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는 이제 정치쟁점의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에너지를 두고 진영별로 갈려 절충과 합의가 없다. 논의는 무성한데 겉돌고 있다. 국회에선 생산적이고 균형 잡힌 논의보다는 각 진영을 결속하는 의제에 불과하다. 모든 사안이 마찬가지지만 그런 현상이 에너지에서 유독 심하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분석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둘러싼 정치권 대립과 갈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 주요 배경으로 제대로 된 에너지 전문가들이 국회에 없다는 점이 꼽힌다. 지금의 국회엔 환경 전문가만 있지 진정한 에너지 전문가는 없다는 것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뜻이다. 에너지가 국회만 가면 환경문제로 줄줄이 발목 잡혀 산업을 하고 싶어도 도무지 할 수 없다고 에너지업계는 하소연한다. 에너지업계는 에너지가 산업의 핵심이고 이를 보완하는 게 환경인데 지금은 주객이 전도됐다고 주장한다. 이에 본지는 내년 총선을 10개월 가량 앞두고 원내에 에너지 전문가들이 없어서 나타나는 문제점과 개선 대안을 기획 시리즈로 마련, 매주 1회 총 4회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주]
■ 글 싣는 순서
<1회> 국회만 가면 길 잃는 에너지 법안
<2회> 당략·이념에 멍드는 에너지 정책
<3회> 내년 총선 대비 전문가 적극 영입을
<4회> 에너지선진국 스웨덴·호주 사례는
▲김정호 기후위기특별위원회 신임 위원장이 지난달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후위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
[에너지경제신문 오세영 기자] 정권마다 에너지 문제가 과도하게 이념화·정치화하는 문제는 늘 반복돼 왔다.
대표적인 쟁점으로는 원전과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여야간 갈등이다. 20대와 21대 국회 모두 에너지와 탄소중립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를 나누고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특별위원회를 설치했지만 발전원 별 정쟁에 그치는 모습을 보였다. 모두 뚜렷한 활동성과가 없거나 입법권 등 실질적인 권한이 없는 탓에 ‘무늬만 특위’에 그쳤다는 평가가 정치권 안팎으로 나왔다.
탈(脫)원전 정책을 내세웠던 문재인 전 정부에서는 여야 간 원전 비판론과 옹호론으로 의견이 대립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21대 국회에서도 역시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 수단으로 포함하는 여부를 두고 여야간 격돌이 이어지고 있다.
안정적인 자원 공급망을 구축하면서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발전원 믹스가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정책에서 중요한 부분은 어느 한 발전원만 중요한 게 아니라 적정 믹스를 찾아가는 것인데 이해관계나 정치관계에 따라 발전원별 싸움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 20대 국회 에너지특위, 탈원전 정책 의견 대립만 남은 ‘용두사미’
국회는 국회법에 따라 둘 이상의 상임위원회와 관련된 안건이거나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한 안건을 효율적으로 심사하기 위해 본회의 의결을 거쳐 특별위원회를 둘 수 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에너지특별위원회가 출범해 지난 2018년 7월 26일부터 2019년 6월 30일까지 활동했다.
에너지특위가 1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진행한 전체회의는 세 차례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특위 구성 취지와 달리 여야간 논의보다 탈(脫)원전 정책을 둘러싼 공방이 주를 이뤘다. 에너지정책은 당시 정부의 기조대로 흘러갔다.
에너지 분야에 대한 다양한 정책 대안을 제시해야 할 전체회의에서도 여야간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현 집권 국민의힘 전신이자 당시 야당이던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국내에서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해외에서 원전건설을 수주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이종배 의원은 "탈원전 졸속 추진으로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압박을 받고 신재생에너지 급격 추진으로 인한 문제, 해외자원개발 중단 문제 등이 있다"며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최연혜 의원도 "최근 온갖 시행착오 겪으며 28년간 간척한 새만금을 산업단지가 아닌 1000만개 태양광 판로로 뒤덮겠다는 발표가 있었다"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다른 여러 정책 중에서도 가장 잘못된 탈원전 정책을 통해 대한민국을 망치는 앞잡이가 되고 있다. 장관은 이런 국정농단을 책임질 각오를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문 대통령의 원전 세일즈 외교는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당연한 의무라고 반박했다.
김해영 의원은 "우리 특위는 언론 주목도가 떨어질 수 있지만 국가적으로 중요한 특위라고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 동력 뒷받침하고 한반도 평화 분위기에서 남북 에너지협력 강화할 수 있는 분위기 만들길 기대한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신창현 의원은 "원전 비중이 과도한 우리가 상대적으로 원전 비중이 낮은 체코와 사우디, 폴란드에 가서 원전 최고 기술을 자랑하면서 수출하려는 세일즈 노력이 이율 배반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우리나라에서도 원전을 조금은 자제하고 상대적으로 원전 비중이 낮은 해외에 가서 우리의 최고 기술을 홍보하는 것은 대통령이 해야 될 당연한 의무"라고 강조했다.
◇ 21대 전반기 국회, 에너지특위 결성 불발…기후특위 역시 ‘원전 전쟁’
이번 21대 국회 역시 에너지 정책 방향을 논의할 특위 구성에 부진했다.
21대 국회는 지난 2020년 윤리특위, 코로나19극복경제특위, 균형발전특위, 에너지특위, 저출산대책특위 등을 결성하자고 논의를 시작했지만 윤리특위를 제외한 4개 특위는 설치되지 않았다.
현재 21대 후반기 국회에서 에너지 정책과 기후위기 대응 등에 필요한 내용을 논의하는 특위는 기후위기특위가 유일하다. 기후위기특위는 지난해 12월 말 본회의에서 설치됐다. 기후위기특위 활동기간은 오는 11월 30일까지다.
여야는 최근 기후위기특위 전체회의에서도 의견 차이만 보였다. 지난달 기후위기특위 전체회의에서 열린 ‘글로벌 탄소규제 대응 및 탄소중립기술혁신 방안 논의를 위한 공청회’에서도 민주당 측은 신재생에너지 확대 기조를 강조하는 반면 국민의힘은 원자력발전을 온실가스 감축수단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부딪쳤다.
집권 국민의힘 위원들은 CF100(사용전력 100%를 무탄소전력으로 조달)의 역할을 부각하는 반면 야당인 민주당 위원들은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우려했다.
CF100은 기업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 및 원전 등 무탄소 에너지원으로 공급받는 캠페인을 뜻한다.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뿐만 아니라 원전으로 생산한 전력도 친환경 에너지원에 포함시키자는 것이다. 국제사회가 탄소중립을 목표로 ‘RE100(사용 전력 100% 신재생에너지로 조달)’을 추진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CFE(무탄소 에너지) 포럼’을 개최하는 등 원전을 청정 에너지 범위에 포함시키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안호영 민주당 의원은 "전 세계 기업과 민간이 주도로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우리 정부가) CF100 표준화를 추진한다고 해서 실효성이 있을까 생각이 든다"며 "CF100을 추진하게 될 경우 오히려 RE100 달성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트릴 수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은 "개인적 소견으로 보면 RE100은 사실 CF100, CFE에 포함되는 개념"이라며 "RE100은 재생에너지를 사용해서 에너지를 조달하는 기준인데 CF100도 마찬가지다. 거기에 온전히 청정에너지로서 (원전이) 포함이 돼 있느냐 안 돼 있느냐 그 차이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 지역별 발전원 규모 나눠진 ‘에너지벨트’도 의정활동 영향
우리나라 에너지벨트 지형상 지역별로 발전원 규모 차이가 뚜렷하고 해당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총선을 앞둔 만큼 국회의원 입장에서는 공천에 도움이 되는 출마지역 의정활동에 관심을 쏟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남권에 원전, 호남권에 신재생에너지, 강원 및 인천에 석탄화력발전소가 모여있어 발전원별 이슈가 지역구 의원 간의 정쟁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실제 기후위기특위 위원 17명 중 14명이 지역구 의원이다. 비례대표는 양이원영 민주당, 이태규 국민의힘, 장혜영 정의당 의원 등 3명에 불과하다.
대표적으로 비교되는 발전원은 영남권의 원전과 호남권의 신재생에너지 발전원이다.
국내에서는 현재 △전남 영광 한빛(6기) △울진 한울(7기) △경주 월성(3기) 및 신월성(2기) △울산 새울(2기) △부산 고리(5기) 등 25기의 원전이 운영 중이다. 이 가운데 경북, 부산, 울산 등 영남권에만 전체의 75%에 해당하는 19기가 몰려있다. 호남의 경우 전남 영광의 한빛 원전 6기에 그친다.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설비는 반대다. 지난해 국내 태양광 누적설치량은 25GW 수준이다. 대표적인 태양광 발전단지는 영광·해남·신안·영암·고흥 모두 전남권이며 전북 새만금 지역에 2.8GW 규모 태양광 발전단지를 구축하고 있다.
국내 풍력발전 설치 현황을 살펴보면 지난해 말 기준 육상과 해상을 모두 포함한 누적 설치량은 1.8GW다. 앞으로 시장변화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해상풍력 부문을 살펴보면 현재 20.7GW의 해상풍력발전사업이 전기사업허가를 획득했다. 특히 전남지역이 11GW로 가장 많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석탄화력발전소는 강원도 동해안, 인천, 충청권에 집중돼 있다. 국내 가동중이거나 가동을 앞둔 총 61기 석탄화력발전소 가운데 43기의 석탄화력발전소가 세 지역에 모여있다.
충청권에는 △태안 1∼10 호기 △당진 1∼10호기 △보령 3∼8호기 △신보령 1·2호기 △신서천 등 29호기가 가동중이다.
강원도에는 △강릉 안인 1·2호기 △동해 1·2호기 △북평 1·2호기 △삼척그린파워 1·2호기 등 총 8기가 가동되고 있다. 여기에 신규석탄화력발전소인 삼척블루파워 1·2호기가 가동을 앞두고 있다. 인천에는 △영흥 1∼6호기가 가동중이다.
이 밖에는 △경남 고성하이 1·2 △삼천포 3∼6호기 △경남 하동 1∼8호기 △전남 여수 1·2호기 등이다.
◇ 전문가들 "전문가 없는 특위, 정쟁만 남아…총선 앞두고 전선 확대 전망"
전문가들은 "에너지 전문가가 국회에 없는 상태에서 구성된 특위이기 때문에 쟁점 싸움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다"며 "전문적인 논의가 아닌 이익관계, 이해관계, 정치적 싸움으로 이어지다 보니 해결해야 할 법안이나 정책대안이 나오기가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미래에너지정책연구원으로 활동한 노동석 에너지정보문화재단 원전소통지원센터장은 "폐기물 처리 특별법 등 처리할 법안들이 눈 앞에 산적해 있음에도 몇 년째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 센터장은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의 임기가 맞물리지 않은 상태에서 당정과 야당이 서로 견제하면서 힘 겨루기를 하거나 개개인별로 연관된 이해관계 등 때문에 정책 해결이 뒤로 밀리는 느낌"이라며 "애초에 에너지 전문가가 국회에 없는 상황에서 특위가 구성됐기 때문에 위원회가 구성되더라도 전문적이거나 과학적인 논의가 아니라 정쟁으로만 그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 간 표심 대결이 치열해 질 전망인 만큼 당분간도 여야가 에너지 믹스를 향해 정책 대안에 합의를 이루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상임위원회와 달리 특위는 그 역할이 있는 것인데 정치 이슈 중심으로 끌고 가는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이 평론가는 "게다가 지금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 간 전선이 확대된 상황인 만큼 에너지 믹스를 향한 합의가 진행될 수 있다고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등 계속 여야간 대립할 이슈가 추가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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