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 추진과정에서 정부가 법률 자문을 조작하고 이를 은폐한 사실이 확인됐다. 특히 2017년 당시 적법하게 추진되던 원전의 중단 및 취소가 위법 소지가 있다는 법률 자문을 받고도 강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4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한무경 의원(국민의힘)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산업부는 2017년부터 2022년 9월 현재까지 원전 정책과 관련해 정부법무공단으로부터 10차례에 걸쳐 법률 자문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 산업부, 文 정부때는 탈원전 7건 자문 vs 尹 정부때는 탈원전 폐지 3건 자문
산업부 원전산업정책과는 문재인 정부 시절 탈원전 추진 관련 총 7건의 법률자문을 받았다. 2017년 신고리5,6 공사 일시 중단 관련 4건, 2019년 천지1,2 및 대진1,2 등 신규 원전 취소 관련 1건, 2020년 신한울3,4 건설 중단 관련 1건, 2021년 원전 중단, 취소 따른 손해배상 관련 1건 등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산업부는 탈원전 폐지를 공약으로 내건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되자 정부 출범 전부터 신한울3,4 건설 재개 관련 총 3건의 법률 자문을 받았다.
◇ 산업부, 원전자문내역 고의로 국회에 제출않다가 뒤늦게 제출, 일부는 삭제
산업부는 법률 자문 내역을 국회에 제출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사실을 의도적으로 누락하거나 일부 문서는 삭제돼 현재 보관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 의원실은 지난 8월 말부터 산업부에 법률 자문 내역을 두 차례 요청했으나 산업부는 원전 관련 내역은 제외한 채 제출했다. 이후 한 의원실은 정부법무공단으로부터 산업부 자문 내역을 직접 제출받은 뒤 원전 관련 10건의 자문 내역이 누락된 사실을 확인했다.
지난 9월 말, 한 의원실은 산업부를 직접 찾아가 누락 제출 경위에 대해 조사했다. 조사 결과 산업부는 한 의원실 방문 전 원전 관련 자문 내역이 누락 제출된 사실을 알고도 국회에 추가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조사 과정에서 총 10건 중 신고리 5?6호기 공사 일시 중단 관련 2건은 삭제돼 산업부가 보관하지 않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 동일 날짜, 동일 문서번호로 자문 결과 수정하고 최초 문건은 삭제, 신고리 5·6 일시 공사중단 권고 시 ‘에너지위원회 심의절차’ 빠진 채 재수정
2017년 6월 문재인 전 대통령이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탈원전을 선언한 뒤 2017년 7월 정부는 공론화를 위해 신고리 5, 6호기 공사를 일시 중단했다. 당시 산업부는 한국수력원자력에 공사 일시 중단을 권고하고 공론화 결과에 따라 건설 재개 및 취소를 결정하기로 했다.
산업부 원전산업정책과는 2017년 6월 말 정부법무공단에 신고리 5?6호기의 공사 일시 중단 권고 주체 및 절차 등과 관련해 자문을 의뢰했다. 7월에는 한수원의 모회사인 한전 주주들이 공사 중단을 의결한 한수원 이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지 자문을 요청했다.
이처럼 산업부는 신고리 5?6호기 관련 두 건의 법률 자문을 요청했는데 동일한 날짜와 제목으로 각각 두 건씩 총 네 건의 자문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산업부는 이 중 최종 자문결과 보고서만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 의원실이 이 중 2017년에 산업부가 국회에 제출됐던 법률자문 보고서 1건을 입수하여 대조한 결과 법률 자문 결과가 일부 수정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초 정부법무공단은 신고리 5,6호기 공사 일시 중단은 "산업부가 에너지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권고할 수 있다"고 자문했는데, 이후 "위원회 심의 없이 산업부가 바로 권고할 수 있다"고 자문 결과가 수정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두 문건의 작성일자와 문서번호는 동일하게 작성됐는데, 산업부는 이 중 ‘에너지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작성된 문건은 보관하고 있지 않다. 실제 산업부는 공단으로부터 두 차례 자문 결과를 받은 2017년 6월 29일, 한수원에 에너지위원회 심의 없이 바로 공문을 발송했다.
결국 산업부가 에너지위원회 심의를 거쳐 공사를 일시 중단하도록 한 최초 자문 결과를 의도적으로 은폐하려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또한 한전 주주의 한수원 이사 상대 손해배상 청구 자문 두 건 중 사라진 한 건도 산업부가 수정 사실을 숨기기 위해 고의로 삭제한 것으로 의심된다.
◇ 산업부, 탈원전강행 위법 자문받고도 신규원전 취소, 자문사실 은폐하다 발각
한편 산업부는 2017년 말 탈원전 정책 방침을 결정할 당시 외부 법률자문을 통해 위법성을 인지하고도 탈원전을 강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산업부는 문 전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 직후인 2017년 10월 탈원전 로드맵을 공식 발표했다. 당시 로드맵에는 신한울3?4호기와 천지1?2호기 등 6기의 신규 원전 건설계획을 백지화하고 월성1호기를 조기 폐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2017년 9월 산업부는 법무법인 바른 및 엘프스 법률사무소 등에 이미 인허가 등의 절차를 거쳐 추진되던 신규 원전들을 취소?철회하는 처분 행위가 적법한지 법률 자문을 의뢰했다.
그 결과 "대통령의 정책 변경 이외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사건의 경우에는 (기존 건설추진 중이던) 행정행위를 철회할 사정변경이 있다고 인정받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고 자문했다.
결국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만으로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 추진되던 원전을 철회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중단 및 가동 운영 중인 월성 1호기의 폐쇄는 법적 타당성이 결여된다고 자문했다.
산업부는 국회의 자료제출 요청에도 해당 자문내역 사실을 일체 공개하지 않다가 한 의원실의 확인 과정에서 뒤늦게 시인하고 관련 문건을 제출했다.
◇ 산업부, 2021년 원본문건이라 주장했다가 2022년 9월에 받은 사실 확인 돼
한편 산업부의 은폐 시도를 의심한 한 의원실에서 원전산업정책과 담당자 컴퓨터에 저장된 원본 파일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거짓 증언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담당 공무원은 2021년 신한울 3?4호기 공사 중단 관련 자문받은 문건 파일을 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원본 파일이라고 주장했지만, 파일의 수정일시를 확인한 결과 자문 받은 2021년 2월이 아닌 2022년 9월이었다.
◇기록물 무단 폐기는 중범죄에 해당... 사법수사·국정조사 요구 봇물 전망
공공기록물관리법에 따르면 기록물을 무단 폐기하는 행위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현재 탈원전 정책과 관련해 감사원 감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위법 사실 의혹이 제기되면서 향후 사법당국의 수사는 물론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 요구까지 제기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한무경 의원은 "원전을 핵폭탄이라고 인식한 문재인 대통령의 잘못된 정치 이념에서 시작된 탈원전 정책 추진의 위법성이 확인됐다"며 "법령을 준수해야 할 공무원이 정권의 등쌀에 못 이겨 법률자문 자료를 조작, 은폐하려 한 것은 심각한 국기문란 행위로 국정조사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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