격은 공급자의 원가와 함께 수요자가 부여하는 가치가 반영, 정상적인 시장을 통해 발견되는 것이 더 이상적이다. 그리고 휘발유·경유는 가격을 발견할 수 있는 국제시장과 함께 수요·공급 양측의 가치가 반영된 ‘시가(市價)’도 존재한다.

국내 정유사는 2001년부터 싱가포르 국제시가 평균(MOPS)을 기준, 제세공과금, 부대비용과 함께 일정한 정유사 프리미엄을 붙여 세전 공장도 가격을 결정하고 있다. 더욱이 휘발유·경유 국제시장은 상이한 시장참여자·가격결정 요인 등 국제원유 시장과는 독립되어, 정유사의 수익을 결정하는 휘발유·경유 가격과 국제유가 간의 차이(즉, 정제마진)가 단기적으로는 상당히 커질 수도 있다.

2분기 정유사의 호실적을 이끈 일등 공신인 배럴당 20달러대 정제마진은 그래서 시장구조와 국제 시황의 합작품이다. 그냥 업황이 좋아서 낸 이득인데, 횡재라고 부를 수는 있겠지만 과연 폭리라고 비난하는 것이 온당할까.

정유사 프리미엄은 의심을 살만하지만, 국내 정유사 간 경쟁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담합 같은 범죄행위가 없는 한 프리미엄을 통해 과도하게 폭리를 취하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시장경제에서 적정 프리미엄은 얼마인지, 과연 어느 수준을 ‘폭리’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 보인다.

어찌 되었든 고유가는 우리 국민 생활 전반에 고통을 안겨준다. 이런 고통과 불만에 귀 기울이고 정책에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정치권의 숙명이자 의무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합리적인 숙고나 논의보다 불만만을 달래주는데 급급한 포플리즘적 접근에 매몰되는 것에 대한 세심한 주의와 경각심이 필요해 보인다.

 

※외부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