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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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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독일의 탈원전은 정치적 산물,롤모델 될 수 없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5.09 08:28

박주헌 동덕여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박주헌교수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지난 4월16일 유럽에서는 미래 에너지믹스 방향 설정을 놓고 완전히 상반된 정책이 충돌했다. 독일은 이날 0시를 기해 모든 원자로를 정지시키고 62년간의 원자력 시대를 종식하는 완전 탈원전 실험에 돌입했다. 몇 시간 뒤 핀란드는 탈 원전 논란의 종지부를 찍고 유럽 최대 규모의 올킬루오토 신규 원전 3호기 가동을 시작하며 복원전에 나섰다. 이번 탈원전과 복원전의 성패는 향후 에너지전환, 기후변화, 에너지안보에 대한 논의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 미래 에너지믹스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탈원전과 복원전은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안보 증진 수단으로서 원전의 역할과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견해차이에서 비롯된다. 탈원전은 원자력의 안전성에 대한 회의적 시각에 기초해 원전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함으로써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안보에 기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비해 복원전은 원자력의 과학적 안정성과 기술적 통제 가능성을 인정하고, 지구온난화 물질인 이산화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으면서도 안정적 공급이 가능한 원전이야말로 기후변화 방지와 각국의 에너지안보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불가피한 에너지라는 주장이다. 양쪽 주장 모두 나름의 근거가 있으며 각 주장의 합리성과 현실성은 현재 인류가 처한 도전과 각국의 사정에 맞춰 상대적으로 평가돼야 한다.

기후변화 방지와 안전을 명분 삼은 독일의 탈원전 실험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상대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 비중이 월등히 높은 갈탄의 퇴출보다 탈원전을 앞세웠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갈탄은 거의 유일한 국산 에너지로 탈석탄은 격렬한 정치적 저항에 부딪인 데 비해 녹색당의 연정 참여 조건으로 채택된 탈원전에 대한 정치적 저항은 높지 않았다. 결국 독일의 탈원전은 안전과 기후변화 방지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흥정의 결과물로 볼 수도 있다. 진짜 안전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면 결코 탈석탄에 앞서 탈원전을 추진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독일의 연간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9.12톤으로 원전 비중이 높은 프랑스의 5.19톤보다 훨씬 많다.

독일의 탈원전은 세계 에너지시장의 불안정성을 가중시킬 수 있다. 탈원전으로 인한 발전 공백을 재생에너지로 채우겠다는 계획이지만, 1년 내내 전기를 생산하는 기저 전원인 원전을 태양과 바람에 의존하는 재생에너지로 대체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원전 감소는 곧 화석에너지 소비 증가로 이어진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경험칙이다. 독일에서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비중을 줄이자 바로 석탄발전이 증가했던 경험이 하나의 증거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원전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면 석탄, 가스 수요의 변동성도 덩달아 높아져 세계 에너지시장의 불안정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2021년 말 북해 풍력발전이 감소하자 독일의 석탄발전이 즉각 증가하면서 석탄 가격이 폭등했던 것과 같은 유사한 사건이 앞으로 더 큰 폭으로 더 자주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독일의 탈원전은 EU 차원에서는 평가되어야 한다. EU는 국가 간 전력망이 그물처럼 연결돼 있어 전력 수급 차원에서는 거의 단일 국가와 같다. 독일의 탈원전과 별개로 프랑스, 벨기에, 폴란드, 체코 등 많은 국가가 속속 복원전으로 돌아서고, 독일은 프랑스에서 부족한 전력을 계속 수입한다. 독일 탈원전은 EU 차원에서 큰 변화가 아닌 이유다. 충청도에 원전이 없다고 우리나라가 탈원전 국가가 되지 않는 것과 같다. 독일의 탈원전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우리나라는 독일처럼 인접 국가와 연결된 전력망을 갖고 있지 않고 유럽에 비해 재생에너지 잠재력도 크지 않다 그렇다고 독일의 갈탄처럼 마땅한 국산에너지도 없다. 현실적으로 원전 말고는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수급 안정·에너지안보의 세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용빼는 재주는 없다. 독일의 탈원전은 결코 우리의 롤 모델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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