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 일정이 지난해부터 계속 밀려 내년으로 예정된 서울의 한 재건축 단지 이야기다. 해당 단지 분양을 기다리는 수요자들은 도무지 답답할 노릇이다. 올 상반기에는 유독 분양이 지연된 단지가 많았다. 적정 분양가를 산정하지 못해 조합과 시공사간 갈등 탓에 분양이 미뤄지거나 시장 침체기에 몸을 사리기 위해 분양을 연기하는 단지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이달부터 연말까지 분양이 예고된 물량은 약 16만가구에 달한다. 올해 아파트 분양 예상 실적의 40%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이 물량이 실제 분양까지 이어진다면 지난해 같은 기간 분양실적보다 약 5000여가구 더 많은 물량이다.
하지만 부동산업계에서는 이 물량이 실제 분양까지 이어지긴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분위기다. 분양이 계속 미뤄지고 있어서다. 실제로 지난 8월까지 분양을 마칠 예정이었던 서울 송파구 문정동 ‘힐스테이트e편한세상문정’, 경기 광명시 광명동 ‘광명1R구역’,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휘경3구역’ 등이 모두 10월로 분양 일정을 연기했다. 이러한 추세라면 9월 물량은 10월로, 10월 물량은 연말 또는 내년으로 순차적으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분양 일정이 지연되면 분양가는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레미콘 가격 상승 등 건축비가 오르고 있어 분양가 상승 폭을 키울 수 있어서다. 분양을 손꼽아 기다리던 수요자 입장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금 마련에 대한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높다.
대구 등 일부 지역에 국한됐던 미분양 사태가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도 분양 지연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다. 지난 7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총 3만1284가구로 전월 대비 12.1%(3374가구) 증가했다.
이에 건설사들은 분양가를 높이지도 낮추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 상태다. 주택 가격 하락기에 분양가를 높일 경우 시장 가격과의 차이가 줄어들기 때문에 미분양이 늘어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선뜻 분양가를 낮출 수도 없다. 건축비 상승분을 반영해야 하는 데다 분양가를 낮출 경우 조합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어서다.
이렇듯 요즘 분양 시장에서는 내 집 마련 수요자도, 공급자도 활짝 웃지 못하고 있지만 정부는 통계 수치만 보고 ‘집값 하향 안정화’와 ‘시장 정상화’로 접어들고 있다며 자화자찬하고 있다. 지금은 칭찬만 할 때가 아니라 시장을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면서 정책을 다듬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