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메리츠증권은 전례 없는 평판 리스크를 겪고 있다. 메리츠증권은 그간 사실상 자금을 사용할 수 없는 CB·BW 발행으로 ‘무위험·고수익’ 구조를 형성하고는 했다. 회사들은 손실이 확정돼 있어도 메리츠를 찾았다. 계약만으로도 훗날 오너들 호주머니를 두둑하게 할 방안이 있기 때문이다.
▲출처/Pixabay |
[에너지경제신문 박기범 기자] 기업은 금융사에서 자금을 조달해 사업을 하곤 한다. 그런데 신용도가 떨어지는 기업엔 금융사가 자금을 잘 빌려주지 않는다. 이러한 기업은 추가적인 옵션을 제공하는 전환사채(이하 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이하 BW)를 발행해 자금을 확보한다. 여기까지가 교과서에서 다루는 CB와 BW 활용법이다.
상식을 조금만 틀어보자. 자금 대신 권리를 조달하는 방식이다. 자금을 빌려줘도 돈을 못 받을 걱정도, 자금을 사용할 이유도 없다. 회사 등엔 권리가, 메리츠엔 이자 수익이 발생하기에 서로에게 윈윈(Win-Win)이다. 다만,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책임질 필요는 없다.
2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기준 H&B디자인이 발행한 5회 차부터 9회 차 CB와 3회 차 BW 중 현금 사용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현금으로 사용할 수 없거나(혹은 포기) 현금이 아닌 현물이 대가였기 때문이다.
◇ 사용 불가능 자금, 현금은 유출 中
전자는 증권사와의 거래에서 주로 이뤄진다. 증권사 마다 방식은 다르다. 가장 널리 알려진 방법은 신탁사를 활용해 자금을 금융자산 등에 맡기는 방법이다. 메리츠증권이 즐겨 사용한다. 다른 경우는 CB관련 계약 당시부터 기한의 이익 상실(EOD) 상황을 만들어 담당자를 압박하는 방법이다. S금융사가 사용한 방법이다. 기업은 자금을 사실상 쓸 수 없다. 하지만 기업은 증권사에 수수료, 콜옵션프리미엄, 이자 등을 지불한다.
◇ 사용 가능 권리, 현금 유출은 이연 中
‘금전 사용의 대가’란 세법상 이자소득의 정의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자금을 사용조차 못 한 기업이 지불한 이자율은 사실상 무한대다. 그렇다고 무의미하지 않다. 권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거래가 성사되는 배경에는 CB와 BW에 자금 조달 이외의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기업의 매도청구권(이하 콜옵션)이다. 빌린 자금을 빠르게 갚겠다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기업에 부여하는 것이다. 이 권리가 양도가 가능하다는 것이 중요한 점이다. 다른 이가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만약 CB콜옵션 행사로 발행되는 주식이 최대주주 지분율을 웃돈다면 이론상 무자본 M&A가 가능하다.
또 기업이 자금을 갚더라도 매입한 CB를 만기 전까지 다시 되팔 수 있다. 증권사가 셀다운하듯 CB를 재매각해 진짜 자금 유치를 할 수도 있다. 투자자가 있음을 전제로 하기에 조건이 달린 권리다.
마지막으로 결제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 신용카드처럼 기업은 취득 자산 관련 대금을 만기에 지급할 수 있는 것이다. H&B디자인의 경영진이 자주 활용했다. 2월 27일 H&B디자인은 대한종건을 인수하며 현금과 현물을 섞어서 지급했는데 이때 7회 차 CB가 발행됐다. 또 6월 8일 메리츠 증권에 발행했던 5회 차 CB와 6회 차 CB 그리고 3회 차 BW의 50%를 콜옵션을 통해 회수한 이후 메타버셜과 에스에스매니지먼트에 재매각하며 (주)수 지분을 인수했다.
이 같은 방식은 특수관계인 사이에서는 요긴하게 활용될 수 있다. 통상적인 거래는 현금과 지분을 동시에 지급·수령(취득)하며 종결되지만, 특수관계인 사이에서는 거래를 종결할 이유가 특별히 없다.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를 유지해도 서로에게 큰 부담은 없다.
CB콜옵션을 섞는다면 거래가 한 층 수월해진다. CB콜옵션으로 재산적인 부분을, 결제 지급 이연으로 시간적인 부분을 각각 미세조정하면 된다.
◇ 자금 조달 없는 CB와 BW, 결국 ‘사회적 비용’
CB와 BW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다. 하지만 자금 조달이 사실상 불가능 한 메자닌은 사회적 비용 발생을 야기한다. 금융사는 자금 사용을 구조적으로 막아 놓아, 경영진들에게 CB나 BW의 권리 사용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강제한다.
또한 CB콜옵션은 매매가 가능하기에 경영진들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 회사에 손실을 끼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경영진은 권리를 판매하고, 그 대가는 회사가 아닌 본인에게 향하게 하는 것이다.
경영진이 배임을 각오한다면 활용도는 극대화된다. 현실에서 종종 일어난다. △경영협약서 △합의서 △에스크로계약서 등을 통해 시점만 잘 맞춘다면 권리 역시 ‘동시 이행’이 가능, 거래 안전도 도모할 수 있다. 아울러 계약 당사자인 경영진들은 이자율 무한대의 거래를 수용한 자들이다.
업계 관계자는 "메리츠증권이 발행한 CB와 BW는 중립적이지만 꾼들에게는 놀이터를 제공했다"면서 "법을 떠나서 확실한 건 메리츠식 CB꺾기는 메리츠에게 수익을 주지만 사회적으로는 비용을 발생시킨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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