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센터’가 산업계는 물론 정치권과 에너지업계에서도 화두로 떠올랐다. 대형 발전소 인근에 데이터센터를 유치해 수도권에 과밀화된 전력 소비를 분산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력의 생산과 소비를 효율화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자는 게 목적이다. 데이터센터 4∼5개는 원자력발전소 1개 생산 전력을 소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력 생산 발전소 인근에 전력 소모가 맡은 데이터센터를 유치하면 막대한 비용이 드는 대규모 송전망을 구축하지 않고도 전력 소비를 효율화할 수 있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역의 안정적인 전력 자급과 송전제약 문제 해결을 위해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에너지 배분 방식을 개선할 방안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기업이 함께 시급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력의 생산지와 소비지의 불일치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지적됐다. 생산은 발전시설이 해안 지역에 집중돼 있는 반면 소비는 수도권에 몰려 있다.
에너지경제신문은 26일 창간 34주년을 맞아 데이터센터의 지방 이전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고 우리 기업·국민들의 이해도를 증진시키기 위해 ‘데이터센터 지역 유치, 선진국 사례로 답을 찾다’ 기획 기사를 연재한다. 해저 데이터센터를 비롯해 각국 정부의 데이터센터 지역 유치 인센티브 등 정책 방향성을 제시하고 나아가 에너지 수요 분산 등 전력 시장의 체질을 개선하는 방법을 조명하는 게 목적이다. 영국, 일본, 미국 등 데이터센터 선진국을 찾아 현장의 생생한 사례를 소개하고 국내외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모았다. [편집자주]
▲일본 도쿄 이리바시역 부근에 위치한 데이터센터. 주택가에 위치해 있다. 사진=전지성 기자. |
[에너지경제신문=도쿄(일본) 전지성 기자] "일본에서는 데이터센터의 80% 이상이 도쿄도(東京都)와 오사카부(大阪府) 등 수도권과 대도시에 집중돼 있습니다. 대지진 등의 재해에 취약하기 때문에 분산화도 과제가 되고 있어 지역 분산을 추진하고 있지만 단기간에 해결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일본경제산업성 관계자는 지난 26일 일본 도쿄 현지에서 에너지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를 통해 "향후 3~5년 새 도쿄권에 데이터센터가 급증해 2.3배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며 "현재 일본 전체에 44개의 데이터센터가 있는데 대부분 도쿄 도심에 위치해 있다. 지역 분산을 위해 수도권 외 지역에 데이터센터 건설 시 재산세를 25% 감면해주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글로벌 기업 등 수요자들이 각종 인프라가 탄탄한 도쿄권을 선호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도쿄 시내 곳곳에는 지하철역, 주거지 인근에 대형 데이터센터들이 위치한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주민들도 전자파 발생 등을 이유로 데이터센터 시설물을 반대하는 분위기가 딱히 없었다.
▲일본 도쿄 이리바시역 부근에 위치한 데이터센터. 사진=전지성 기자. |
각종 데이터센터 업체들에 따르면 도쿄권의 데이터센터가 급증하고 있어 3~5년 뒤에는 싱가포르를 제치고 아시아 최대 수준인 베이징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부동산 서비스 업체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 따르면 데이터센터의 시설 규모를 보여주는 전력용량에서 2022년 말 기준으로 도쿄와 주변 지역의 합계는 865메가와트(㎿)였는데 3~5년 뒤에는 1970㎿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3~5년 뒤 베이징의 전망치인 2069㎿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도쿄권에 데이터센터가 증가하는 것은 일본 기업들의 전산 디지털화 추진 등에 따라 데이터 처리 수요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데이터 유통 속도나 개인정보 유출 우려 등으로 데이터센터를 일본으로 옮겨오는 기업들도 있다. 이와 함께 미·중 마찰과 경제안보 같은 이유로 중국에 데이터센터를 지어 데이터를 주고받는 것을 피하려는 움직임도 도쿄권이 선택받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경제산업성 관계자는 "일본 내 디지털전환에 따라 데이터 수요가 증가하는 것은 물론 미·중 갈등과 경제안보를 이유로 현재 아시아권에서 데이터센터가 가장 많은 중국과 북한 리스크가 있는 한국을 피해 일본에 데이터센터를 유치하려는 글로벌 기업들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데이터센터조사회사인 IDC재팬은 일본 내의 데이터 건설투자액이 금년에는 전년 대비 21.2%가 증가한 2236억 엔, 내년에는 4000억 엔(전년 대비 1.8배)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또 2026년까지 이러한 수준의 투자 규모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이와(大和)하우스 2000억 엔(지바현, 동경도), 마쯔이물산 3000억 엔(지바현, 교토부), 프린스톤디지털그룹 (싱가포르, 사이타마시), 에퀴닉스(미국, 지바현)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다이와하우스가 일본 도쿄 도심인 시나가와(品川)에 신축하고 있는 데이터센터. 사진=전지성 기자. |
특히 다이와하우스는 자회사 등을 활용해 2000년대 초부터 데이터센터 건설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왔다. 2018년부터 지바현에 20개 동(棟)의 데이터센터를 건설 중이다. 또 도쿄의 시나가와(品川)에 신축하는 데이터센터의 규모는 7층 건물에 부지가 5773㎡에 달한다. 이 센터는 다이와하우스가 도쿄에 건설하는 첫 번째 데이터센터로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다이와하우스는 2025년도까지 1000억 엔을 투자해 수도권의 6개 동을 비롯해 총 20개 동의 데이터센터를 개발하는 공격적인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디지털전원도시국가구상’을 통해 향후 10년간 데이터 유통 증가량을 30배 이상 증가시키겠다는 계획 아래 1000억 엔의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방침에 발 맞춘 전략이다.
다만 일본, 특히 수도권 내에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데에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여러 과제가 상존하고 있다.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지진이 빈발하는 일본에서 지반이 견고한 부지를 물색하는데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또 사이버센터의 가동에는 통신망의 확보는 물론 발생하는 열을 냉각할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다.
특히 대형 외국자본계열의 경우 일본 사업자의 10배 이상인 1개 동 당 50MW의 전력이 필요하다. 대도시 교외의 경우에는 전력 확보에 어려움이 크다. 대용량의 전력을 신재생에너지로 조달하는 경우에는 더욱 애로 사항이 크다.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조달이 불안정한 일본에서는 대형 축전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수도권 입지를 선호하고 지방 지자체들의 유치전이 치열한 상황에서 데이터센터 개발업자에게는 기업들의 요구에 적합한 입지를 선택하는 것이 최대의 과제가 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해 4월 데이터센터의 일본 내 분산 방침에 따라 전국 78개 지역을 후보지로 공포했다. 해당 지역 지자체는 일본 정부의 보조금 확보를 위해 데이터센터의 유치에 필사적이다.
‘지역 데이터센터 정비 촉진 정책’을 통해 도쿄 등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 데이터센터를 건설할 경우 재산세 감면 및 보조금 지원하기로 했다. △수도권 이외 지역에 투자 시 3년간 재산세의 25%를 감면하는 특례 적용 △정부는 지자체와 연계해서 전국 데이터센터 입지 계획을 수립 △계획에 근거해 데이터센터를 신설하는 기업에 예산 및 세제 지원방안 마련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서버에서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데이터통신 지연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어 데이터센터는 가능한 데이터의 거대 집적지인 도쿄 등 대도시에서 가까운 지역에 입지하는 추세가 계속되고 있다.
경제산업성 관계자는 "자율 주행, 의료 분야 등의 데이터 통신에는 단 0.01초 차이로 목숨이 좌우되는 경우가 있다"며 "서버에서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데이터통신 지연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데이터센터는 가능한 데이터의 거대 집적지인 도쿄 등 대도시에서 가까운 지역에 입지하는 게 불기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도쿄전력 등 일본 전력회사들은 일본의 데이터센터 증가세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지역 분산과 함께 전기료 부담을 낮추는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일본의 전기료 부담은 중국 본토의 2~3배에 이른다. 일본 정부는 해상풍력 등의 재생가능 에너지를 많이 발전하는 지역의 가까이에는 데이터 센터를 유치해 필요한 전력을 보내는 비용을 줄여 공급을 쉽게 하도록 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