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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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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초고령 사회와 ‘디지털 헬스케어’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1.25 10:26

방준석 숙명여자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대한약국학회 회장

방준석 숙대 약대 교수

▲방준석 숙명여자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대한약국학회 회장

도시철도 전동차 한 칸의 54개 좌석 중에서 노약자 지정석을 현재 12개에서 24개로 늘려야 하고, 연간 무임수송 손실비용이 6200억원에서 1조2000억원으로 불과 10년 안에 2배로 불어날 판이다. 우리나라는 고령화, 저출산, 저성장이란 위기에 직면했고, 2021년 기준으로 65세이상 고령자 수는 800만명을 넘었는데 베이비 부머 세대가 매년 80만명씩 65세 이상이 되므로 불과 10년 뒤에는 지금의 두 배인 1600만명의 초고령사회가 될 전망이다.

노인에게는 건강유지와 노후자금이라는 두가지 버팀목이 매우 중요한데,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은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가 평균치의 4배나 된다. 고령층을 위한 우리나라의 사회적 안전장치는 사회복지, 연금, 보험이 있지만, 실제로는 유교전통에 따른 ‘가족돌봄’이 수세기 동안 유지되다가 지금은 요양원또는 요양병원 같은 ‘집단돌봄’이 대세이고, 가까운 미래에는 ‘지역사회 통합돌봄(Community Care)’으로 바꾸려고 정부가 발벗고 나섰다. 초고령화 사회의 사회적 안전장치와 돌봄체계를 강화하기 위한 합리적 대안인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를 확산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인프라, 제도적 인프라와 더불어 사회적 합의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첫째, 우리나라의 기술 인프라는 비교적 양호하다.

폭증하는 의료비를 줄이고자 선진국들은 디지털 신기술을 적극 활용 중이다. 왜냐하면 ‘4P’(예방·예측·맞춤·참여)로 요약되는 미래의료패러다임을 앞당길 동력을 제공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의료데이터의 수집,분석기술과 디지털치료제(DTx), 전자약(electroceuticals)등은 맞춤형 정밀의료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여기에 웨어러블 센서가 활용되어 언제 어디서나 환자 모니터링이 가능해지면 막대한 의료비가 요구되는 만성질환관리에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이다. 디지털 기술이 한정된 의료자원을 대체하고, 의료접근성을 높이며, 비용은 낮춰줄 것이라 기대되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디지털 신기술과 벤처기업이 탄생하고 있다. 한국디지털헬스산업협회는 미국과 한국의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격차를 2년 이내라고 분석한 바 있다.

둘째, 우리나라의 제도와 법률 인프라는 전반적으로 미흡하다.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은 규제의 회색지대가 많아서 사업불확실성도 높은 편이다. 개인정보법과 상충되므로 서비스의 근간인 보건의료데이터에 대한 접근성도 제약이 많다. 의료인공지능이나 디지털치료제, 전자약에 대한 의료보험 수가체계는 아직 없기에 판로개척도 어렵고, 개발생산국 안에서 판매실적이 없으니 세계시장으로 진출도 언감생심이다.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모델이 성공하려면 의료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어야 지속가능성이 높다. 임상시험을 거쳐 판매허가를 받더라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요양급여대상·비급여대상 여부확인,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신의료 기술평가를 받는데 1년 이상이 추가로 소요된다. 기술전환이 빠른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는 시장진입이 늦어질수록 경쟁력이 떨어진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수천개의 기술과 벤처기업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지만 이중 70%는 국내 환경에서 상용화가 불가능한 사업모델이라 하고 결국 대부분의 기업은 개발난이도가 높은 의료수가 지급형보다 회원 수에 의존하는 광고수익형 사업모델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셋째, 본격적인 디지털 헬스케어를 위한 사회적 합의는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다양한 기술과 제도와 기득권의 충돌지점이 많아지면서 주요 이해당사자인 의약계의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갈등사항이 원만히 조율되지 못하면 아무리 발전된 기술을 보유하더라도 제도화가 요원하거나 임시방편을 선택하기 쉽다.

소비자는 편리와 혜택을 중시하고, 기업은 시장과 기술을 중시하며, 정부는 제도와 비용을 중시하고, 보건의료전문인은 기득권과 이익을 중시하는 경향이 짙다. 이런 복잡한 ‘4원 8차 방정식’을 어찌 풀어야 할까.

일단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발전에 기여할 규제혁신과 지원정책이 적극 추진되고 있다. ‘디지털헬스케어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도 발의됐다. 독일과 프랑스가 도입했던 ‘혁신수가 모델’ 도입도 검토중이다. 이는 새로운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이 등장하면 일단 시범수가 적용 후 1년 간 시장에서 안전성, 효능, 경제성을 증명하여 정식등재 여부를 결정하자는 것으로써 혁신성을 증명할 시간을 제공하는 등 혁신 선도자에게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뜻이다.

올해는 정부가 변화를 주도하려 더욱 선제적으로 활동할 것으로 예견된다. 고령화 시대의 사회적 안전망 강화와 더불어 저성장 시대를 타개할 신산업 육성이란 공공의 이익과, 시장의 목소리 곧 국민의 요구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기 위하여 다양한 이익집단과 이해당사자들이 노력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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