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수 에너지경제연구원 명예선임연구위원. 사진=나유라 기자 |
기후 변화로 지구촌 곳곳에 집중호우와 이상고온, 잦은 대형산불이 빈발하면서 인류를 포함한 자연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관리국(NOAA)에 따르면, 올해 6월 세계 평균 기온은 16.55℃로 역대 관측상 가장 더운 6월로 기록됐고, 7월 들어 지난 3~5일 지구 평균 온도가 사흘연속 17℃를 웃돌며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이같은 이상기온과 재해는 자연생태계를 교란해 곡물 및 에너지 수급에 악영향을 끼쳐 관련 식품과 제품 가격의 폭등을 야기시키고 있다. 특히, 에너지 가격의 상승은 사회 빈곤층에 직접 피해를 입힌다. 전기·가스 등 구매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생존권마저 위협받는 ‘에너지 소외’로 국민행복권과 사회안전망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 에너지경제신문은 에너지 빈곤층 등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기 위한 에너지 복지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기 위해 국내외 관련 정책과 전문가 제언을 집중 소개한다. <편집자 주>
[에너지경제신문 나유라 기자] "한국의 에너지복지 정책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상당 부분 앞서 나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에너지복지와 관련해 추가로 제도를 발굴하기보다는 기존의 제도를 현실성 있게, 정교하게 다듬고, 각 주관기관과 유기적 협력을 통해 신축 대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랜 기간 국내외 에너지복지와 에너지빈곤 문제를 연구해 온 박광수 에너지경제연구원 명예선임연구위원은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7월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에너지는 모든 시민들이 최소한의 생계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필수재"라고 간단명료하게 정의했다.
박 위원은 여름뿐 아니라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더욱 가중되는 겨울철에 정부의 지원책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대체로 여름철에 비해 겨울시즌인 12∼3월에 에너지 소비량이 많은데, 대체로 저소득층일수록 동절기에는 소득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아 정부의 지원책이 더욱 절실하기 때문이다."
박 위원은 우리나라 에너지복지 정책이 상당 부분 앞서나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에너지바우처, 전기·도시가스·지역난방 요금할인, 저소득층 에너지효율 개선 등 취약계층의 에너지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들이 가동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우리나라 에너지복지 정책은 지난 2006년 12월 에너지복지 전담기관인 한국에너지재단이 출범하면서 시작됐다. 이듬해인 2007년 에너지복지 원년 선포, 2014년 에너지법 개정, 2015년 에너지바우처 사업이 시행되는 등 해가 갈수록 지원 수준과 대상 측면에서 많은 개선이 이뤄졌다.
박 위원은 "전반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저소득층, 취약계층 대상 실질적인 에너지복지 정책은 해외에 비해 상당부분 앞서나가고 있고, 지원 수준도 높은 나라"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일부 전문가들은 기후위기와 맞물려 에너지 빈곤층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는 만큼 에너지빈곤층을 명확하게 정의하는 한편 에너지복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에너지빈곤층 정의, 에너지복지법 제정 등을 요구하는 일련의 행동들에 박 위원은 에너지 취약계층에 실질적인 지원으로 이어질 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에너지 빈곤층은 겨울철 거실온도 21℃, 거실 이외의 온도 18℃를 유지하기 위해 지출하는 에너지 구매비용이 소득의 10%를 넘는 가구를 뜻한다. 1970년대 영국에서 처음 등장한 에너지 빈곤층의 정의를 현재까지도 우리나라에 그대로 사용 중인 셈이다.
소득이 낮고, 에너지 지출 비중이 높아 부담이 되는 가구를 에너지 빈곤층으로 정의했지만, 정말 가난하고 소득이 낮은 이들은 에너지 소비 자체를 못하고, 에너지 구매비용이 10% 넘는 가구에 에너지 과소비 가구도 포함될 수 있어 적절한 정의가 아니라는 지적이었다.
박 위원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에너지 빈곤층의 기존 정의를 많이 이용하고 있지만, 모든 오류와 변수들을 다 고려해 사회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정의를 도출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에너지 빈곤층을 정의한다고 해서 해당하는 모든 에너지 빈곤층을 에너지 복지의 지원대상으로 포함할 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덧붙여 말했다.
실제로 우리 정부는 에너지복지 지원대상 가구를 보다 세부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에너지 바우처는 생계 및 의료급여 수급자 중에서도 노인, 영유아, 장애인, 임산부를 포함하는 가구만 지원하고 있고, 전기요금 할인 역시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을 구분해서 차등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박 위원은 "에너지복지법 (제정)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굉장히 많이 갈린다. 에너지복지법 제정이 곧 에너지 취약계층의 지원 확대로 이어질 지를 놓고 좀더 많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 위원은 "현재는 에너지복지 사업이 보다 실질적인 취약계층 지원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기존의 정책들을 다듬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가장 개선해야 할 부분으로는 에너지공단에서 운영 중인 에너지바우처를 꼽았다.
현재 에너지바우처는 가구원 수 기준으로 차등지원이 이뤄지고 있고, 도시가스·지역난방과 같은 난방 에너지원은 고려하고 않는다고 지적했다. 즉, 도시가스를 쓰든, 석유를 쓰든 동일한 지원이 적용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박 위원은 "미국 뉴욕주는 주 난방연료가 석유·등유·LPG인지, 전기 또는 가스인지 등 난방 에너지원에 따라 지원책을 차등해 지급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석유·등유·LPG와 같은 에너지원은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은 탓에 지원대상 가구에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충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우리나라 에너지복지의 큰 틀은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관장하고 있지만, 각 정책이나 제도마다 주관기관이 다르다는 문제점도 개선 과제라고 말했다.
에너지 복지를 총괄하는 기구나 위원회를 설치해 각 분야 전문가, 관련 부처 담당자들이 모여 에너지 취약층, 복지 정책 등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개선 방안을 논의한다면 취약계층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들을 설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요지였다.
박 위원은 "이같은 에너지복지를 관할하는 기구, 혹은 위원회가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취약계층 에너지 소비실태 조사와 같은 기본 통계가 구축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런 기본 통계는 정부의 정책 수준이 적절한 수준인지, 이러한 지원책들이 실질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실제 취약계층들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등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존에는 많은 통계들이 (실효성 있는 정책 발굴로 이어지지 않고) 형식적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던 만큼 향후 에너지 복지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통계와 지표들을 개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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