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사진)에서 전체 낸드플래시 생산량 40% 규모를 생산하고 있다. |
[에너지경제신문 이진솔 기자] 미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에서 일정 기술 수준을 넘어서는 반도체를 생산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시사하면서 국내와 더불어 중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해온 K반도체에 경고등이 켜졌다. 업계는 현재 1년으로 설정한 규제 유예 조치를 연장하는 방안을 미국 측에 제안할 계획이지만, 최악의 경우 이미 수조원이 투입된 중국 생산 기지를 사실상 방치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는데 입을 모으고 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앨런 에스테베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 차관은 지난 23일 "(중국에서) 기업들이 생산할 수 있는 반도체 수준에 한도를 둘 가능성이 크다"며 "지금 기업들이 어떤 단의 낸드를 생산하고 있다면 그 범위의 어느 수준에서 멈추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1년 유예를 열어둔 대중 반도체 수출통제 조치 이후를 묻는 말에 내놓은 답이다.
미국이 염두에 둔 첨단 반도체는 초고층 낸드플래시다. 반도체 업계는 마케팅 차원에서 기술력을 강조하기 위해 적층 능력을 강조한다. 낸드플래시는 3차원(3D)으로 칩을 쌓아 올려 저장공간을 극대화하는 단수 경쟁이 치열하다. 현재 낸드플래시 단수는 200단을 돌파했다.
지난해 10월 미 상무부는 중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에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지 못하는 규제를 발표했다. 128단이 넘는 낸드플래시를 생산하려면 미국으로부터 별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국 공장에는 1년 동안 장비 수입을 포괄적으로 허용하는 유예를 뒀다. 에스테베스 차관 발언은 해당 조치가 끝나는 시점부터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에 다시 한도를 두겠다는 의미다.
규제가 부활하면 우리 기업은 직격탄을 피하기 어렵다. 삼성전자는 시안 공장에서 낸드플래시 약 40%를 생산한다. SK하이닉스는 우시 공장에서 D램 절반 정도를 만들고 있다. 지난해 인텔에서 인수한 다롄 공장은 차세대 낸드플래시 생산 기지로 육성할 계획이었지만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업계는 중국 공장에 꾸준한 공정 개선과 생산 능력 확대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경쟁력이 급락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수익성이 높은 첨단 제품으로 공정 전환이 이뤄지지 못하면 고정비가 높은 반도체 산업 특성상 비용 부담이 많이 늘어난다"며 "이러한 흐름이 장기화하면 공장이 결국은 고물이 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미국이 최근 자국 내 반도체 투자로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중국에 신규 투자를 하지 못하도록 막는 반도체지원법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을 꺼내 들면서 긴장감이 증폭되고 있다.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총 390억달러를 지급한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에서 생산능력을 확대하지 않겠다고 미국 상무부와 협약을 체결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 반도체 공장을 원활하게 운영하면서 미국 반도체지원법의 보조금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업계는 1년 유예 조치를 연장하는데 사활을 걸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규제 유예 조치가 사라져도 당장의 피해가 크진 않지만, 장기화할 경우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점이 문제"라며 "최악의 경우 ‘탈중국’을 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아 외교적 해결 방법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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