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자 카이스트 이사장이 지난 30일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유병욱 기자 |
"액설러레이터만 달린 차는 없습니다. 브레이크가 있어야 합니다. 경제가 죽으면 다른 것은 다 뒷전으로 밀립니다. 경제도 살고 환경도 사는 길을 지혜롭게 찾아야 합니다."
김명자(78) 한국과학기술대학(카이스트) 신임 이사장(전 환경부 장관)은 오는 5일 세계환경의날과 9일 취임 한 달을 맞아 지난달 30일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현재 기후환경 정책 방향에 대해 이같은 견해를 밝혔다.
김 이사장은 역대 최장수 여성 장관 보유자이자 가장 오래 재직한 환경부 장관으로서 환경정책이 경제와 함께 가야할 것임을 강조했다. 자동차에 적절한 브레이크가 있어야 제대로 된 운전을 할 수 있듯이 환경정책이 규제만 하는 게 아니라 산업도 육성하는 부처가 돼야 한다는 의미다. 환경 규제와 경제 성장은 결코 양립할 수 없거나 충돌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환경부를 비롯한 ‘모든 부처의 산업부화’를 강조하면서 환경부의 정체성 논란이 일고 있는 점에 대해서 김 이사장은 오히려 시대에 맞는 변화라고 설명했다.
김 이사장은 숙명여대·명지대·카이스트 등의 교수로 활동한 여성 과학자로서 정치, 행정, 산업, 민간 시민사회 등에서 두루 맹활약했다.
1974년 숙명여대 화학과 교수로 시작해 1999년 김대중 정부 시절 3년 8개월 넘게 환경부 장관을 지냈고 2004년 비례대표로 17대 국회의원도 역임했다. 그는 저탄소녹색성장국민포럼 공동의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환경한림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두산·효성 등에서 사외이사로도 활동했다.
하지만 김 이사장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과학자의 신념을 중요시했다.
원로 과학자인 그는 김영삼 정부 이후 역대 정부에서 줄곧 과학기술 등 정책에 대해 대통령 자문을 맡아왔다.
특히 김대중 정부 환경부 장관을 지낸 뒤 노무현 정부에선 대통령자문기구인 정책기획위원회 및 국민경제자문회의, 대통령 직속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위원으로 각각 활동했다.
환경 등 진보적인 이슈를 다루고 민주당 정권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펼쳤지만 과학기술 및 지속가능발전, 국민통합 등을 위한 투철한 소신을 바탕으로 정권 상관 없이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김 이사장은 사실을 기반으로 한 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회가 이념과 정치에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과학 대신 정치가 사태를 왜곡시켜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며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신뢰와 전문성으로 복잡한 이슈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돕고 사회는 그것을 수용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밝혔다.
김 이사장은 ‘사회적 웰빙’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하며 우리 사회가 갈등과 다툼을 넘어 사회적 관계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정치가 변해 국민통합에 기여해야 한다는 점을 덧붙였다. 그는 현 정부에서는 ‘대통령직속 국민통합위원회’ 고문을 맡고 있다.
김 이사장은 현재도 언론 칼럼을 쉬지 않고 내면서 왕성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대체로 평생 한 권 쓰기도 어려운 책을 지금까지 무려 20권 넘게 발간했다. 분야도 ‘팬데믹과 문명’, ‘산업혁명으로 세계를 읽다’, ‘대전환이 파도 한국의 선택’, 과학혁명의 구조’, ‘사용후핵연료의 딜레마’, ‘인터넷바다에서 우리 아이 구하기’, ‘원자력 트릴레마’, ‘과학기술의 세계’, ‘현대사회와 과학’, ‘동서양의 과학전통과 환경운동’, ‘앞으로 50년’, ‘현대인과 비타민’, ‘여성과 사회참여’ 등 다방면에 걸쳐 있다.
김 이사장은 인터뷰 도중 "이제 손이 아파 글 쓰는 게 예전만 못하다"고 했지만 과학자답게 문명의 이기(利器)를 다루는 솜씨가 범상하지 않았다.
메일 등 인터넷이나 카카오톡 등 모바일 활용에서도 20∼30대 젊은이 못지않을 만큼 능숙한 실력을 나타냈다.
다음은 김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 "인문 소양 갖춘 과학기술 인력 양성…사회적 웰빙 중요"
- 1971년 카이스트 설립 이후 52년 만에 첫 여성 이사장으로 지난 5월 9일 취임, 한 달이 됐다.
▲ 보람 있는 일을 할 기회가 주어져서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원로 선배는 ‘마지막 사명으로 알고 유종의 미를 거두라’ 하고 후배 교수들은 ‘하던 대로 하시라’고 격려해줬다. 2016년 한국과총 회장으로 선출됐을 때는 한국과총 역사 50년 만에 최초로 여성이 회장이 됐다며 ‘유리천장을 깼다’는 제목의 언론 인터뷰가 나갔는데. 이번에는 2년이 더 늘어났다. 어깨가 무겁다.
세상살이에서 인연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는데, 카이스트와 깊은 인연이 있었다. 2008년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면서 곧바로 카이스트 초빙특훈교수(2008~2016년), 카이스트 총장자문위원(2008~2021년), 최초로 도입된 입학사정관(2009년) 등을 지냈기 때문에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 든다. 카이스트 구성원의 의견을 계속 들으면서 어려움은 덜어주고 힘은 실어주는 울타리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최근 5개 단과대학별로 순회하면서 많은 분들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꽃다발에다가 제 얼굴 사진이 들어간 환영 케이크까지 받아 감동스런 ‘서프라이즈’였다.
- ‘괴짜 교수’로 알려진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과는 어떻게 호흡을 맞춰나갈 생각인지.
▲ 괴짜라니 아마도 ‘혁신 마인드’의 주인공이란 뜻인가 보다. 서남표 총장부터 강성모 총장, 신성철 총장까지 총장 자문위원을 했는데 이 총장과는 미래전략보고서 출간작업을 함께한 적이 있다. 이번에 이사장으로서 대화를 나누다 보니 둘 다 엄청나게 일에 대해서는 ‘성미가 급하다’는 사실을 서로 확인했다. 호흡을 맞춰나갈 걱정할 필요가 없이 뜻이 잘 맞는 것 같다.
- 카이스트 이사장으로서 구상한 카이스트의 미래 비전은 무엇인가.
▲ 이사장으로서 카이스트의 미래 비전을 별개로 설정할 필요가 없이 총장을 비롯해 카이스트 구성원들이 뜻을 모아 추진하고 있는 사업과 목표, 비전에 대체로 공감한다. 그중 특히 명실상부한 글로벌화의 구현과 융·복합 인재 양성, 융·복합 협업 연구 활성화를 위한 인프라 구축과 혁신 생태계 조성에 관심이 크다.
며칠 전 국제포럼에 참석했는데 소개를 하면서 ‘한국의 MIT, KAIST 이사장’이라고 했다.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으로서 경제안보, 기술안보, 기술외교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에서 이른바 4차 산업혁명으로 산업구조와 시장경제 모델이 질적으로 바뀌고 있다. 이 전환기에서 R&D(연구개발), 기술이전, 스타트업에 의한 상용화와 시장진입으로 국민에게 경제적, 사회적 결실을 돌아가도록 하고 경제안보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데 관심이 크다.
동시에 인문학적, 전인적 소양을 갖춘 과학기술 인력 양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계경제포럼(WEF)이 강조하듯이, 인재가 혁신, 경쟁력, 성장을 이끄는 핵심 요소가 됐고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인재 양성은 가장 중요한 동력이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시대 인재의 조건과 덕목이 달라졌다. 한 분야를 깊게 파야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과학자나 엔지니어도 이제는 협력, 창의성, 호기심, 주도성 등의 인성과 비판적 사고, 소통, 감성적 지능, 팀워크, 인지적 유연성, 복합적 문제해결 능력 등의 사회적, 감성적 학습기술을 갖출 것을 요구받는 시대가 됐다.
사실 길게 보면 과학기술 분야의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인문학적, 전인적 덕목이 보람 있게 잘 사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 카이스트 학생들도 그런 소양을 갖출 수 있는 학풍과 교육과정, 훈련 프로그램을 강조하고자 한다. 최근 우리 사회 전반의 웰빙이 위기 수준이라는 우려를 하게 되면서 이사장으로서 카이스트 학생들과 구성원들의 웰빙에 각별한 관심을 두고 있다.
- 사회적 웰빙을 이야기 했는데.
▲ 돈, 명예, 권력, 학벌도 아니고 결국 사회적 관계가 남는 거다. 그 말이 맞는 거 같다. 사회가 너무 그 역방향으로 가고 있고 혼란스럽다. 정치가 국민을 가르고 이념과 편을 갈라놓고 이야기한다. 어느 하나도 제대로 논의될 수 없다.
- 사회적 웰빙이라는 게 학술적 용어인가.
▲ 웰빙이라는 의미는 광범위해서 여러 가지 요소들을 편안하게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사회가 잘사는 게 물질적인 차원이 있는 것 만은 아니다. 정신적으로 같이 가줘야 한다. 물질만 크게 된다고 웰빙 사회가 아니다.
정치권이 너무 싸우는데 어떻게 하면 사회가 행복하게 하나로 논의했으면 좋겠다. 오랜 세월 거쳐 만들어진 제도에 필요한 것이 다 있다. 중요한 건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다.
◇ "경제·환경 윈―윈 가능…같이 살길 지혜롭게 찾아야"
- 6월 5일 유엔(UN)이 정한 세계환경의날을 맞는다.
▲ 6월 5일은 1972년 (UN)인간환경회의가 스톡홀름에서 시작된 날이고, 1972년 12월 UN 총회에서 그날을 세계환경의날로 정했다. 해마다 전 세계인에게 자연 보전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주제를 선정해 세부적 이슈에 대한 경각심을 깨우치려는 것이다. 1973년 주최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하나뿐인 지구’를 슬로건으로 열렸다. 자연생태계를 살리지 않고서는 인류문명의 미래가 없다는 것이 핵심 주제였다. 해마다 주최국이 슬로건을 내걸고 개최하는데 1997년 우리나라에서도 ‘지구상의 생명을 위해서’를 주제로 개최됐다. 경제 관련 주제는 2008년 저탄소 경제와 2012년 녹색경제가 선정됐다.
환경부에서 일하던 때 2000년 환경의날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기념식이 열리면서 김대중 대통령이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새천년국가환경비전을 발표했다. 요점은 사전예방 원칙, 선계획 후개발, 동강댐 개발 백지화, 시장경제 민주주의 기반 환경정책, 환경-경제 통합적 운영체계, 지구환경문제 주도적 참여 환경선진국이었다. 20세기 환경정책의 기틀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아 보람이 컸다.
올해 세계환경의날 주제는 ‘플라스틱 오염 퇴치’이다.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매년 4억 톤 이상인데, 그중 절반이 일회용이다. 리사이클은 10%도 안되고, 1900만~2300만 톤이 호수, 강, 바다로 흘러들어가서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미세 플라스틱은 음식, 물, 공기에도 들어있고, 플라스틱 제품에는 유해한 첨가제가 들어간다.
이번 개최국은 코트디부아르인데 네덜란드가 협력국이다. 코트디부아르는 플라스틱 오염 방지 캠페인에 앞장서서 2014년부터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하고 재사용 가능한 포장재로의 전환을 지원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신플라스틱 경제 글로벌 약속에 서명하고 플라스틱 오염과 해양 쓰레기에 관한 글로벌 파트너십 회원국이다. 현재 국제플라스틱 협약 체결을 위한 초안이 작성되고 있는 것과 때를 같이 해서 플라스틱 오염 퇴치 주제가 선정된 것이다.
- 현재의 기후변화 양상에 대한 진단과 대응 방안에 대해 듣고 싶다.
▲ 한마디로 기후변화라는 용어가 기후위기로 바뀌었다. 1980년대 앨 고어가 처음 사용한 이후 2004년 기후위기연합이 기후위기라는 용어를 공식화했다. 2019년 미국 의회는 기후위기 하원특별위원회를 설치했고, 영국의 가디언은 기후비상사태, 기후위기, 기후붕괴란 용어를 쓰면서 지구온난화를 지구열화로 쓰겠다고 선언했고, 옥스퍼드사전에는 기후위기가 ‘2019년의 단어’로 등재됐다.
기후 과학자들은 지난 10년간 기후변화의 ‘티핑 포인트’(작은 변화들이 쌓여 급격한 큰 변화로 이어지는 단계) 지표들이 위험 수위라고 진단했다. 그린란드의 빙하 소실, 북극 해빙의 면적 감소, 동토층의 해동, 북방 수림대의 화재, 대서양 해류순환의 느려짐, 아마존 우림의 잦은 가뭄, 산호초의 대규모 폐사, 남극 서부의 빙상 감소, 남극 동부의 윌키스 분지 소실이 악화일로라는 것이다.
2015년부터 우리나라 이회성 박사가 의장으로 임기를 거의 마치게 되는 IPCC(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는 이미 2014년에 21세기 말 지구가 지난 1만년 동안 겪은 것보다 더 큰 기후변화를 겪을 것이며, 생태계 붕괴, 흉작과 기근, 질병, 폭염, 해수면 상승 등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갈등의 총체적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 경고했다. 기후위기로 인해 에너지·수자원·식량은 ‘전략자원’이 된지 오래다. 국제결제은행(BIS)은 농산물·원자재 가격 급등과 공급사슬 붕괴로 금융위기가 유발되는 ‘그린스완’을 경고했다.
기온상승이 당초 예상보다 10년 빨라져 2040년까지 1.5도를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모델링에 따라 이보다 훨씬 더 상승할 것이란 예측도 있다. 그렇다면 이 정도 기온 상승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현재 지구의 연평균기온은 15도 정도인데, 2만년 전 빙하기에는 7.8도였고, 지구온난화로 공룡이 멸종된 6500만년 전의 기온은 현재보다 4도쯤 높았다.
기후행동의 실패가 초래할 파국은 막아야 한다. 문명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면서 ‘지속가능발전’이라는 명제가 등장한지 오래고 최근에는 그 절박함에서 그린뉴딜, 탄소중립(넷 제로), ESG(환경·사회·거버넌스) 등의 키워드가 급부상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가치관의 대전환이 답이 될 것이지만 이들 제도적 접근이 기후위기 대응의 사회적 티핑 포인트가 돼야 인류문명의 존속이 가능할 것이다.
- 김대중 정부 때 1999-2003년 환경부 장관을 지냈으니 벌써 20년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의 국민 인식, 시민사회 활동은 어떻게 달라졌다고 보는가
▲ 우리나라는 생태용량이 열악한 상태에서 부존자원이 없이 1970년대부터 중화학공업 중심의 산업구조로 수출 주도의 초고속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그런 배경에서 2020년, 2021년 연속 이산화탄소 배출량 순위에서 세계 10위로 기록되고 있다. 1950년대부터의 누적 배출량은 20위 안에 든다. 따라서 탄소감축에 적극 나서야 할 상황이다. 그 가운데 급격한 산업화에 따르는 환경부하가 클 수밖에 없었고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전국 단위로 쓰레기 종량제를 도입하는 노력도 했다. 국민 참여의 환경행정의 모델인 셈이다. 최근에는 이른바 MZ세대의 환경의식이 높아지고 있어 ESG의 성과를 높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 경제성장과 기후위기 대응은 서로 상충하는 측면이 많은데, 우리는 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
▲ 단기적으로는 경제와 환경이 서로 상충하는 측면이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윈-윈’(상생)이 가능하다. 이론적으로도 그렇고 실제 경제 선진국에서도 성공사례를 찾을 수 있다. 제 경험으로는 2000년에 경제-환경 상생이라는 슬로건 아래 ‘에코-2’(Ecology-Economy)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그 덕에 법적 근거에 의한 정부 부처 업무평가에서 환경부가 제1회, 2회 연속 최우수부처로 선정돼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경제가 나쁘면 강력한 규제 위주의 환경행정이 현장에서 실효를 거두기가 어렵다. 역발상을 해서 "같이 삽시다" 한 건데 의외로 전문가와 시민단체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당시 에피소드 중 하나는 해군과 대기업의 지원을 얻어 울릉도에 들어가 고장 난 전자제품을 수리하고 대형 폐기물을 수거해 온 일이 있었다. 처음 있는 일이라 주민들이 무척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최근 청년 스타트업 경연대회에서 환경운동의 대부인 최열 이사장을 만났는데, 20년 전 제가 환경부에서 일하던 때가 시민단체와의 소통이 가장 활발했던 때였다고 했다. 환경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때이기도 했다. 환경 이슈는 모두가 다 가해자이자 피해자이기 때문에 모든 경제주체가 실천적 참여를 할 때 해결의 실마리를 풀 수 있다. 따라서 소통과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
쉽지는 않지만 비용 효과적인 다양한 정책을 쓰되 기후·환경·에너지를 통합적으로 다뤄 산업 경쟁력 강화를 반영하고 에너지 수요를 통합관리하고 세부정책 추진에서 관련 주체, 즉 국민의 동참을 이끌어낼 수 있는 소통과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본다.
- 윤석열 정부에서 환경부의 정체성 관련 논란이 일고 있다. 야권과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시대를 역행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 23년 전에 경제-환경의 상생을 기치로 한 정책을 추진했던 시각에서는 시대 역행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것이 환경과 산업의 상생이라고 본다. 오늘날의 지속가능하지 않은 문명은 자원을 무한한 것으로 보는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폐기 패턴에 근원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지속가능발전이나 ESG 구현에서 핵심 분야 중 하나가 순환경제 구축이다. 탄소중립이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으로 다 해결되는 것처럼 강조하는 것은 사실과 맞지 않다. 에너지를 비롯한 자원 이용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데 답이 있다고 본다. 더욱이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연료전지는 물론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자체가 핵심광물의 확보 여부에 달려있어 광물자원 확보와 공급사슬은 경제안보의 핵심적 요소다.
이런 상황이니 부존자원이 없는 제조업 주요국으로서 우리나라는 더욱 더 리사이클링 첨단기술과 산업이 중요하다. 지난해 8월 26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제1차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저는 이 점을 강조했다. 환경부의 정체성에 대한 위의 지적은 있을 법한 일이다. 비판에 귀 기울이는 노력은 필요하다. 액설러레이터만 달린 차는 없다. 브레이크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환경행정은 환경운동과는 달리 고려해야 할 요인이 많다. 경제가 죽으면 다른 것은 다 뒷전으로 밀린다. 환경 이슈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국민을 위하는 일이 아니다. 경제도 살고 환경도 사는 길을 지혜롭게 찾아야 한다.
▲김명자 카이스트 이사장이 지난 30일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유병욱 기자 |
◇ "원자력 없이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 불가능…이념보다 과학 수용해야"
- 윤석열 정부는 지난 문재인 정부가 세운 2050 탄소중립 목표와 2030 온실가스감축목표(NDC) 등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계승하면서 그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일부 수정하는 선에서 정책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달성할 수 있는가.
▲ 매우 도전적이다. 최근 탄녹위(대통령 직속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전문가 초청 회의에서 저도 ‘용감하다’고 말했다. 2030년에 2018년 기준 40% 감축은 달성할 수 없다고 본다.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야심찬 목표를 설정했다는 데 대해서는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지난 정부의 기본계획에서 실현 가능한 대책인 원자력을 배제하고 언제 도입될지 모르는 미성숙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연구개발 성과의 상용화가 선진국에 비해 저조한 상황에서 관련 기술(수소환원제철 기술, 탄소 포집·활용·저장기술(CCUS) 등)을 어떻게 목표 달성에 기여하게 할 것인지 불확실했기 때문에 정책 신뢰가 문제가 된다고 봤다. 더욱이 제조업 비중이 높은(국내총생산 GDP의 26%) 산업구조에서 탄소중립 계획의 연평균 감축률(4.17%)이 유럽연합(EU·1.98%)보다 높다는 등 조건이 불리하다.
기본적으로 탄소 감축계획을 세우려면 아래 몇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일부터 해야 한다고 본다.
몇 가지 짚어보면, 한국은 연간 총배출량(10위권)보다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국가 순위가 더 높다. 수출과 수입을 반영한 소비 기반의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 순위와 에너지강도(GDP 단위당 에너지 소비량) 순위는 그보다 더 높다. 탄소강도(에너지 생산 단위당 이산화탄소 배출량) 역시 국가 순위가 높다. 그렇다면 주요 지수상의 취약성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마련해 국가 에너지 효율부터 높여야 할 것이다.
- 기후위기 대응 방안으로 신재생에너지 보급과 이용 확대가 꼽힌다. 하지만 신재생에너지의 한계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 여건이 불리하고 기술력과 재정 투입에서도 선진국과 격차가 있다. 따라서 어려운 과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할 수 있는 수단을 전기효율성 제고 > 태양광과 풍력 > 원자력 발전 > 탄소저장장치(CCS) > 바이오매스의 순서로 평가했다.
한국의 경우 CCUS의 기여도는 없고, 바이오매스도 마찬가지다. 전기의 효율적 이용은 에너지 요금과 에너지 세제의 왜곡으로 인해 온실가스 감축 수단으로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재생에너지의 전 주기로 볼 때 에너지저장장치(ESS)와 그리드 확대 등에서 한계가 있으므로 기술 시스템의 취약성을 보완하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정책을 구사해야 했다.
최근 3년간 재생에너지 확충에 8조원을 투입했으나, 발전량 증가는 2018년 총 발전량 중 7%에서 2020년 9%였다. 2034년에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 이상으로 높인다는 계획에 대해 산업계 현장은 비관적으로 봤다. 지난 10년간 공공연구기관의 탄소중립 관련 기술의 77%가 상용화하지 못했다. 선진국이 핵심기술을 선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후발주자가 격차를 줄이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도 마땅치 않다.
태양광, 풍력, 배터리 등의 기술혁신으로 효율을 높이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보면서, 21세기 주요 애너지원으로 수소 경제의 혁신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계수소위원회 2021년 보고서는 전 세계 228개 수소 관련 프로젝트에서 EU가 주도하면서, 호주, 일본, 한국, 중국, 미국이 뒤따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맥킨지는 2050년 글로벌 에너지 수요의 18%를 수소가 차지하면서 시장 규모가 연 2조5000억달러, 일자리는 3000만개 이상 창출될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 기업도 수소경제 글로벌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다. 현대차·SK·포스코·한화·효성 등은 42조원을 수소 생태계 구축에 투자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수소경제 생태계(생산-저장-운송-연료전지-모빌리티 등)가 규모의 경제에 도달할 수 있도록 기술 개발과 인프라 확충, 규제 합리화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 환경부 장관 출신으로 기후변화 대응에서 카이스트의 역할은 어떻게 보고 있나.
▲ 과학자로서 환경행정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자원이용의 효율화를 위한 순환경제 기술과 산업 활성화로 핵심 광물 자원을 회수하고, 플라스틱 리사이클링 등 국제협약에 적극 대응하는 기술과 산업의 선진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이런 리사이클의 첨단화도 카이스트의 연구주제가 되면 좋겠다. 또한 카이스트의 정규 학과에서 다루는 주제들 이외에 이 시대가 해결해야 할 글로벌 이슈, 즉 기후기술 등을 다루는 각종 프로그램을 잘 설계해서 큰 성과를 거둘 수 있기를 바란다.
- ‘원자력 딜레마’(원자력 르네상스의 미래 2011), ‘원자력 트릴레마’(여론·커뮤니케이션·해법의 모색 2013), ‘사용후 핵연료 딜레마’(2014)에 이어 지난 2월에는 ‘원자력, 무엇이 문제일까’를 출간했다. 이처럼 원자력 책을 시리즈로 낸 배경이 궁금하다.
▲ 원자력 책을 줄줄이 쓰게 된 배경은 핵무기 개발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했다. ‘어째서 과학자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는 안 될 핵무기를 만들었을까?’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를 피해 유럽으로부터 망명한 저명 과학자들과 미국이 배출한 노벨상 수상자들이 인류문명 자체를 위협하는 거대 프로젝트를 성사시킨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다. 1992년 ‘현대사회와 과학’에서 원자탄 개발의 에피소드를 다뤘다.
2011년 3월 12일, 빛도 냄새도 없이 후쿠시마를 정벌하고 바다 건너로 퍼져 나가는 방사능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실존적 위협’이 실체임을 느끼게 했다. 과학자로서 이 재난 사태의 본질을 살피는 것이 사회적 책임이라고 생각해서 석 달 만에 속성으로 탈고를 했다.
핵무기에 대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개발하지 말았어야 했고, 지구상에서 핵무기는 없애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이른바 ‘공포의 균형’은 20세기가 빚은 시행착오로 끝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반도는 계속 핵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국제적 관리의 무기력이 매우 우려스럽다.
원자력발전에 대해 말하면 현존하는 에너지 기술로서 에너지 부존자원이 없는 한국이 유일하게 기술 경쟁력을 가진 발전원이다. 에너지원은 모두 각각의 강점과 약점을 지니고 있다. 어느 것도 이상적인 건 없다. 지난 정부에서 탈원전 방향으로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작성한 것은 정책 실현 가능성을 훼손했을 뿐만 아니라, 30년간 전력 생산 비용 누적 손실 규모가 1067조4000억원으로 추산될 정도로 타격이 크다.
당시 한국과총 회장으로서 다른 몇 분과 함께 청와대에 원전 배제를 재고해야 한다는 탄원서를 제출했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김명자 카이스트 이사장이 지난 30일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유병욱 기자 |
- 원전 이슈를 정치나 이념이 아닌 과학으로 되돌릴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 과학 대신 정치가 사태를 왜곡시켜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은 물질적 성장과는 달리 의식 수준에서는 아직 선진국에 이르지 못했다는 반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전쟁의 폐허를 딛고 문화대국으로까지 성장한 국가와 국민의 저력을 고려하면 우리가 못할 이유는 없다. 다만 그 자부심과 역량을 집결시켜 사회운동으로 승화시키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신뢰와 전문성으로 복잡한 이슈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돕고 사회는 그것을 수용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하는데 언론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 몇 달 전까지 사외이사로서 효성 이사회 의장도 지냈고, 예전에 두산, LG 생활건강 등의 사외이사도 지내 ESG 등 기업 활동에 대한 이해도 남다른 줄로 안다.
▲ 산업혁명의 역사를 돌아보면 자본주의의 수정과정에서 나타난 기업의 생존전략이 ESG 개념이다. 시대적으로 기후위기가 유발하는 복합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살길이 막힌다는 절박한 요구가 작용하고 있고 4차 산업혁명기 기후 리스크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혁신의 가능성도 작용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 고수들이 ESG 깃발을 든 이유다.
최근 ESG가 큰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는 기후위기에서 비롯된 복합위기, 이해관계자 다양화, 시민사회 성장, 기업경쟁 심화, 사회적 책임 투자 급성장, 국제표준 형성 등의 변수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대기업과 금융권에서 ESG 위원회 설립이 잇따르는 등 관심이 높아졌다. 글로벌 시장이 ESG 등 비재무적 요소를 중시하고 ESG 정보공시를 의무화하는 등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ESG 바람은 몇 해 불다가 사그라질 이슈는 아니다. 그런데 개별 기업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이슈도 아니다. 기업에 일자리가 있고,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은 국민이 소비한다. 그러나 한국의 근대화를 이끈 산업구조와 인프라는 탄소 기반이므로 화석연료 의존 경제에서 단기간에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더욱이 제조업 비중이 높은 수출 주도 경제구조상 선진 경제권의 ESG 공시 의무화 내용과 새로운 세제 도입 등의 외풍에 대한 동향도 적시에 파악해 대응해야 한다.
그렇다면 기업의 파트너로 모든 경제주체가 함께 탄소중립·수소경제·그린뉴딜·지속가능발전·ESG 구현에 나서야 할 것이다. 민관 파트너십으로 법적·제도적·기술적 기반을 구축할 수 있도록 분야간·주체간의 통합적 접근과 모니터링·피드백이 돼야 할 것이다. 정부의 역할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자 촉진자가 돼야 한다. 부처별로 나뉜 시스템을 한 차원 끌어올린 통합적 실행체제로 특단의 대응을 해야 실효를 거둘 수 있다.
- 폭 넓은 분야에서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 1971년에 물리화학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80년대부터 과학사 교양과목 강의를 하고 저술 활동과 위원회 활동을 많이 하면서 융합에 관심을 갖게 됐다. 김영삼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때 국가 과학기술 자문위원, 노무현 대통령 때 국민경제자문위원 등을 지내면서 과학기술의 경제적, 사회적, 정책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게 됐고 과학기술의 내적 융합뿐만 아니라 과학기술과 다른 분야의 융합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50여 년간 스페셜리스트보다는 융합적 접근의 제너럴리스트로 일한 셈이다.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특별한 비결은 없고 성실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진인사대천명을 좌우명으로 살았다. 남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다.
-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다.
▲ 카이스트 이사장으로서 R&D의 성과를 경제적, 사회적 결실로 열매 맺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 하고자 한다. 글로벌 대전환기에 우리나라가 기술강국으로서 운명적인 지정학적 여건을 극복해 선진강국으로 설 수 있기를 꿈꾼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카이스트 구성원들이 적어도 스트레스에 찌들지 않고 일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정성을 쏟겠다.
대담=구동본 정치경제부장(부국장)
정리=이원희 기자, 사진=유병욱 기자
□ 김명자 이사장 프로필
◇약력 △1944년 출생 △경기여중·고, 서울대 화학과, 미국 버지니아 대학원 박사 △1974년 숙명여대 교수(이과대학장) △1994년 (사)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 △1999년 환경부 장관 △2003년 명지대 석좌교수 △ 대통령 자문기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1991)·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1997년)·정책기획위원회·국민경제자문회의(2003년), 대통령 직속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위원 △2003년 KTF·LG생활건강, 2009년 두산, 2017년 효성 사외이사 △2004년 17대 국회의원(국방위원회 간사, 국회 윤리특별위원장) △2008년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초빙특훈 교수·총장 자문위원 △2008년 저탄소녹색성장국민포럼 공동의장·(사)그린코리아21포럼 이사장 △2016년 한국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 회장 △2017년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2020년 한국환경한림원 이사장 △2020년 (사)서울국제포럼 회장 △2021 효성 이사회 의장 △2022년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고문
wonhee4544@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