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9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자택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
[에너지경제신문 오세영·윤수현 기자] 헌법재판소가 ‘헌정사 첫 국무위원 파면’이라는 역사를 남길지 주목된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운명이 결정되기까지 헌재의 판결만 남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행정부 고위직이나 판사 등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탄핵 심판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대상자가 파면될 만큼 중대한 법 위반 사안이 있느냐’다.
12일 정치·법률 전문가들은 "헌재에서 이상민 장관의 탄핵안이 인용되려면 결국 ‘파면될 만큼 중대한 법 위반’인 지를 가려내야 한다"며 "정치가 아닌 법리적으로 해석할 때 기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 장관의 탄핵안이 국회 문턱을 넘어 헌재에 도착했지만 △탄핵재판에서 검사 역할을 맡게 될 국회 탄핵소추위원회 구성 △퇴임으로 자리가 비는 헌법재판관 구성 △이와 맞물릴 심리 기간 연장 여부 등이 판결 변수로 남아있다.
◇ 이상민 장관, ‘이태원 참사’ 책임 결국 탄핵 도마까지
이상민 장관은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뒤 야당과 국민들로부터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는 요구를 받아왔다.
민주당은 지난해 11월 국회에 이 장관 해임 건의안을 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이를 거부했다. 이후 민주당, 정의당, 기본소득당 등 야 3당 국회의원 총 173명은 이상민 장관의 탄핵 소추를 추진했다.
김승원 민주당 의원은 이 장관의 탄핵 사유를 두고 "이 장관에 재난 및 안전관리 사무를 총괄·조정해야 할 책임이 있고 다중밀집사고가 충분히 예견됨에도 사전 관리감독 의무를 소홀히 하는 등 사전 재난예방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헌법 34조 6항, 재난안전법 제4조, 제22조, 제23조 등을 위반했다"고 말했다.
또 "참사 발생사실을 인지했음에도 대통령 지시조차 제 때 이행하지 않은 채 재난대책본부를 적시에 가동하지 않고 수습본부를 설치하지 않았다"며 "참사 보고를 받고도 자택에서 관용차를 기다리다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뒤 구체적인 지시나 조치 없이 떠나 사후 재난대응조치 의무를 위반했다"며 "재난안전법 14조, 15조, 15조의 2, 18조 등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장관이 국회 국정조사에서 ‘유족 명단이 없었다’고 주장, 여러 차례 거짓 진술을 해 고발되는 등 헌법과 국가공무원법 56조를 위반했다"고 비판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지난 8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소추안 통과를 선포하고 있다. 연합뉴스 |
◇ 여야, 법리해석 엇갈려…탄핵소추위 구성도 변수
탄핵 재판의 쟁점은 그 대상자가 파면될 만큼 ‘중대한 헌법·법률 위반’ 사유가 있느냐다. 이를 두고 여야 간 법리 해석이 심하게 엇갈리고 있다.
야 3당은 이 장관의 탄핵 사유로 재난 예방·대응과 관련한 헌법·법률 위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을 들었다. 이 장관이 이태원 참사 대응 과정에서 재난·안전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중대한 법률과 헌법 위반 사유가 없다며 탄핵안이 헌재에서 기각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은 "헌법이 정한 탄핵 요건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며 "대한민국 역사상 국무위원 탄핵소추안은 단 한 차례도 가결된 적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헌재가 기각·인용·각하 등 판결을 내기 위해서는 ‘참사 대응에 성실하지 못했다는 점이 과연 파면할 만큼 중대한 법 위반인가’에 대한 쟁점을 푸는 게 우선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에도 재판부는 법 위반을 인정하면서도 ‘파면을 해야 할 정도로 중대한 법률 위반’은 아니라며 기각한 바 있다.
탄핵소추위원회 구성도 변수다. 국회 탄핵소추위원회는 헌법 재판에서 검사 역할을 맡는다.
법에 따라 탄핵소추위원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김도읍 국민의힘(부산 북구강서구을) 의원이다. 이 장관의 탄핵을 반대하는 여당 의원이 재판에서 국회를 대표해 탄핵 필요성을 주장해야 하는 셈이다.
국민의힘은 당 차원에서 이 장관 탄핵에 반대하고 있는 만큼 김도읍 위원장도 같은 입장일 수 밖에 없다. 또 탄핵소추위원회를 구성하는 권한은 탄핵소추위원장이 가진다.
앞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 소추위원단은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민주당, 국민의당에서 의원 3명씩 모두 9명으로 구성됐다.
◇ 재판관 9명 中 2명 퇴임 앞둬…임명 절차 등 심리기간 변수되나
헌재는 이 장관의 탄핵소추안을 접수받은 뒤 곧바로 심리 절차에 돌입했다.
앞으로 헌재는 변론기일을 열어 이 장관과 탄핵소추위 양 측에 의견 진술 기회를 부여하고 별도의 신문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변론이 끝나면 최후 의견 진술을 한 뒤 이 장관의 파면 여부를 인용·기각·각하 등으로 결정한다.
다만 헌법재판소에도 변수가 있다. 재판관 가운데 2명이 퇴임을 앞두고 있으며 재판관 구성 변경에 따라 심리기간이 규정보다 길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대법원장 지명으로 재판관에 오른 이선애와 이석태 재판관이 오는 3∼4월 퇴임을 앞두고 있다. 후임 재판관 임명에는 국회 청문회 절차 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
이 장관의 경우 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7명 이상 출석해 6명 이상 찬성하면 탄핵이 인용돼 파면된다. 반대가 4표 이상 나오면 탄핵안은 기각된다. 탄핵소추에 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재판관이 5명 이상일 경우에는 각하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에는 헌재소장 임기가 다 해 8명의 재판관이 재판을 진행하기도 했다.
재판관 구성이 늦어질 경우 심리 기간도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7명의 재판관이 심리를 진행한 뒤 결론을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심리 절차 진행과 달리 판결에 대해서는 9명 재판관 구성을 완료한 뒤 내릴 수도 있다.
헌재는 접수일로부터 최장 180일 내에 결론을 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다만 훈시 규정이기 때문에 불가피한 경우 심리 기간이 180일을 넘길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64일) 때와 박근혜 전 대통령(92일) 때는 심리 기간이 100일을 넘지 않았다. 다만 최근 탄핵안이 넘겨진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경우 약 8개월(267일) 동안 진행된 심리에 걸쳐 각하로 판결이 났다.
▲정성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이 지난 9일 오전 헌법재판소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 소추 의결서를 제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
◇ 법률 전문가 "파면 수준의 법 위반인지 따져야…헌재 결과 ‘기각’ 유력"
헌재가 ‘인용’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결국 탄핵 대상자가 중대한 법률 위반에 해당하는 사안이 있는지가 중요하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 장관의 법 위반 사안이 명확하지 않아 헌재가 탄핵소추안을 인용할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이 장관이 중대한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입증하기 쉽지 않을 거라는 이유에서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대부분의 법률 전문가들은 기각을 예상할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탄핵 제도는 법적 책임을 따지지 정치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노 전 대통령 탄핵소추 관련 판결문 역시 기각이라는 결정과 그에 대한 직접적 이유 외에 기타 내용까지 탄핵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고 배제를 했었고 이 장관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를 적용시킬 수밖에 없다"며 "현재 나온 탄핵 소추안의 내용으로는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한 행위가 무엇인지 따지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헌법으로 보면 이번 이태원 참사에 대해 행안부 장관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법률적으로 따져보면 행안부에만 책임이 있다고 볼 게 아니라 전체 공무원들이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다. 크게 보면 국회에도 책임이 있고 무한정으로 책임을 미룰 수 있게 된다"고 꼬집었다.
정계에서는 헌재 심리가 끝나면 오히려 탄핵을 주도한 민주당에 ‘역풍’이 불어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민주당이 ‘역풍’ 우려를 알고 있음에도 탄핵 소추를 강행한 이유에 대해 ‘이재명 대표 사법리스크에 대한 맞불 카드’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박상병 정치평론가(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검찰이 이재명 대표를 향해 전방위적으로 압박하는 상황인 만큼 민주당은 단일대오를 보여주는 ‘맞불작전’을 먼저 놓은 것"이라며 "당내에서 단합과 협력 의지를 한 군데 모으고자 이 장관 탄핵소추안 가결이라는 강공책을 펼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요구를 포함해 지지자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지지 기반을 확보하려면 강경한 태도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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