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2일(일)
에너지경제 포토

안효건

hg3to8@ekn.kr

안효건기자 기사모음




날씨 만큼 짜증나는 벌레들, 점점 많아지는 이유 ‘이거’였나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8.26 11:01
clip20230825221811

▲25일 서울 서대문구 한 가정집 화분에 붙어있는 러브버그.연합뉴스

[에너지경제신문 안효건 기자] 올 여름 수도권 등에서 증가한 곤충 대발생 원인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 온난화, 생태계 파괴로 인한 천적 실종 등이 지목됐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정종국 강원대 산림과학부 교수는 지난 25일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진행된 ‘대발생 생물 대응 워크숍’에서 대벌레 관련 발제를 맡아 이와 관련한 내용을 설명했다.

정 교수는 지난 3∼5월 대벌레알 4500개를 고도 100m마다 배치한 결과 고도 100m에서는 30%던 부화율이 500m에서는 5%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해당 결과는 대벌레알 부화율과 기온이 비례 관계에 있음을 시사한다. 고도가 100m 높아지면 기온은 0.65도 내려간다.

실제로 최근 3년간 수도권에서 대벌레 대발생에 따른 산림 피해 면적은 2020년 19㏊(헥타르)에서 2021년 158㏊, 작년 981㏊로 늘었다.

1912∼2020년 한국 연평균 기온은 10년에 0.2도씩 상승해왔다.

같은 기간 대벌레 대발생 지역은 서울 은평구 봉산에서 경기 의왕시 청계산·군포시 수리산·하남시 금암산 등으로 확장됐다.

유사한 이유에서 ‘러브버그’ 붉은등우단털파리 북방한계선이 서울까지 북상하고, ‘팅커벨’ 동양하루살이 대발생 시기가 앞당겨졌다고도 볼 수 있다.

상대습도도 대벌레 생존율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6∼7월 청계산에서 대벌레 147마리를 대상으로 녹강균 감염 조사를 진행한 결과, 장마 기간 채집한 대벌레는 감염 나흘 이내 대부분 폐사했다.

이를 통해 대벌레 생존율과 상대습도가 기온과는 달리 반비례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장마가 짧아지거나 강수량이 적어질수록 대벌레가 대발생하기 쉬워진다.

이외에도 식생 밀도, 식물체 영양 조건(질소 대비 탄소량)이 대발생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확인됐다. 암수 비율이 대발생에 주는 영향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생태계 건강성이 악화하면서 천적이 사라진 점도 생물 대발생에 영향을 줬다.

예컨대 서울 은평구에서 진행된 ‘대벌레 방역’이 붉은등우단털파리 천적까지 없애 대발생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었다는 지적이 있다.

약제가 낙엽 밑에 사는 붉은등우단털파리보다는 바깥에 돌아다니는 포식자를 죽게 해 개체수가 조절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먹이사슬 하부에 위치한 붉은등우단털파리 암컷은 많게는 알을 500개씩 낳는다.

또 대벌레, 붉은등우단털파리, 동양하루살이는 변온동물이다. 이들이 고온다습한 시기 대발생하는 것은 자연적 현상이다.

특히 산림해충으로 분류되는 대벌레와 달리 붉은등우단털파리와 동양하루살이는 익충으로 알려져 있다.

붉은등우단털파리 성충은 꽃꿀을 먹는 과정에서 수분을 매개하는 점이 확인됐다. 유충일 때 흙바닥에 살며 낙엽과 유기물을 분해하는지에 대한 연구도 이뤄질 예정이다.

동양하루살이 유충은 부식질 유기물을 분해한다. 2급수 이상에서 살기 때문에 수생태계 건강성을 보여주는 지표종으로도 꼽힌다.

생태계 차원에서 볼 때 익충이라고 해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식당이나 편의점 불빛에 이끌려 큰 무리를 지은 모습이 혐오감을 일으켜 영업을 방해하고 경제적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전문가들은 그런 이유로 대발생 생물에게 살충제를 뿌리는 등 화학적 방제를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일관되게 지적한다.

살충제를 뿌리면 타깃이 아닌 다른 생물이 예상하지 못한 악영향을 받을 수 있고 살충제에 내성을 가진 다른 생물이 대발생할 위험이 있다. 최근 사용하는 농약도 식물에 침투해 장기간 머무를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될 수 있다.

정종국 교수는 "국제적으로 산림 내 농약 대규모 살포는 권장되지 않고 있다"라며 "방제가 필요하다면 녹강균을 농약 대체제로 개발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신승관 교수는 "방제를 무분별하게 진행하면 제2의 러브버그가 나올 수 있다"라며 "방제가 생태계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대신 생태계 건강성을 회복하고 ‘자연적 방제’가 되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대안도 나온다.

정 교수는 "국내 산림에는 녹강균을 비롯해 다양한 천적이 분포한다"며 "대벌레 대발생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조사 방법을 개발하고 지속 모니터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무분별한 농약 사용보단 생물다양성을 유지해 자연적으로 방제되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며 "(러브버그 서식지) 주변 환경과 천적 밀도를 살펴봐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

또 대발생 생물 특성을 고려해 개체 수조절 방안을 마련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강지현 고려대 한국곤충연구소 교수는 "동양하루살이는 파장이 짧은 빛에 더 많이 유인된다"라며 "물가에 청색광이나 백색광을 설치하면 (도심까지) 올라올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직접적인 방제 방법을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학적인 데이터에 기반한 종합적 대응 전략을 고려해야 한다"며 "(대발생 생물을) 박멸 대상이라기보다는 공존하는 상대로 보는 것이 적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hg3to8@ekn.kr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