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컵에 커피가 담겨 있는 모습. 사진=에너지경제DB |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음료 판매 가격에 자원순환보증금을 포함하고, 사용한 일회용 컵을 반납할 시 보증금을 반환하는 제도이다.
환경부는 오는 12월 2일부터 제주특별자치도와 세종특별자치시에 한해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선도 운영한다고 지난 22일 발표했다. 핵심은 보증금액과 제도 적용 대상은 기존대로 각각 300원, 가맹점 100개 이상을 둔 프랜차이즈 업체로 유지하되, 당분간 브랜드별 컵 반납만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소비자들의 일회용컵 반납률을 높이기 위해 연내에 무인회수기 50대를 배치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보증금제 적용 매장에는 라벨비(개당 6원99전)와 보증금 카드수수료(개당 3원), 표준용기 처리지원금(개당 4원) 등 제도 이행에 드는 비용을 지급하기로 했다. 라벨 부착을 위한 ‘라벨 디스펜서’와 일회용컵 간이 회수지원기 구매도 지원한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6월 시행 예정이었던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업계의 반발로 6개월 유예됐다. 당초 환경부는 지난 6월부터 전국 3만8000여개 매장을 대상으로 제도를 전면 시행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상황과 소상공인들의 경영 부담으로 12월 1일까지 제도 시행을 연기했다.
문제는 6개월 간 유예 기간에도 정부가 시행 규모를 기존 계획보다 대폭 축소하면서 ‘사실상 정책 후퇴’라는 논란이 일고 있는 점이다.
환경부는 "선도 지역에서의 성과를 보고 제도 확대 이행 계획안을 마련해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재검토 여지를 남겼지만 업계의 반응은 냉랭한 편이다. 정부가 아무런 협상 없이 일방적 결정을 내렸으며, 이미 다회용컵 사용 제도로 일회용컵 감축이 활발한 제주도와 공공기관 밀집 지역인 세종시가 ‘테스트베드(시험지역)’로 적절하지 못하단 지적이다.
전국카페사장협동조합은 보도자료에서 "보증금제는 첫 회의 때부터 전국 단위를 기준으로 사각지대 없는 시행을 목표로 했지만, 환경부가 단 한 번의 논의도 없이 선도 시행을 통보했다"며 "제주도와 세종시는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실시하면 표본결과가 좋게 나올 수밖에 없는 지역으로 선도 시행 지역에 부적합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정부 지원책이 업계의 현실적 고충을 아우르지 못한 ‘언 발의 오줌누기식’ 조치라는 의견도 나온다.
한 프랜차이즈 카페업계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일 처리하는 건 현장 인력인데 정부 지원책이 이들의 업무 부담을 완화할 정도로 충분한지 모르겠다"며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점심시간 같은 바쁜 근무 시간에는 안 봐도 비디오"라며 일갈했다.
환경단체도 이번 정부 발표가 사실상 ‘두 번째 유예’라고 규탄하며 조속한 제도 대상 업체, 지역 확대를 촉구했다.
녹색연합·녹색소비자연대·환경운동연합·여성환경연대 등 환경단체들은 23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이미 현행법을 위반해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일을 지키지 않았다. 행정부 입맛대로 제도 시행을 유예했다. 대상 지역도 임의로 결정한 것은 초법적인 행정 권력"이라며 "윤석열 정부는 일회용컵 보증금제 전면 시행하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선도 운영 성과에 따라 추후 보증금제 존폐가 좌우되는 만큼 정부와 업계 전반의 노력은 물론, 보다 명확한 재활용 체계와 이행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신우용 서울환경연합 사무처장은 "보증금제는 기본적으로 시민들의 참여 의지가 높기 때문에 규제를 더 이상 완화할 필요 없다"며 "성공적인 제도 이행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플라스틱 소비와 유통, 재활용 체계를 확립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전했다.
홍수열 자원순환경제연구소장은 "제도 대상 지역 및 업체 확대 시기 등 구체적 일정이 누락돼 불안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시범 사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해 빠른 시일 내 전국 단위의 로드맵을 내놔야한다"고 피력했다.
이어 홍 소장은 "일회용컵 처리 비용을 가맹점에 전가해 점주가 보증금제에 저항하도록 만드는 것은 친환경 경영과 거리가 멀다"며 "본사 차원에서 추가적인 지원을 통해 가맹점주를 설득하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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